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허달림이 보여주는 나이 듦의 즐거움

김영화 기자 2023. 5. 10.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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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이 12년 만에 3집 앨범 〈러브(LOVE)〉로 돌아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관계 안에서 변화해온 40대의 고민과 삶이 새 앨범에 담겼다. 불안했던 시절과 작별하겠다는 다짐이다.
강허달림은 ‘블루지’한 정서가 짙게 배어나오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부른다. ⓒ시사IN 조남진

제주에서 오는 길이었다. 공항철도를 타고 연습실이 있는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5월5일 3집 앨범 기념 콘서트를 앞두고 강허달림은 서울과 제주를 출퇴근 중이다.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부스럭거렸는데 아이가 덩달아 깼다. 올해 열한 살인 딸이 ‘잘 다녀와’ 하고 배웅해주었다. 전날 야단을 치고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딸도 설움이 풀린 듯했다. '누굴 닮아 고집스럽다'면서도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의 세계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 맘대로 살아오다가 제대로 임자를 만난 거다. 아이란 존재는 자꾸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블루스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이 3집 앨범 〈러브(LOVE)〉를 낸 가장 큰 동력이기도 했다. 4월26일 오전 10시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12년 만의 정규앨범이라 질문을 많이 받는다. 왜 이리 오래 걸렸느냐고. 예전에는 오롯이 내면에 집중해서 나오는 생각들로 가사를 짓곤 했다. 유행가처럼 귀에 쏙 박히진 않지만, 자꾸만 곱씹게 되는 노랫말이 그만의 정체성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럴 겨를이 없었다. 2011년 2집 〈넌 나의 바다〉를 낸 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다. 공연-살림-육아-살림, 또다시 공연으로 “싸워야 하는” 삶이 이어졌다. 2016년 제주도 이주는 예상치 못한 결정이었다. 인권활동가인 남편의 직장이 제주로 바뀌었다. 아이를 함께 키우겠다는 일념이었지만, 음악가로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컸다. 새벽마다 목놓아 우는 아이며 변덕스러운 제주 날씨에 심리적으로 버거운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우울했던 것만은 아니다. 내면의 불안과 별개로 세 식구가 복작복작 지내는 일상이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아이를 통해 생명과 환경, 공동체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아닌 다른 관계로 인한 감정이 조금씩 생겨나는데 ‘이게 뭐지?’ 싶었다.” 그전에도 시위나 파업 현장마다 찾아가 노래를 부르면서 ‘인권 가수’로 불렸다. 그때는 타인이 사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딸이 살아갈 세계로 여겨졌다. 더 분개하고 더 고민하게 되었다. 스스로 변하고 있는 건 확실한데 도통 정리가 안 되는 상황, 가사를 쓰고 싶은데 뚜렷하게 실체를 알지 못해 방황하던 시간, “지난 10년이 딱 그랬다”.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의 3집 앨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윤정원 화백의 작업실에서 그림 한 점을 마주했다. 인간과 펭귄이 꼭 껴안고 있는 그림인데 강허달림은 그림 앞에서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가족을 돌보느라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고 한다. 2021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다. 오랫동안 내지 못한 정규앨범을 내야겠다는 용기도 함께 생겼다. “싱어송라이터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정규앨범 세 장은 내야 한다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3집 앨범에 수록된 열한 곡 전부 그가 작사·작곡했다. 영감을 준 윤 화백 작품은 앨범 재킷 곳곳에 이미지로 담았다.

삶의 애환 풀어내는 ‘쇳소리’

장르를 블루스로 한정한 적은 없는데 '블루스 디바'라는 호칭이 붙었다. ‘블루지’한 정서가 짙게 배어나오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록블루스 밴드 ‘신촌블루스’ 보컬을 거쳐 2005년 솔로로 데뷔한 베테랑 음악가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읊조리는 음색이 때론 우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를 다독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솔풀(soulful)'한 감성을 확 터트린다. 특유의 ‘쇳소리’가 삶의 애환을 풀어내는 것 같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방탄소년단(BTS) 뷔와 제시가 각각 그의 노래 ‘꼭 안아주세요’와 ‘외로운 사람들’을 추천하기도 했다. 가수 김호중은 강허달림의 오랜 팬으로 알려져 있다.

