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언어탐방] 스캔들: 일으킨 사람만큼 만든 사람도 주목을

한겨레 2023. 5. 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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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언어탐방]스캔들은 실체적 사실에 부합하는 사건이기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소문이기도 하다. 스캔들을 추문(醜聞)이라고 번역하는 이유다. 이는 스캔들을 실제 일으키는 사람도 있고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는데, 후자가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 역시 유효하다). 여기에도 권력이 개입한다. 정직하지 못한 언론권력은 무책임한 추문을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김용석 | 철학자

정치스캔들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은 그 구체적 내용을 알고 있으리라. 물론 그 내용에는 사실도 있고, 소문도 있으며, 추정도 있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재판도 진행되고 있다. 빈번해진 정치인들의 실언과 설화도 말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이면에 실체적 정치스캔들을 감추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장 자크 루소는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도덕성은 향상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타락한다고 봤다. 실제로 인간의 도덕적 수위가 눈에 띄게 올라가거나 내려가기라도 한다는 걸까? 사람들이 매우 도덕적이거나 아니면 아주 부도덕한 시기가 있는 걸까?

이에 정색하고 답하려면 근원적이고도 복잡한 철학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우리 일상을 관찰하더라도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특별히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착한 일을 하는 만큼 나쁜 짓도 한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지난 3천년 동안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 욕망과 절제, 사회적 화합만큼이나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 등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래서 현재 우리를 알기 위해 역사를 탐구하고 고전을 공부한다. 과거 인간의 행동에서 현재 우리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듯이 인간의 본성은 안 변한다고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변하듯이 인간도 변하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현생 인류와 아주 다르게 변해 있을지 모른다. 거시적 관점에서 인류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인류가 수백만년 전에 다른 영장류로부터 분기(分岐) 진화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도, 아직 진화 초기 단계에 있을지 모른다. 이에 비해 지난 수천년은 아주 짧은 기간이다.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눈에 띌 정도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기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쉽게 바뀌지 않는 본성과 함께 사람들은 공동체를 이루면서 좀 더 선하게 살고, 덜 악하게 행동하기 위해 어떻게 해왔을까. 비유적으로 말하면, ‘사회·정치적 인프라’를 구성하고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제도, 법, 체계화된 교육 등으로 인간 공동체에서 자유와 평등처럼 서로 모순될 수 있는 가치들을 조정하고 재조정하는 노력을 해왔다.

무엇보다도 도덕적 삶에 결정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제어하는 정치적 장치를 지속해서 재구성해왔다. 곧 권력을 경계하고 견제하는 작업을 해왔다. 권력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도덕적 삶에 충격을 가할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힘을 쓰다’ 보면 ‘일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권력에 대한 견제는 두가지 차원에서 이뤄져야 했다. 우선 제도적으로 권력의 집중을 방지해야 했다. 잘 알다시피 현대정치사는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 분산하기 위해 노력해온 역사다. 국가권력만이 아니라 정당 같은 정치집단도 마찬가지다. 당대표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비리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권력 행사는 권한이라는 합법적 형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곧 제도적으로 투명하게 행사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스캔들이 여전한 것은 이 두가지 차원에서의 대처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줄곧 보아왔듯이 권력자는 잠재적으로 세가지 욕망을 충족하려는 의지를 갖는다. 지배욕, 물욕, 성욕이 그것이다. 지배욕은 자신의 자유는 최대한 확대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하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말하면 ‘제 맘대로’ 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물욕과 성욕은 좀 더 구체적인 것이라서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한데, ‘성욕이라니, 웬 말?’이라고 할 독자가 있을 것도 같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중세시대 군주들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술 마시고, 살인하고, 사랑하지도 못한다면 세상을 정복한들 무슨 소용이었겠는가?”라고 물었다. 여기서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성욕의 실현을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했고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독특한 수사법으로 적절한 맥락에서 활용한 말도 있다. “군주가 증오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탐욕적이어서 신민들의 재산과 부녀자를 강탈하기 때문이다.” 곧 물욕과 성욕을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스캔들의 상당수는 정치적 스캔들이며, 정치스캔들은 모두 권력의 남용과 연관돼 있다. 곧 권력이 지배욕, 물욕, 성욕을 표출할 때 일어난다. 그 역사적 사례로 1970년대 미국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권력의 지배욕이 표출된 사건이다. 상대 정당을 염탐한다는 것은 지배력 확장의 한 방식이다. 최근 우리나라 고위공직자가 같은 정당 당원에게 “아무 말도 안 하면”이란 표현을 쓴 것은 상대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지배욕을 그대로 드러낸 언어스캔들이다. 정당 대표의 이른바 ‘돈봉투 사건’은 물욕과 연관된 스캔들이다. 정치스캔들이 ‘섹스스캔들’과 연관된 경우는 여러 사례가 있다. 육군성 장관이 소련 스파이와 관련 있는 매춘부와 불륜관계였다는 1960년대 영국 해럴드 맥밀런 내각의 존 프러퓨모 사건은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하는 경우일 뿐이다.

우리말 사전은 스캔들을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실체적 사실에 부합하는 사건이기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소문이기도 하다. 스캔들을 추문(醜聞)이라고 번역하는 이유다. 이는 스캔들을 실제 일으키는 사람도 있고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는데, 후자가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 역시 유효하다). 여기에도 권력이 개입한다. 정직하지 못한 언론권력은 무책임한 추문을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스캔들은 이런 이중적 차원을 동시에 갖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어원학자들은 영어 스캔들(scandal)이 덫, 함정, 장애물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스칸달론(skandalon)에서 유래한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한다. 스캔들을 일으킨 사람이든 만들어낸 사람이든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면 결국 자기 함정에 빠지게 된다. 도덕적 불명예는 당연한 죗값이고, 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스캔들의 실체는 서서히 드러나는데,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스캔들의 함정은 더 깊어지고 덫은 더욱 조여오게 된다. 수많은 문학작품이 가르쳐주듯이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정직이다. 정직하면 오히려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 서구어에서 정직(honesty)과 명예(honour)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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