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이름·어여쁜 매발톱꽃은 왜 ‘바람둥이꽃’이 됐을까?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5. 1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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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꽃 뒤쪽 5개 꿀주머니 ‘꽃불’, 안으로 구부린 매 발톱 형상
다른 꽃 꽃가루 좋아해 꽃 색상·변이 다양 ‘바람둥이 꽃’
중국은 ‘賣春花’, 유럽은 ‘사자꽃’ 이름도
작은 장미꽃을 연상시키는 겹꽃인 장미매발톱꽃에 빗방울이 맺혀 있다. 2020년 5월9일 서대문구 돈의문박물관마을 인근 야외 꽃가게 촬영

<어머나, 이게 발톱이야?/너무 예쁘다/꽈악 잡혀도 안 아프겠다/그런데 있잖아 안 되겠니?/나 지금 하늘을 날고 싶은데>

장문석 시인이 사진과 함께 연재하는 ‘발길 디카詩’ 중 ‘매발톱꽃’이다. 매발톱꽃은 우아하고 어여쁜 색상과 특이한 형태와 달리 꽃 중에서 가장 사나운 이름부터 눈길을 끈다.

먼저 왜 ‘매발톱’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매발톱꽃은 꽃잎 뒤쪽에 있는 ‘꽃불(super)’, 한자로 ‘거(距)’라고 하는 5개의 꿀주머니가 달려 있다.그 모양이 마치 병아리라도 낚아챌 듯 발톱을 오므린 채 안으로 굽은 매의 발톱을 닮았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매발톱꽃이라 불렀다.

분홍과 흰색, 노랑색이 어우려진 매발톱꽃 원예종인 겹매발톱꽃. 흰매발톱꽃은 귀한 축에 속한다. 5월7일 서울 양재꽃시장에서 촬영.

매발톱꽃은 이름처럼 용맹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색과 형상을 동시에 갖고 있는 보기드문 꽃이다. 매발톱꽃을 보게 되면 우선 그 아름답고 특이한 꽃 모양에 반하고,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고 나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식물 학명을 통한 어원을 살펴보면 매발톱 종류의 식물에 붙이는 속명 아킬레지아(Aquilegia)는 독수리란 뜻의 ‘라틴어 아퀼리아(aquilia)’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거’ 안에 꿀이 고이므로 ‘물’이란 뜻의 아쿠아(aqua)와 ‘모으다’란 뜻을 가진 레지아(legere)의 합성어란 견해도 있다.

영어 이름 콜럼바인(Columbine)은 꽃의 형태가 ‘작은 비둘기떼’를 연상한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매발톱꽃의 꽃 모양은 꽃받침이 뒤로 길게 부리 모양으로 뻗쳐 있다. 가운데 다섯장의 꽃잎과 꽃처럼 보이는 다섯장의 꽃받침이 서로 번갈아가며 꽃 모양을 이룬다.

서울 서대문구 돈의문박물관마을에 보라빛 꽃과 봉오리가 맺힌 여름꽃 매발톱꽃이 화단에 무리지어 피어있다. 2022년 5월21일 촬영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꽃들은 자기들의 동일 품종 간에 교잡이 잘 이뤄진다.일반적으로 꽃은 한 명의 상대만 바라보는 일편단심을 상징합니다. 민들레나 해바라기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매발톱꽃은 서로 종이 다름에도 자기들끼리 수정이 잘 이뤄져 이를 두고 중국에서는 ‘매춘화(賣春花)’, 이른바 바람둥이꽃이라고 한다. 6월에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는 매발톱꽃은 이성을 찾아 움직이진 못하지만 다른 꽃의 꽃가루를 좋아해 꽃 색상이나 변이가 참으로 다양하다. 중국에서는 ‘바람둥이’라는 꽃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꽃 색이 보라색과 노랑색 , 분홍색, 하늘색 등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색깔을 가진 이유다.

유럽에서는 이 꽃을 ‘사자풀’이라고도 불렀다. 사자가 이 잎을 먹어서 매우 힘이 세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양손으로 이 잎을 문지르기만 해도 용기가 생겨 난다고 믿었다.

쌍떡잎식물로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초본이다. 미나리아재비과 식물들은 고운 꽃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식물체는 독성을 지녀 자신을 지키는 무기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적으로 한국 중국 시베리아 동부 등에 70여 종이 분포한다. 주로 북반구의 숲이나 산악지역의 볕이 잘 드는 곳에 잘 자란다.

