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감염병 막는 방파제"…항공·항만 검역소 가보니
'바이러스 차단' 최일선 검역관들…"어떤 신종 감염병에도 대응"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아니 내가 1시간 있다가 중요한 계약 따러 제주도에 가야 한다니까!"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 2선검역대에서 검역관에게 항의하는 민원인의 고성이 울려 퍼졌다. 역학조사 결과 코로나19 의심 환자로 분류됐지만,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한다며 검역조치에 응하지 않았다.
실제 상황은 아니었다. 코로나19 유행동안 수많은 강성 민원인을 응대한 경험이 있는 검역관이 역할극에서 민원인을 연기한 것이었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과 출입기자단은 이날 인천공항에서 감염병 유증상자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한 역할극에 참여해 검역관 업무를 직접 체험했다.
코로나19 사태 3년여간 의료진과 더불어 최일선 현장에서 사투를 벌인 이들이 바로 검역관들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일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 선포를 해제한다고 밝혔고 국내 코로나19 상황도 나아졌지만 이들은 경계태세를 늦출 수 없다.
또다른 바이러스 출현으로 신종 감염병은 언제든 다시 유행할 수 있는데다, 실제 최근 엠폭스 확진자도 계속해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검역관들은 이날 발열 증상을 호소하거나 빨간 반점을 나타내는 스티커를 손등과 팔에 붙이고 코로나19와 엠폭스 의심 환자를 연기했다.
직접 체험해보니 검역관 업무는 예상보다 더 까다로웠다. 건강 상태와 여행력 등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른 입국자를 상대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감염병 의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발열 증상이 있었던 입국자가 비행기에서 해열제를 복용하거나, 발진이나 딱지 등 피부병변이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의 대부분인 엠폭스 의심 환자의 경우 맨눈으로 확진 여부를 판단하기란 절대 쉽지 않았다. 입국자가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이력을 자진신고하지 않을 경우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맹점도 있었다.
검역에 비협조적인 강성 민원인을 응대하는 일은 검역관의 어려움을 더했다.
인천공항에서 수년간 일했다는 한 검역관은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역학조사에 불응하며 6시간 동안 항의한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는 탑승동에 1선검역대 2개소, 2선검역대 4개소와 여객터미널에 1선검역대 4개소, 2선검역대 4개소가 있다. 제2여객터미널에는 1선검역대 2개소가 있다.
1선검역대는 입국객들이 공항으로 들어온 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검역대로, 검역정보사전입력시스템(Q-CODE·큐코드) 바코드 스캔과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한 체온 측정 등이 이뤄진다.
큐코드는 입국자가 항공기에 탑승하기 전 여행정보와 건강상태 등을 입력하면 격리 여부를 자동으로 판단하는 시스템으로 검역절차 간소화를 위해 작년 3월 시범사업을 거쳐 정식으로 도입됐다.
큐코드가 도입되기 전에는 검역관이 입국자 정보를 별도의 시스템에 일일이 입력하고 직접 격리 여부를 판단해야 해 비행기 1대당 검역에 1시간가량이나 소요됐다. 현재는 검역 시간이 3분의 1로 줄었다.
1선검역대에서 코로나19와 엠폭스 등 감염병 의심 증상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검역소를 통과해 입국심사를 받는다.
다만 이 과정에서 호흡기 질환이나 발열 등 의심 증상이 발견된 여행객은 2선 검역대로 이동해 역학조사를 받아야 한다.
검역은 공항뿐만 아니라 선박과 승객들이 바닷길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항만에서도 활발히 이뤄진다.
국립인천검역소는 인천항으로 입항하는 선박의 승무원과 승객, 화물에 대한 검역조사와 방역 활동을 통해 국민 건강을 보호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항만에서 일하는 검역관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
컨테이너와 대형 화물트럭 등 장애물이 많고 길이 복잡한 항만에서 하루에도 수십㎞를 이동해야 하는 검역관들은 늘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검역관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화물선에 직접 배를 타고 가서 사다리를 이용해 배 위로 올라가 검역을 실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인천항 검역소에서 일하는 이해두 검역관은 "외항 검역을 나가면 안전장치로 구명조끼 하나를 입고 아파트 10층 높이의 배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한 번은 사다리 한쪽이 끊어져 같이 간 동료가 추락할 뻔한 적이 있었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병과 싸우는 것도 힘들지만, 눈에 보이는 환경적 요소가 더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열악한 업무 환경과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검역관들은 어려운 시기에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방파제' 역할 할 수 있어 사명감을 느끼며 일한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는 심규형 검역관은 "K방역은 해외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럽고, 어떤 신종감염병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입국 시 세관과 입국심사는 당연한 절차로 생각하지만, 아직 검역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검역도 출입국의 당연한 절차로 인식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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