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고의’만 아니면 될까?[뉴스레터 점선면]

김지혜 기자 2023. 5.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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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추모행진. 연합뉴스

※뉴스레터 점선면 5월3일자(https://stib.ee/xgY7)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독자님, 안녕하세요. 지난 3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전해드렸던 점선면 Lite <전셋집 구해야 되는데>, 기억하시나요?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저는 전셋집을 구했어요.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그대롭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사건을 다룬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최근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이 담긴 특별법의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차갑습니다. “보여주기식 대책이다” “피해자 감별법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죠.

일단 지나치게 엄격한 피해자 인정 기준이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특례 지원을 받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려면 정부가 제시한 6개의 요건 ‘모두’를 충족해야 하는데요, 그 내용도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처럼 모호한 경우가 많아요.
실제 피해를 입은 많은 임차인들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피해자에게 더 포용적이고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른 목소리도 있습니다. “모든 사기 피해는 평등”한데 굳이 특별법까지 만들어 정부가 나서 피해자 지원을 해야 하냐는 반문을 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죠.

독자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독자님께서는 ‘전세사기’라는 범죄가 ‘개인의 일탈 혹은 불운의 결과’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구조적 문제로 발생한 사회적 재난’이라 보시나요? 전세사기를 둘러싼 배경과 맥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부의 피해자 지원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점선면은 전세사기의 사회적 맥락을 짚어보려고 해요. 전세사기는 무엇이며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 그 책임과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와 얽혀있는지 등 독자님께서 곰곰 생각해볼 수 있도록 내용을 정리했어요. 최근 전세사기를 집중 취재하고 있는 경제부 심윤지 기자와 함께 준비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법으로 지원한다고?

· 4월27일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이 담긴 특별법 내용을 발표했어요. 서울 강서구, 인천 미추홀구, 동탄 신도시 등 전국 곳곳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자 나온 법안이에요. 특별법은 2년간 적용됩니다

· 당장 ‘살 집’을 잃은 피해자의 주거 안정을 돕는 것이 대책의 핵심이에요. 전셋집이 경매 혹은 공매로 넘어가면 보증금도 없이 내쫓기게 되는 피해 임차인에게, 이 집을 가장 먼저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 겁니다.

· 이 권리를 ‘우선매수권’이라고 부릅니다. 집 구매 비용은 물론 피해자가 마련해야 해요. 이미 수천, 수억원의 보증금을 잃은 피해자로서는 빚을 추가로 낼 수밖에 없겠죠. 정부는 이를 고려해 장기 저리 대출도 함께 지원합니다.

· 집을 사고 싶지 않다면? 다른 선택지도 있습니다. 피해자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하는 거예요. LH가 피해 주택을 구입하고, 그곳에 살던 피해자에게 공공임대를 하는 방식입니다. 거주는 최대 20년까지 가능해요. 임대료는 기존 공공임대주택 수준이고요.

·피해자들의 빼앗긴 보증금부터 일단 지원해야 한다는 ‘선지원 후구상’ 방안은 정부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채권매입기관이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피해자를 먼저 지원하고, 그 비용은 공공이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회수하는 ‘선지원 후구상’ 방안을 고집하고 있어요.

· 이 모든 지원은 정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에게만 제공됩니다. 아래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5월1일 국토부는 피해지원 적용 기준을 다소 넓힌 수정안을 국회에 제시했습니다)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주택 경·공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 여기까지가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법안 내용입니다. 민주당과 정의당 역시 각기 다른 내용의 전세사기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요. 여야는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법안을 심사 중입니다.

정부가 전세사기 지원 특별법은 피해자의 주거 안정을 돕는 데 방점이 찍혀 있지만, 피해자 인정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비판도 나와요. 야당과 일부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선지원 후구상’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1. 그런데 전세사기가 뭐예요?

“범죄인 전세사기와 집값 하락에 따른 전세보증금 미반환은 구분해야 하며, (사기와 단순 미반환 사이의) 회색지대에 대한 분류 작업이 필요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서울 화곡동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를 찾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전세사기’로 통칭할 순 없고, 보증금을 ‘떼인’ 모든 피해자들을 국가가 도와줄 수도 없다는 말이죠.

