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초입 하얀 눈꽃…꽃말이 ‘영원한 사랑’인 토종 이팝나무[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5. 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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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풍년과 흉년을 점친다고 ‘신목(神木)’으로 불려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 신천리의 천연기념물 제307호가 가장 유명
‘하얀 쌀밥’ ‘하얀 눈꽃’ 뜻… ‘입하목(入夏木)’으로도 불려
니팝나무, 니암나무, 뻣나무… 한자 茶葉樹·六道木·流蘇樹 별칭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상징물인 ‘형제상’ 옆에 입하 지나면 활짝 피는 이팝나무 . 가난한 시절 ‘쌀밥(이밥)’을 연상시켰다는 이팝나무 꽃이 6·25전쟁 중 국군 형과 인민군 아우의 비극적인 상봉을 형상화한 ‘형제상’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2019년 5월9일 촬영

<봄비 그치고/여름이 시작되려는지/이팝나무 꽃이 하얗고/소복하게 피었네//제사를 지내지 않아/동네 잔칫집에나/다녀오시면 한두 숟갈/얻어먹었던 흰 쌀밥//꽁보리밥만 먹던 시절/도시락 밥 위에만 솔솔/뿌려주셨던 향긋한 맛// 풍성한 꽃을 보며/올해는 풍년 들어/실컷 먹게 해주겠다던/어머니>

이시향 시인의 시 ‘이팝나무꽃’에는 이팝나무의 어원과 생태, 사연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팝나무의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 속명 치오난투스는 ‘흰눈’이라는 뜻의 ‘치온(Chion)’과 ‘꽃’이라는 뜻의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로, ‘하얀 눈꽃’이라는 의미다. 영어로는 ‘프린지 트리(Fringe tree)’, 한자로는 육도목(六道木), 유소수(流蘇樹)라고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잎을 차 대용으로 사용해 이팝나무를 다엽수(茶葉樹)라고도 부른다. 니팝나무, 니암나무, 뻣나무라고도 한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형제상 앞에 오월의 눈꽃처럼 활짝 핀 이팝나무. 2020년 5월7일 촬영

"이팝나무가 초록 잎사귀 위에/ 하얀 쌀밥을 파실파실 피워/ 날아갈 듯 깔아 놓았다/ 하얀 쌀밥이 바람에 날아간다/(...)/ 순결한 흰밥은 하늘에 있고/ 이팝나무 위 둥둥 떠가는 구름을 타고/ 제삿밥처럼 소복소복 담겨 부풀어 오르는 것이/ 어미들 가슴 속에 기어코 이팝나무 꽃을 물질러 놓았다."

박정남의 시 ‘이팝나무 길을 가다’다. 언제부턴가 길 가로수로 이팝나무가 조성되기 시작해 4월말 5월초가 되면 이팝나무 하얀 눈 꽃이 거리를 장식한다. 이팝나무는 늦은 봄이면 하얗게 피는 꽃이 온 나무를 뒤덮을 정도로 피기에 마치 흰 눈이 소복히 내린 듯한 풍광이 봄에 내린 눈꽃을 연상케 한다.

이 눈꽃이 필 때쯤이면 아직 보릿고개를 넘지 못한 때라 배고프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하얀 쌀밥’으로 여긴 듯하다. 하얀 쌀밥을 ‘이밥’이라고 한다. 이밥의 어원은 ‘이(李)씨의 밥’이라는 뜻이다. 조선왕조 시대는 벼슬을 해야만 비로소 이씨 임금이 내리는 흰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 쌀밥을 ‘이밥’이라고 불렀다.‘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

커다란 나무에 하얗게 핀 꽃을 보고 그릇에 소복히 담긴 하얀 쌀밥을 연상한 그 시절 배고프고 가난했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비참한 현실이지만 이팝나무를 보며 풍성한 가을을 기대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북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 나이가 250살 정도로 , 높이 10.5m, 가슴높이 둘레 2.68m이다. 중산리 마을 앞 낮은 지대에 홀로 자라고 있으며, 나무 모습은 가지가 고루 퍼져 자연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차량 먼지 등으로 나무상태는 좋지 못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들 가운데 작은 편에 속한다. 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우리나라에서는 늦은 봄 이팝나무 꽃송이가 온 나무를 덮을 정도로 피었을 때, 이를 멀리서 바라보면 꽃송이가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했으며,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팝나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전해지는데, 이 꽃이 여름이 들어서는 입하(入夏)에 피기 때문에 입하목(入夏木)이라 불리다가 입하가 연음되면서 ‘이파’, ‘이팝’으로 되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전라북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팝나무를 ‘입하목’ 또는 ‘이암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팝나무는 한 해의 풍년을 점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는데, 흰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꽃이 많이 피지 않은 해는 흉년이 든다고 믿어 왔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이팝나무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애환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 온 나무로, 현재 8곳에 수백 년을 살아 온 노거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팝나무는 경남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 신천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07호다. 승주군 쌍암면의 500살 이팝나무를 비롯해, 고창 중산리, 광양읍수, 김해 천곡리, 순천 평중리, 양산 석계리, 양산 신전리의 이팝나무들이 산신령처럼 버티고 있다.

그해 풍년과 흉년을 이팝나무 꽃으로 점친다고 해서 예로부터 ‘신목(神木)’으로 여겼으며, 정자목 구실을 했다. 꽃이 피는 상태를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다. 습기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 이팝나무는 ‘꽃이 많이 피고 오래가면 물이 풍부하다’는 뜻이니 이와 같을 경우에는 풍년이 들고 반대의 경우는 흉년이 든다고 한다. 이런 나무를 우리는 기상목, 혹은 천기목(天氣木)이라 하여 다가올 기후를 예보하는 지표나무로 삼았다.

용산 전쟁기념관의 이팝나무 꽃.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암수 딴그루이다. 2019년 5월 9일 촬영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키 큰 낙엽활엽교목으로, 우리나라 중부이남 산골짜기나 들판에서 자생한다.

우리나라를 원산지로 이웃 일본 대만 중국에 분포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희귀식물 범주에 든다. 이팝나무는 높이가 약 20m까지 자라며,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긴 타원형이다. 꽃은 암수딴그루라고 한다. 5∼6월에 개화를 한다. 백색을 띠는 꽃은 새 가지의 끝부분에 달린다. 암수딴그루이기에 암수 양성화꽃이 각각 따로 있다. 꽃받침과 화관은 4갈래로 갈라지고 수꽃은 수술 2개가 화관통에 붙어 있다. 암꽃은 수술 2개와 암술이 1개이다. 열매는 타원형 핵과로 10월경 검은 보라색으로 익는다.

오월의 꽃 이팝나무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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