30대 때는 외로움과 쓸쓸함에 대해 주로 썼다. 실패한 연애담으로 쓴 ‘미안해요’ ‘옛 일기장’ 등은 어쩐지 집회 현장에서 많이 불렸다. "참 무모해, 무모하다 못해 절박하지(옛 일기장)"라는 가사가 공감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1집 〈기다림, 설레임〉(2008)이 그의 20대를, 2집 〈넌 나의 바다〉(2011)가 30대를 담았다면 3집 〈LOVE〉는 새로운 관계성 안에서 변화해온 그의 40대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앞선 음악에 비해 훨씬 밝은 분위기다. 수록곡 ‘어른아이’에서 “주저하지도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고 뛰어가 내 작은 아이야”라는 가사가, 타이틀곡 ‘LOVE’에서는 "그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축복"이라는 가사가 특히 그렇다. 마지막 곡 ‘다시 행복해지려 합니다’에서는 불안했던 시절과 작별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사랑만큼 큰 힘이 없더라. 저에게 엄마란 존재는 의무감이거나 연민의 대상이었지 이렇게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아니었다. 딸아이와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이런 거구나 느낀다.” 하루는 아이가 가사를 붙여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에 감동했다가, 또 하루는 소리치며 혼냈다. 새벽 내내 육아 상담 유튜브를 섭렵한 날도 있다.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다. 내 세계에서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는데 아이가 생기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미세하지만 또렷한 감정의 파문이 일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엄마이기 전에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딸에게 말해두었다. 그의 정체성이었고 누구 때문에 그만뒀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12년간 정규앨범만 내지 않았을 뿐, 활동을 거의 멈추지 않았던 이유다. ‘바다 영혼’과 ‘괜찮아요 Blues’는 세월호 참사 이후 만들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쇼미더머니 3〉 준결승 무대에도 출연했다. 래퍼 아이언이 부르는 ‘독기’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꽤 화제를 모았다. 그 당시엔 ‘힙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갖 악플이 쏟아졌는데 요즘 들어 그 무대가 소환된다. 자기 색깔을 가진 피처링 가수가 참여한, 드문 사례였다는 평가다. 그 댓글이 감격스러워 직접 캡처해두었다.

3집 앨범 <LOVE> 녹음 현장. 모든 곡은 원테이크 녹음으로 진행되었다. ⓒ강허달림

그사이 음악시장은 빠르게 변해갔다. 그의 표현대로 “싱글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이고 “빠르게 흘러가는 SNS 시대”다. 블루스 싱어송라이터가 만든 48분짜리 정규 앨범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심도 됐다. “내 노래가 한 곡으로 빵 터트릴 만한 요소가 없지 않나. 댄스곡도 아니고 그렇다고 뮤직비디오를 번듯하게 찍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도 아니고.” 블루스, 포크, 재즈 요소가 섞여 있다 보니 특정 음악 신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었다. 20여 년간 음반을 내놓으며 스스로에게 엄격해져야 했다. “나의 특성을 잘 알고 있어야 자꾸 비교하게 되지 않으니까. 나는 이만큼 했는데 왜 안 되는지 생각하면 끝이 없다. 이게 다 오래 버티기 위한 전략이다.”

자신을 피력하고 있는 앨범

막상 앨범을 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좀 달랐다. 대중적 반향은 없었지만 크고 작은 감동이 있었다. 하루는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가 직접 연락을 해왔다.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평론가가 뮤지션을 바라볼 때 새로운 시도를 하는지 이미 있는 것을 반복하는지 따졌는데,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자신을 피력하고 있는 앨범이라서 반가웠다는 것이다. 그처럼 인디 신에서 분투 중인 후배 음악가들도 ‘계속 움직여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그래도 연차 오래된 선배가 죽기 살기로 해보겠다고 열한 곡짜리 정규앨범을 내놓는 모습이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어느덧 26년 차 가수를 남몰래 기다려온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뭉클했다.

4월21일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한 날도 그랬다. 오래전부터 무척 나가고 싶었던 프로그램이다. 라디오에 출연하려고 제주 집에서 공항까지 운전을 하는데 왠지 벅차올랐다. 2005년 싱글 〈독백〉을 낸 후로 상승곡선을 가파르게 탄 적도, 사정없이 내리막길을 탄 적도 없이 꾸준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과정이었다. “어느 시점에 가수로서 수직 상승했다면 지금 이 아침에 라디오에 출연하겠다고 운전대를 잡는 이 순간의 기분을 맛볼 수 있었을까?” 뮤지션으로서 오래 잘 버텨왔다는 만족감이 컸다.

1집과 2집처럼 3집 앨범도 원테이크(끊김 없이 한 번에 녹음하는 방식) 녹음으로 진행되었다. 그가 고집하는 방식이다. 가수 현진영과 듀엣으로 부른 ‘그대는 내 사랑’은 9시간이나 녹음했다. 1, 2집은 너무 처절한 느낌이라 집에선 ‘금지곡’으로 분류되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듣기에 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자극적이지 않고 가능하면 무난하게 부르려 노력했다.

〈시사IN〉 인터뷰를 하러 공항철도를 타고 오는 길에도 3집 앨범을 틀었다. 그의 음악처럼 내면도 변했다. 나이 듦이 주는 선물 같다고 강허달림은 말했다. “20대, 30대까지는 앞뒤 안 가리고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보는 관점도 조금씩 달라졌다. 까칠함이 줄었다.” 예전에는 싫었던 본명으로 불리는 게 좋아진 것도 그렇다. ‘달림’이란 예명은 쉬지 않고 내달리고 싶다는 뜻이다. 강과 허는 부모님 성을 따왔다. 공경할 경에 순할 순이라는 이름 뜻이 싫어서 예명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본명도 꽤 괜찮게 느껴졌다. “이 순간까지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순리대로 온 것 같다. 순할 순, 얼마나 좋은가. 이런 게 나이 듦이 주는 즐거움인 것 같다.”

3집 앨범 <LOVE> 녹음 현장. 원테이크 녹음으로 진행되었다. ⓒ강허달림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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