그럼 ‘전세사기’와 ‘전세보증금 미반환’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임차인 입장에서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점에선 동일한 사건처럼 보이는데 말입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을 참고해보면 어떨까요? ‘전세사기 피해자’와 ‘전세 보증금 미반환 피해자’를 구분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으니까요. 요건 목록을 훑어보니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전세사기로 보면 된다고 하네요.

임대인에게 사기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면,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도 ‘단순 보증금 미반환’ 사건일 뿐이라는 얘기예요. 하지만 사기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도 수사가 개시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어떨까요? 혹은 그저 상환 능력이 없어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것일 뿐 사기 의도는 없었다는 거짓말을 하는 임대인이 등장한다면요?

실제로 주택세입자를 위한 무료 법률상담을 지원하는 ‘세입자114’의 센터장 이강훈 변호사는 “인천 미추홀구만 해도 전세사기 피해자 2700여 가구 중 사기범이 기소된 가구는 161가구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해요. “경찰서마다 사건이 쌓여있지만 전체 피해 규모를 파악하지 못 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고소·고발을 전제로 전세사기 의도가 있는 경우에만 구제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면서요.

인천 미추홀구에서 380억원대 전세사기를 벌인 ‘건축왕’ A씨는 지난해 자신의 혐의를 보도한 언론사에 “경찰이 가로챘다고 한 보증금은 아직 피해 금액으로 현실화된 것이 아니다. 회사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세입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의 반론 보도를 요구하기도 했어요. ‘사기 의도’가 없음을 만방에 어필하는 방법이죠.

그렇다면, ‘사기 의도’를 간파하는 것 외에 ‘전세사기’와 ‘단순 보증금 미반환’을 구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요? 현실은 비관적입니다. 심윤지 기자는 “주택 하락기마다 반복되는 ‘단순 보증금 미반환’과 ‘전세사기’를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전합니다. ‘전세사기’를 당한 누군가가 ‘단순 보증금 미반환’ 피해로 분류돼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답답한 일입니다. 부동산 학계의 논의를 살펴보면 답이 나올까 싶어 논문들을 뒤져봤습니다. ‘전세사기’의 명확한 정의를 알면, ‘전세사기’와 아닌 것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학계에서도 전세사기 개념이 아직 분명하게 정의된 건 아니라고 합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논문에서 “전세사기가 아직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으나 정부의 자료와 피해사례를 기반으로 정리해본다면 전세사기는 ‘집주인이나 건축주, 중개인 등 전세 계약 관련자들이 세입자를 속여 전세보증금을 가로채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고 씁니다. 역시 포인트는 ‘속여’, 즉 기망의 고의가 개입됐는지의 여부입니다.

앞선 사례에서 보듯 ‘고의’를 판단하거나 입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갚을 생각이었다”는 사기꾼의 뻔뻔한 변명 혹은 회피 수법을 돌파할 증거를 잡아내야 하는 건 피해자의 몫이 되어야 하니까요.

우리는 현실적으나 학술적으로나 ‘전세사기’와 ‘전세 보증금 미반환’을 구분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돈은 눈에 선하지만, ‘고의’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 걸요.

사실 임대인에게 기망의 고의가 있건 없건, 사건의 분류가 전세사기든 전세사고든,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하루 아침에 도둑맞은 다 같은 ‘피해’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임대인 개인의 ‘고의’ 입증에 매달리기보단, 이같은 피해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사회적 조건과 구조를 깊숙히 들여다보는 것이 더 필요하고 시급한 일 아닐까요?

2. 깡통전세와 전세사기의 상관관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세사기의 정의가 너무나 모호한 탓에, 정부는 아직 전세사기의 전체적인 규모나 피해자의 수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세사고, 즉 전세사기를 포함한 전체 보증금 미반환 사고의 규모를 추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보험 ‘대위변제액’의 규모를 보면 됩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HUG가 세입자들에게 대신 반환한 보증금의 총액을 집계한 데이터입니다.