꽃 모양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중앙에 둥글게 배치된 꽃잎과 외각으로 배치된 꽃잎이 있다. 꽃송이 중앙에 배치된 5장이 진짜 꽃잎이고 외각으로 배열된 5장은 꽃잎처럼 보이지만 꽃받침이 꽃잎 모양으로 변한 것이다. 곤충의 눈에 잘 띄도록 가능한 한 꽃송이가 크게 보이도록 꽃받침이 꽃잎으로 진화한 경우다. 암술은 5∼6개이고 수술은 암술 주위에 많은데 암술과 접해 있는 수술에는 꽃밥(화분)이 없는 헛수술이다.

노랑매발톱꽃과 붉은매발톱꽃. 2020년 4월16일 서대문 야외꽃집서 촬영

우리나라에는 꽃색이 하늘색인 하늘매발톱꽃, 노란색의 노랑매발톱꽃, 겹꽃인 장미매발톱꽃, 산매발톱꽃 등 12여 종이 있다. 특히 하늘매발톱꽃은 북한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는 귀한 식물이다.

매발톱꽃의 꽃 모양은 꽃받침이 뒤로 길게 부리 모양으로 뻗쳐 있다. 가운데 다섯장의 꽃잎과 꽃처럼 보이는 다섯장의 꽃받침이 서로 번갈아가며 꽃모양을 이룬다.

색상별로 다른 꽃말을 갖는데 보라빛 매발톱의 꽃말은 ‘승리의 맹세’이다. 순천만국가정원에 따르면, ‘매발톱꽃’ 꽃말의 의미는 “당신의 사전에는 실연, 패배라는 말이 없군요. 오직 승리만이 있는 인생.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남 모르는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지런’이라는 꽃말처럼 하늘매발톱꽃은 매발톱꽃 중 꽃을 가장 먼저 피운다. 빠른 것은 4월 하순이면 꽃을 피우기 시작하며 꽃잎은 하늘색을 띤다.꽃색이 연한 노란색인 것을 노랑매발톱은 관상용으로 쓰며 꽃말은 ‘우둔’이다

붉은 인동넝쿨 꽃과 함께 자태를 뽐내는 보라색 매발톱꽃. 5월7일 서울 양재꽃시장에서 촬영

김승기 시인은 시 ‘매발톱꽃’에서 매발톱의 뾰족한 꽃불을 보면서 <무얼 잡으려고 허공을 움켜쥔 채 / 내려놓을 줄 모르느냐 / 그렇게 손톱 발톱을 치켜세운다고 / 잡혀지는 허공이더냐>고 노래했다. 허공마저 움켜잡겠다고 과욕을 부리는 치열한 삶을 매발톱꽃에 비유했다. 예전에는 매발톱꽃을 만나기 위해서는 배낭을 매고 산과 들을 헤매야 했지만 요즘은 원예종으로 널리 보급돼 도로변 화단에서도 어여쁜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귀해야 대접을 받는데 너무 흔하다 보니 신비로운 느낌이 사라진 듯도 하다.

미나리아제비과 식물은 일반적으로 독성이 있으므로 나물로 먹어서는 안 된다. 한방에서는 전초(全草)를 누두채(漏斗菜)라 하여 월경불순 등 부인병 치료에 사용하며 뿌리는 두통과 소염에 사용한다. 아네모닌(anemonine)이 들어있다.

꽃카페 매발톱 2020 0411

매발톱꽃은 꽃이 크고 특이하면서도 참 아름답다. 화단이나 분화용으로 아주 우수하다. 꽃색과 모양이 다양하며 최근에는 원예종이 많아 매발톱꽃 만으로도 정원을 다양하게 꾸며볼 수 있다. 한번 잘 심어두면 씨앗이 떨어져 나와 금방 포기를 이루므로 쉽게 화단을 조성할 수 있다.

번식력도 강해 화단이나 분화용 모두 적합하다. 자라는 곳에 따라 키가 40∼80㎝정도 자라며, 꽃은 붉은 빛을 띠는 보라색으로 5∼6월에 핀다. 습해나 추위에는 강하지만 더위에 약한 편이다. 씨앗이 떨어져 싹이 잘 나오며 다음해 꽃을 피운다. 포기나누기도 잘 된다.

매발톱의 자생지를 보면 높은 산, 습윤한 곳인 경우가 많고, 깊은 산 계곡 주변의 양지바르고 통풍이 좋으며 배수가 잘되는 곳에도 자란다. 유기질이 많은 토양에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곳이 좋다. 추위, 건조에 견디는 힘이 강하고 물 빠짐이 잘되는 곳에서 잘 자란다.번식은 주로 씨앗을 뿌리거나 포기나누기를 한다. 늦여름 혹은 가을에 씨앗을 따서 묵히지 말고 바로 파종하면 2주쯤 지나 콩나물시루처럼 싹이 잘 올라온다. 겨울에 잘 덮어주었다가 이듬해 봄에 원하는 곳에 옮겨 심으면 된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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