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파5홀’이 ‘마의 파4홀’로 변신하면 … 선수는 괴롭지만 골프팬은 흥미진진 [오태식의 골프이야기]

2023. 5. 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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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CC 16번홀 전경.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처음 평균 300야드 이상을 친 선수가 나온 것은 1997년 일이다. 그해 미국의 장타자 존 댈리가 평균 302.0야드를 날려 첫 ‘300야드 클럽’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300야드 이상을 치는 선수들이 꾸준히 늘어 2022~2023시즌 PGA투어에서는 현재 무려 89명이 300야드 이상을 치고 있다.

장타자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코스 변별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드라이버 샷을 멀리 쳐 놓고 짧은 거리에서 ‘웨지 샷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골프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골프공 비거리 성능 제한을 하겠다고 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자 골프대회를 열 때 평소 파5홀로 운영되던 홀을 파4홀로 변경하는 것도 장타자들이 부쩍 많아진 이유가 없지 않다.

지난 해 파5홀 한 개를 파4홀로 바꾼 파71 코스에서 치러진 대회는 모두 8개다. 대회가 열린 순으로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라비에벨CC 올드코스), GS칼텍스 매경오픈(남서울CC), SK텔레콤오픈(핀크스GC), KPGA 선수권(에이원CC), 코오롱 한국오픈(우정힐스GC), 아시아드CC 부산오픈(아시아드CC), 신한동해오픈(코마CC), DGB 금융그룹오픈(파미힐스CC) 등이다.

작년 남자 골프대회가 열린 코스의 여러 홀들 중 가장 어렵게 플레이된 곳은 남서울CC 16번 홀이었다. 물론 파5홀을 파4홀로 변경한 곳이다. 4라운드 평균 4.58타가 나왔다.

정찬민. <사진 GS칼텍스 매경오픈 대회조직위>
2021년에는 이 남서울CC 16번 홀을 제치고 SK텔레콤오픈의 대회장 핀스크GC(파71) 4번 홀이 가장 어렵게 플레이됐다. 평균 타수가 무려 4.75타나 됐다. 이 홀 역시 평소에는 파5홀로 운영되던 곳이다. 당시 SK텔레콤오픈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이 홀 변경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최경주는 “PGA 투어 대회에는 500야드가 넘는 파 4홀이 대회마다 3, 4개 정도 있다. 선수들이 롱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해야 하는 파4홀이 더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최경주는 또 “어려운 코스에서 쳐봐야 실력도 향상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선수들이 내 진심을 안다면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물론 지난 해 SK텔레콤오픈 주최 측은 파4홀로 변경된 4번 홀이 너무 어렵다고 판단해 4번 홀은 그대로 파5홀로 두고 대신 10번 홀을 파5홀에서 파4홀로 바꿔 대회를 치렀다.

짧은 파5홀은 쉬운 ‘천사의 버디 홀’이지만 긴 파4홀로 바꾸면 순식간에 어려운 ‘마의 보기 홀’로 변신한다. 선수들은 이렇게 어렵게 변형된 홀들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동일 조건’이라고는 하지만 스코어카드에 버디, 파 대신 보기, 더블보기가 적히는 게 썩 기분 좋을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프팬들은 프로골퍼들의 화려한 버디·이글 사냥에도 환호하지만 이들이 처한 곤경에서도 묘한 짜릿함을 느낀다. 또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에서는 남모를 쾌감을 느끼게 된다.

김비오. <사진 GS칼텍스 매경오픈 대회조직위>
5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벌어진 제42회 GS칼텍스 매경오픈 2라운드에서도 파4홀로 변경한 16번 홀은 확실히 선수들의 희비를 가르는 홀이 됐다. 이틀 연속 단독선두(합계 11언더파 131타)에 나선 정찬민은 이 홀에서 파를 잡았고, 2타차 단독2위(합계 9언더파 133타)에 나선 이정환은 보기를 범했다. 또 합계 7언더파 135타로 공동3위에 나선 디펜딩 챔피언 김비오는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았다. 공동3위 아마추어 장유빈은 파를 세이브 했고, 역시 공동3위 정태양은 보기를 기록했다.

과연 이 홀의 성적이 어떤 최종 결과를 만들어낼지 흥미진진하다.

오태식기자(ots@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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