[그때 그 IT] 기술유출 판례 (3) 쌍용차 HCU 기술유출 사건

2023. 5. 1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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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란 법원이 특정 소송에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법원은 이 판례를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재판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IT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 특성을 보여 판례가 비교적 부족합니다. 법조인들이 IT 관련 송사를 까다로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IT 분야에도 참고할 만한 판례들이 속속 쌓이고 있습니다. IT동아는 법무법인 주원 홍석현 변호사와 함께 주목할 만한 IT 관련 사건과 분쟁 결과를 판례로 살펴보는 [그때 그 IT]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쌍용차(現 KG모빌리티) HCU 기술유출 판례’로 본 기업인수합병을 이용한 해외 기술유출 사례(서울중앙지방법원 2012. 2. 21. 선고 2009고단6996 판결 등)

“HCU 디스크립션(Descriptio)을 상하이자동차에 제공했다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하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헌법 제27조 제4항,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 무죄추정의 원칙은 우리 형사법의 기초를 이루는 대원칙입니다. 이에 따라, 법원이 범죄사실을 인정할 때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있어야 합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유죄를 확신할 수 없어 ‘의심스러우면(의심이 드는 정도이면) 피고인의 이익으로(유리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즉, 유죄의 의심이 간다는 사정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2009년 11월경, 검찰은 쌍용차의 디젤 하이브리드 제어 장치(HCU, Hybrid Control Unit)가 중국 상하이차로 유출됐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자동차 첨단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는 2004년 10월경 상하이차가 법정관리 중이던 쌍용차를 인수할 당시부터 제기됐었습니다.

상하이차에서 쌍용차 인수 협의 시 약속한 신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고, 2005년 6월경 출시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SUV 자동차 ‘카이런’의 제작 기술을 헐값에 상하이차에 이전하는 계약이 맺어졌을 때, 기술 먹튀에 대한 우려는 점점 커졌습니다.

2006년 8월경에는 쌍용차 노조가 상하이차의 하이브리드 기술 유출 혐의에 대해 고발장을 접수하고, 국가정보원의 첩보를 기초로 2008년 7월경, 검찰이 수사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보도됐습니다. 쌍용차 기술유출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 현실화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지 약 4년 만인 2009년 1월경, 쌍용차가 다시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되고, 같은 해 11월경 검찰이 쌍용차의 하이브리드차 기술 유출 혐의로 종합기술연구소장 및 수석연구원 등 쌍용차 임직원 7명을 업무상 배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상하이차의 기술 먹튀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HCU는 국가 하이브리드 신동력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국가연구개발비를 지원받아 독일의 자동차 기술개발 용역업체 FEV사와 공동으로 개발해 온 핵심 기술이었기 때문에 강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1심과 2심 법원 모두 쌍용차 임직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서울중앙지법 2009고단6996, 2012노846).

검찰은 상하이차의 개발팀 상무가 쌍용차 임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해당 이메일에는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전기자동차와 비슷한 구조의 차를 개발 중인데 개발 일정이 촉박하고 쌍용차의 HCU 기능설명서 없이는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 기능을 이해하기 어려우니 HCU 기능설명서를 FEV사로부터 입수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쌍용차 임직원은 위 메일을 받고 FEV사에 HCU 기능설명서를 제공하는 데 동의한다는 취지로 메일을 발송했음이 확인됐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은 FEV사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제시하며, 그룹사 간 정보교류의 일환으로 HCU 기능설명서에 제공 조건 및 범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은 맞지만, 논의가 중단돼 HCU 기능설명서를 상하이차에 실제 제공하지는 않았다고 맞섰습니다.

법원은 HCU 기능설명서가 공유됐다고 기재된 업무 일지와 수석연구원이 수사기관에서 HCU 기능설명서가 상하이차에 제공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한 진술이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피고인 측이 제시한 이메일 및 여러 사정을 고려했을 때, 관련 피고인들의 최종 승인을 해 FEV사가 HCU 기능설명서를 상하이차에 제공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소사실이 진실이라는 확신을 가지기에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 신빙성 있는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쌍용차 임직원들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선고된 직후 쌍용차 측은 ‘처음부터 무리한 기소였으며 이에 대한 법원의 현명한 판결이었다’며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기술유출의 진위는 당사자들만 아는 문제겠습니다만, 중국 자본의 기술 먹튀 우려가 고조되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기고에서는 삼성·LG 아몰레드 기술 이스라엘 유출 판례(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12. 10. 선고 2012고단2865 판결 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동아닷컴 IT전문 김동진 기자(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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