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돈 132억 날린 직원, 징계도 안한 서울국제학교...학부모들 반발

이가영 기자 2023. 5. 1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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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에 있는 서울국제학교(SIS) 건물 전경. /최혜승 기자

한 사립학교 교직원이 학교 돈 220억원을 이사회 심의 없이 고위험 파생펀드에 투자했다가 환매 중단 사태로 절반 이상 허공에 날릴 상황에 놓였다. 학비가 연 수천만원에 이르지만, 그만큼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경기도 성남시의 서울국제학교(SIS)에서 벌어진 일이다. 학교 측은 어쩐 일인지 해당 교직원에게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에게 쓰라고 비싼 학비를 감당한 건데, 앞으로 이런 학교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학비 수입 연 수백억인 학교, 고위험 펀드 투자해 132억 날릴 상황

서울국제학교 재무회계실장 A씨는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교비(校費) 220억원을 신한금융투자(신한금투)를 통해 만기 1년짜리 파생결합신탁 상품에 집어넣었다. 한국계 대표가 운영하는 홍콩 소재 운용사 젠투파트너스가 운용하는 이른바 ‘젠투 펀드’였다. 그중에서도 ‘아시아앱솔루트리턴펀드’에 가입했는데, 젠투는 이 펀드를 운용하며 JP모건 등 금융사로부터 대출을 5배가량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젠투 펀드가 투자한 자산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1년짜리 펀드의 만기일은 지연됐고, 2020년 중순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학교 돈 220억원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투자 과정에서 이사회 심의‧의결은 거치지 않았다. 당시 행정총괄처장의 결재를 받아 A씨가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서 서명 역시 A씨가 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학부모들은 물론 이사회마저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진 후에야 알게 됐다는 점이었다. 학칙에 따르면 A씨는 교비 관련 지출 사항에 대해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사회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A씨는 “예·적금 통장에 안전하게 교비를 예치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주무관청인 성남교육지원청도 나섰다. 성남교육지원청은 감사를 벌인 끝에 사모펀드에 투자한 A씨의 행위가 업무상 횡령‧배임에 해당하며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을 위반했다고 보고 지난 2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학교는 재무와 회계를 건전하게 운영해야 한다. 또 자금을 집행할 때는 금융회사의 예금‧적금 또는 신탁 등에 예치해야 한다. 원금 손실의 위험이 있는 사모펀드에 투자한 건 ‘예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성남교육지원청의 해석이다.

◇상사와 가족인 재무회계실장, 아무런 징계 없이 자리 유지

서울국제학교(SIS) 운동장/ 최혜승 기자

사태가 커지자 학교 측은 지난달 7일 학부모들을 상대로 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A씨는 “나도 피해자”라며 “이미 투자금 88억원은 돌려받았다”고 했다. 이는 신한금투가 2021년 젠투 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피해를 본 ‘투자자 전원’에게 투자 원금의 40%를 미리 지급해준 돈이었다. 나머지 투자금 60%에 해당하는 132억원은 현재까지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 측은 “투자금 전액을 반환받을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신한금투가 정기예금보다는 수익성이 높으면서도 원금 회수가 보장될 정도의 안정적인 상품이라고 추천해 투자했으니 ‘불완전 판매’에 해당하며,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 돈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소송은 내년에야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상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

이사회는 A씨의 보직 해임을 권고했으나 학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부모들도 A씨의 전문성을 의심하며 학교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A씨는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은 채 같은 직무를 유지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비 수입만 연 수백억 원에 달하는 서울국제학교의 교직원이 굳이 위험한 펀드 투자를 한 이유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학교는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있는 한국 최초의 국제학교로, 어린이집의 학비는 1년에 약 2000만원이며 고등학교는 3000만원 중반에 기타 비용까지 합하면 연 4000만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비싼 학비에도 불구하고 ‘아이비리그’ 등 해외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 고소득 전문직 자녀들이 앞다퉈 지원하는 학교 중 하나라고 한다.

특히 2021년 기준 서울국제학교가 기금 차원으로 확보하고 있는 적립금은 1740억원에 이른다. 대학교육연구소가 발표한 2021년 국내 사립대 적립금 현황과 비교하면 한양대(1730억원)보다 많은 액수다. 한 학부모는 “노후화된 학교 시설물을 고치는 데 써도 모자랄 교비를 왜 적립금으로 쌓아만 두는지, 게다가 왜 위험한 곳에 투자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그런 사람을 계속 신임한다면서 같은 자리에 두는 건 더 이상하다”고 했다. A씨는 그의 상사인 B행정총괄처장과 가족 관계다. B처장은 학교 설립자인 올해 90세의 미국인 아담스를 대신해 학교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담스는 고령을 이유로 미국에서 머물고 있다.

◇학교 측 “수사 진행 중, 미국에 있는 설립자가 보직 변경 유보 지시”

지난해 열린 서울국제학교(SIS) 제45회 졸업식 모습. /SIS 인스타그램

서울국제학교는 A씨의 행위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A씨는 ‘특정금전신탁’에 가입했으며 이는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서 말하는 예치의 방법 중 하나인 ‘신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해당 규칙은 신탁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특정금전신탁의 가입을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지 않다”며 “대법원 판례 등 구체적이고 명확한 선례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또한 A씨의 인사 조치에 관해선 “관련 수사 절차가 진행 중이고, 교비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점에 의거해 설립자가 보직 변경을 유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예림 변호사(법무법인 길도)는 “규칙에서 말하는 ‘신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는 학교 측의 의견대로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며 “그보다 중요한 건 교비를 사용하며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윤 변호사는 “교원 징계 등 행정사건에서는 절차적 하자를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본다”고 했다.

학교 측은 “교육청 감사 결과와 관련해 학부모님들과 관련자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하다”며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적극 개선하겠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서울국제학교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명문 외국인학교로서 그 역할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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