올해 1월, 딱 한달 동안 HUG가 집주인 대신 반환한 보증금이 무려 1692억원에 달해어요. 대위변제액의 규모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1년간 583억원 정도에 그쳤던 대위변제액은, 지난해 전년의 두배 수준인 9241억원까지 치솟았죠.

HUG 보증보험사고 통계를 분석한 김진유 교수는 최근 폭증하는 전세사고의 원인을 ‘깡통전세’에서 찾습니다. 통상 집값 대비 전셋값의 비율(전세가율)이 80%를 넘어가면 ‘깡통전세’라고 부르는데요, 전세 보증금이 과도하게 높아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높은 주택을 칭하는 말이에요.

김 교수는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에 육박하거나 오히려 초과하는 깡통전세가 많은 지역에서 전세보증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서 “상당수는 고의적 전세사기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깡통전세와 전세사기는 함께 갑니다. 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전세 보증금 미반환사고는 전세가율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은 주로 연립·다세대 주택 거래 비용이 높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대규모 전세사기가 연달아 터져나온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는 깡통전세 거래량이 전국에서 손에 꼽히게 많은 것으로 집계된 바 있죠.

깡통전세가 횡행하는 환경에서는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뿐만 아니라 기망의 고의가 개입된 전세‘사기’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분양대행업자와 바지 임대인, 부동산중개업자까지 공모하는 최근의 조직적인 전세사기는 전셋값을 집값보다 높은 수준으로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어요. 신축 빌라 세입자를 속여 분양대금보다 높은 전세 보증금을 받음으로써 임대인은 자신의 자본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서도 수십, 수백채의 빌라를 소유할 수 있게 되죠.

사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전세사기’는 부동산중개업자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를 속이고 이중계약 하는 방식의 범죄를 주로 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같은 집을 두고 임대인에게는 월세 계약서를, 임차인에게는 전세 계약서를 들이밀어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을 들고 ‘튀는’ 방법이 대표적이었죠.

“중개업자와 짜고 대출 받아 튀는 집주인”으로 대표되는 ‘신종 전세 사기 수법이 등장한 것은 2013년 즈음이었어요. 당시에도 지금처럼 집값이 떨어지면서 ’깡통전세‘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던 때였고요. 전세금 반환보증이 처음 시행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3. 갭 투자의 ‘고의’를 찾아서

그럼 지금 이 시점에 깡통전세가 이렇게까지 많아진 원인은 무엇일까요? 지난 몇년 간 거칠게 휘몰아쳤던 갭 투자 광풍의 여파입니다.

갭 투자는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이 적은 집을 골라 전세를 끼고 매입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를 말합니다. 집값과 전셋값이 함께 폭등하고 금리는 0%대에 머물렀던 2020년 즈음부터 2022년까지, ‘영끌’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수백채의 주택을 갭 투자로 구매했다는 이들의 성공신화가 어디서나 쩌렁쩌렁 울려퍼졌죠. 자기 자본이 거의, 아니 아예 없이도 집주인이 되고 임대인이 될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에서 2020년부터 2년8개월 간 ‘주택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고 집을 구매한 개인 약 150만명을 조사한 결과, 그중 약 12만명이 집값 대비 전세 보증금이 80%가 넘는 깡통전세를 구매한 ‘갭 투자자’였다고 해요. 전체 43만명의 임대 목적 주택 구매자 중 3분의 1 가까이가 집값의 20%도 되지 않는 자본만 들여 집을 사는 데 성공했다는 거죠.

다른 통계도 있습니다. 지난 2월 국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9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세입자 보증금을 승계하는 방식, 즉 갭 투자 방식으로 매입된 주택이 73만3000가구에 달한다고 해요.

문제는 집값 하락기에 접어든 2023년 현재입니다. 금리가 상승하고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고 있는 지금, 73만에 달하는 갭 투자 가구 중 28%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어요. 숫자로 보면 무려 20만9000가구에 달하고요.

이들 갭 투자자들에게 임차인의 보증금을 가로채려는 사기의 ‘고의’가 있든 없든, 중요한 건 이들의 존재 자체가 이미 ‘전세 사기’ 혹은 ‘전세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는 거예요.

