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의 다락방, 농막] 삶을 위한 쉼터…집이 아니어도 좋다

황지원 2023. 5.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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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장한별씨의 농막이야기
농사지으며 쉴수 있게 공주에 마련
세종서 주거·근무 … 왕래하며 관리
주말과 평일 하루 방문해 작물 돌봐
“취향 온전히 반영한 공간에서 행복
치열한 도시생활 버티게 하는 시간”
장한별 변호사와 아내 정민경씨는 직접 재배한 채소로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자연 속에서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은 도시생활을 버티는 힘이 된다. 공주=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뽑은 지난해 트렌드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시골에서 보내는 소박한 삶)’다. 바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일상을 보내려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러스틱 라이프를 누리는 데 여러 준비물이 필요한데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휴식 또는 주거 공간이다. 텃밭을 일구다 편히 쉬기엔 농막이 제격이고, 하루 이틀 숙박하는 세컨드하우스로는 이동형 소형 주택이 알맞다.

장씨 부부가 틀밭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상추를 수확하고 있다.

꽉 막힌 도로와 어디를 가도 넘치는 사람들. 번잡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이라면 한번쯤 귀농·귀촌을 꿈꾸게 된다. 도시에 있는 일자리를 정리하고 하루아침에 귀농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때 농막이 있으면 농장을 자주 방문해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농막이란 농지에 설치해 농자재를 보관하고 농작업 중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든 가설 건축물이다. 주말농장을 가꾸며 농막에서 5도2촌 생활을 즐기는 변호사 장한별씨(44)를 만나러 충남 공주로 향했다.

천안논산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논밭 사이를 달리면 충남 공주시 의당면의 한적한 농촌 마을이 나온다. 주변 전원주택이나 농기자재 창고와 달리 새까만 자태를 뽐내는 건축물이 눈에 띈다. 바로 장씨의 농막이다. 높이가 일정한 직육면체 모양이 아니라 뒤로 갈수록 천장이 높아지는 변화를 줬다. 외부엔 검정 도료를 칠한 적삼목 외장재를 둘렀고, 4면에 출입문 2개와 창문 4개를 알차게 달았다. ‘농기계 창고’ 하면 떠오르는 회색 철제 컨테이너와는 전혀 다른 세련된 모습이다. 세종시에서 일하는 장씨는 왜 공주에 농막을 마련했을까?

사료와 함께 신선한 푸성귀를 먹이로 주면, 닭은 평소보다 많은 달걀을 낳아 보답한다.

“어린 시절을 전남 보성 농촌에서 보냈어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렸을 때 경험했던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늘 갈망해왔습니다. 아파트에 이것저것 식물을 키웠지만 그걸로는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농사를 지으며 쉴 수 있는 저만의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장씨는 다른 사람이 살던 주택을 임차하려 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른 집을 빌려야 하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집을 사거나 새로 짓는 방법도 생각했으나 이미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는 상황에서 집 두채를 관리하기는 어려웠다. 또 다주택자가 되면 세금 부담이 느는 문제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게 ‘집’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농막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농사를 짓다 쉬는 시간에는 통창 앞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며 책을 읽곤 한다.

마음에 드는 땅을 찾아 1년 반을 헤맨 끝에 의당면에 628㎡(190평) 규모의 농지를 샀다. 장씨는 이곳에 농막을 두고 농사를 짓는다. 직접 벽돌을 쌓아 7㎡(2평)짜리 틀밭 3개를 만들어 쪽파·상추·루콜라 같은 채소를 키운다. 바닥에 쭈그려 앉는 것보다 밭일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장씨 부부 2명이 먹기엔 충분한 양이다. 그 옆에는 닭장을 만들어 백봉오골계와 청계·블랙마란까지 닭 14마리를 기른다. 이들은 매일 부지런히 달걀을 낳아 장씨에게 단백질을 제공한다. 옆집과 경계가 되는 곳에는 뽕나무·복분자·블루베리 등 유실수 11종 35그루를 심었다. 나무는 밭작물에 비해 손이 덜 가는 장점이 있다. 야외 그늘막을 만들고 싶어 덩굴작물이 타고 자라는 수직 울타리 틀밭도 만들었다. 겨울에도 작물을 키우려고 폴리카보네이트 온실까지 직접 조립해 장씨만의 주말농장을 완성했다. 그는 주말과 평일 하루 퇴근 후 아내 정민경씨와 함께 이곳을 방문해 작물과 닭을 돌본다.

농막은 여러 업체를 비교한 끝에 업력이 8년 정도이고 주문 제작 경험이 많은 한 회사의 모델을 택했다. 그러고나서 업체 상담을 통해 구체적인 구조를 정해나갔다.

“마루와 벽·천장을 모두 나무로 마감해 실내에서도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냈어요. 날씨가 좋을 때 문을 활짝 열 수 있게 접이식 문을 달았죠. 지붕은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외쪽지붕 형태로 정했어요. 가장 높은 곳 층고가 3.9m인데, 길게 늘어진 자작나무 펜던트 조명을 달아 멋을 더했습니다.”

소품을 한둘씩 추가하고, 비싼 자재를 써서 꾸미다보니 농막을 제작하고 설치하는 데 4600만원이 들었다. 평균 수준의 농막을 구매하는 데 2000만∼2500만원이 드는 것을 고려하면 큰 지출이었지만, 장씨는 아파트 전체를 인테리어 하는 것에 비하면 적은 비용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 취향을 온전히 반영한 공간 속에 있으면 행복을 느낀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농막은 힘든 농사일을 끝낸 장씨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땀을 흘리고 나서는 농막 속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갓 수확한 채소와 달걀을 이용해 부엌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 먹는다. 커다란 통창 앞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둬 앉아서 책을 읽거나 차를 내려 마신다. 때로는 문을 다 열고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느낀다. 농막에서는 자동차 엔진 소리나 매연 때문에 방해받을 일이 없다.

그는 자신만의 농막과 텃밭에 ‘파머시(Farmacy)’라는 이름을 붙였다. 농가를 뜻하는 ‘팜(Farm)’과 약국이라는 뜻의 ‘파머시(Pharmacy)’를 합친 말로 농사를 통해 치유받는 곳이라는 뜻이다.

“농막에서 지내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성취감이에요. 땅과 집을 고르고, 농막 안과 밖을 꾸미며, 씨를 심는 것부터 수확해 요리하는 것까지 다 제 손으로 하니까요. 달걀이건 채소건 제가 정성을 들인 만큼 돌아오더라고요. 가만히 놔두기만 해서 되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농막에서 보내는 주말은 도시에서 치열한 5일을 버티게 하는 비타민 같은 시간입니다.”

전기온수기
이동식 전기레인지

장 변호사 추천 필수템

평상=농막 외부에 덱(Deck)을 설치하는 건 불법 소지가 있다. 대신 평상을 두고 활용하자.

전기온수기=농사 후 흘린 땀을 따뜻한 물로 씻어내면 피로가 가신다.

블루투스 스피커=층간 소음이 걱정돼 아파트에서 크게 듣지 못했던 음악을 마음껏 들어보자.

벽걸이형 냉난방기=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따듯하게 보내기 위한 필수품이다.

이동식 전기레인지(인덕션)=간단한 요리를 하거나 탁자에 놓고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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