사실 이 위험 요소는 ‘갭 투자’라는 투자 방식에 이미 내재돼 있는 것이기도 하죠. 국토연구원 연구팀은 “갭 투자가 세입자 보증금을 레버리지 삼아 시세차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위험한 투자 방식임에도 ‘이익은 임대인 혼자, 손해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같이’ 보는 구조”라고 지적해요.

‘갭 투자’의 구조에는 애초부터 ‘임차인의 피해 가능성’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알면서도 여태 묵인해 왔던 것일까요? 집값 상승기에는 ‘쏠쏠한 투자’지만 집값 하락기에는 임차인의 보증금까지 앗아가는 ‘위험한 투기’로 변모할 수 있는 갭 투자의 두 얼굴을, 적어도 정책 전문가와 입안자라면 이미 훤히 알고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임대인의 투자 혹은 투기의 위험을 임차인에게 덮어씌우는 갭 투자가 한동안 ‘성공신화’의 서사로 자랑스레 회자됐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갭 투자의 폭증을 묵인하고 방조한 정부에겐 도대체 어떤 ‘고의’가 있었던 걸까요?

4. 정부의 ‘고의’를 찾아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피해자가 속아서 사기를 당한 경우 그 피해금액을 국가가 먼저 대납해주고 다른 곳에서 충당하는 제도는 있지도 않고 선례를 남겨서도 안 된다”며 “모든 사기 피해는 평등하다”고 말했습니다.

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국가가 먼저 지원해주고 후에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자는 ‘선지원 후구상’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재차 밝히면서였어요.

원 장관은 이와 동시에 문재인 정부와 야당을 겨냥해 “원인 제공자”라고 쏘아붙이기도 합니다. 여당은 잇달아 “지금의 전세사기가 횡행하는 원인은 분명 문재인 정권의 이념적 부동산 정책 실패에 있다” 등의 메시지를 냈고요. 누가 정권을 잡았든 정부 정책이 전세사기의 원인이라면 그 피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정부에게 있을 텐데 말입니다.

서민들을 고통과 공포로 몰아넣은 깡통전세와 전세사기의 원인으로 집값 폭등을 막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자주 거론됩니다. 지난해부터 최근의 현상들이 이미 예고됐음에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한 윤석열 정부의 잘못과 함께요.

세부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대출보증과 전세보증보험의 방만한 운영입니다. 당시 정부는 집값과 전셋값이 폭등하자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HUG 대출보증과 전세보증보험을 대폭 확대했는데, 이 조치가 아이러니하게도 전세사기에 악용되면서 세입자의 주거권을 도리어 위협하는 부메랑이 됐습니다.

HUG의 전세보증보험은 전세가율 100% 주택까지 가입이 가능했습니다. 전셋값이 집값에 맞먹는 수준이라도 문제 없이 HUG는 보증해줬다는 거예요.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있는지, 신용은 어떤지, 전셋값은 적당한지 등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주택가격 산정 기준을 공시가격의 150%까지 적용했죠. 전세사기범들은 보증보험을 무기로 세입자들을 안심시키며 무탈히 ‘무자본 갭 투자’의 토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HUG가 불 붙인 갭 투자는 정책의 애초 의도와 달리 집값과 전셋값을 계속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애초 정부가 밝힌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정책은 또 있어요. 바로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예요. 다주택 임대사업자들에게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특혜를 주며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결국 다주택자들의 추가 매입과 집값 폭등을 불렀죠. 이같은 부작용으로 아파트에 한해 주택임대사업자제도는 폐지됐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방침입니다.

임차인 주거안정을 위한 문재인 정권의 정책들은 ‘선의’를 표방했지만 결국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라는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전세사기의 ‘고의’를 입증해야 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결국 거대한 ‘선의’의 피해자인 셈이에요.

최근에 기승을 부리는 전세사기는 한때 ‘광풍’을 몰고 온 갭 투자로 발생한 깡통전세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갭 투자자들의 ‘욕망’과 치밀하지 못한 정책으로 전세난을 잡아보고자 한 정부의 ‘선의’가 만나 ‘전세사기’라는 범죄가 배양되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죠. 그런데도 정부의 법안은 피해자에게 ‘전세사기의 의도’를 입증할 책임을 지우고 있습니다.

오늘의 ‘면’은 전세사기 이슈와 관련해 읽어볼 만한 양질의 경향신문 칼럼 두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채워보려고 합니다. 원문도 함께 읽어보시면 독자님만의 관점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전에 ‘미리보는 점선면’ 남겨주신 독자님들의 의견도 함께 공유해볼게요.

“금전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한테 우선매수‘권’을 준다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까요? 공공임대 방식도 결국 피해자들 불안정한 주거 상태를 보장해주지 않네요. 사기에 가담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공인중개사의 역할 및 책임도 강화해야 할 것 같아요.” (란조님)

“이번 사건이 안타깝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기 피해자에게 적용해줄 수 있는 수준의 지원 방안으로 한정해야 합니다. 사기꾼에 대한 강력한 처벌, 명확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 피해자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 보장. 다만, 피해액 전액 지원은 불가능합니다.” (익명의 독자님)

“피해 지원보다는 피해가 나지 않게 선행해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하는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죽은머리님)

1. 우리의 집은 투자상품이 아니다

“노동권을 악화시키고 공공복지를 취약하게 만들면서, 정부와 은행, 미디어는 빚내서 집 사라고 합창을 했다. 각자 삶은 각자 책임지라는 신자유주의 정책하에, 한국인들에겐 ‘집 한 채’가 연금이고, 보험이고, 노후대책이 되었고, 부채는 우리의 목줄이 되었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의 칼럼을 이번 점선면에서도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채 편집위원장은 전세사기의 원인으로 주택의 상품화, 시장화, 금융화를 꼽습니다. 정권을 막론하고 한국 정부는 아주 오랫 동안 사람들이 거주할 집이 아니라, 구매할 집을 공급하는 데에만 집중해왔습니다. 그것이 집값 상승기이든 하락기이든 말이죠. 전세사기로 온 나라가 공포에 떠는 지금이야말로 팔기 위한 ‘주택 시장’이 아닌 살기 위한 ‘주택’을 위한 정책으로 선회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닐까요?

2. 단타가 아닌 장타의 주거 사다리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단타가 아닌 장타의 주거 사다리를 구축하고, 자가 소유와 임대주택 정책은 보완재로 다뤄야 한다. 꾸준히 공급되는 주택, 줄어드는 인구, 부모 세대로부터 발생하는 부동산 상속까지 고려했을 때, 세입자에게는 단지 주거 사다리를 탈 수 있는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전세제도는 임차인에서 임대인으로 가는 ‘주거 사다리’로서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다는 데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거예요.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은 ‘주거 사다리의 다음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공포와 위협이 추동하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그가 제안하는 대안은 공공임대주택의 활성화와 안정화입니다. 앞으로 저금리 시대가 이어진다면 전세제도는 위험천만한 ‘갭 투자’ 없이 유지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세제도 다음의 ‘사다리’를 제대로 고민해볼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시효를 다해가는 전세제도 다음의 ‘주거 사다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시장의 ‘상품’이 아닌 주거 공간으로서의 ‘집’의 기능과 역할에 중점을 두는 공공임대주택의 활성화가 주요 대안으로 언급됩니다.

세 줄 점선면

▶ 정부가 최근 내놓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은 피해자의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고 모호하게 규정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특별법은 ‘전세사기 의도’ 여부를 ‘수사 개시 등’을 통해 판단하겠다고 하지만, 깡통전세와 전세사기를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 깡통전세와 전세사기를 부른 구조적 원인에는 ‘기망의 고의’가 아닌,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갭 투자자들의 ‘욕망’과 어떻게든 전세난을 잠재워 보려던 정부의 ‘선의’가 드리워져 있다.

※글에 첨부된 링크와 추천 기사를 보시려면 뉴스레터 점선면 원본(https://stib.ee/xgY7)을 확인해주세요. 매주 화~금요일 오전 7시 메일함으로 보내드리는 점선면을 구독하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에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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