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단돈 4만 원이면 귀족이 될 수 있는 나라, 그들이 꿈꾸는 건?

심영구 기자 2023. 5. 2. 11: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웃로오션 프로젝트] Ep3. - DREAMERS OF A FLOATING WORLD
 

스브스프리미엄, 스프는 '아웃로오션 프로젝트'와 함께 준비한 [Dispatches from Outlaw Ocean]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웃로오션'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스프가 준비한 텍스트를 더해 스프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지식뉴스를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3편의 주제는 '바다 위 독립 국가들'입니다.
 

단돈 4만 원이면 당신도 귀족!


신분제가 있던 조선시대, 돈으로 족보를 사 양반이 되었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족보와 관직을 사고파는 게 만연해, 초기에 7%에 불과했던 양반 비율이 후기에는 전체 백성의 70%에 달했다고 하죠.

양반과 상민, 혹은 귀족과 천민의 구분이 거의 사라진 것 같은 이 시대에 "나는 귀족이 됐다"는 인증 글을 올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21세기가 된 지도 20년이 지난 요즘에 말이죠. 바로 영국 근처에 있는 나라 '시랜드 공국 Principality of Sealand'에서 귀족 인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귀족이 되려면, 인증을 받으려면, 돈만 내면 됩니다. 영국 돈으로 24.99파운드부터 시작해 최고가 199.99파운드까지 나와 있는 이 상품들, 한국 돈으로는 4만 원에서 33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편리하게 시랜드 공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환경 보호를 위해 포장이나 배송 없이 디지털 팩으로만 받을 수 있다고도 하네요.

시랜드공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노블 타이틀 팩'


'시랜드 공국 귀족'이라고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보면 꽤 많은 구매 후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로 재미로 샀겠지만, 신분제가 철폐된 현대 사회에서 귀족이나 양반이 되고 싶은 욕구는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겠습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건 '시랜드 공국'이라는 곳의 정체겠죠. 이 나라는 대체 뭐기에 인터넷에서 귀족 증서를 팔고 있을까요? 사실 이곳을 독립된 '국가'로 볼 수 있을지조차 논란입니다.

시랜드 공국

위 사진에 나와 있는 저곳이 바로 시랜드 공국입니다. 저게 답니다. 어찌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구조물에 불과한데 국가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아웃로오션 프로젝트 3회에서는 이 작고 특이한 나라 '시랜드 공국'을 다룹니다.

해적방송 DJ, 아내 생일에 나라를 선물했다


시랜드 공국의 기원을 알려면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방송 규제를 피해 사용 허가를 받지 않고 전파를 송출하는 형태의 해적방송(pirate radio)이 유행했습니다. 1960년대는 전설의 록밴드 비틀즈가 데뷔해 한창 활동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정규 방송 시간 외에도 계속 대중음악을 듣고 싶던 시민들의 욕구를 파고든 게 해적방송이었고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해적방송 DJ들은 주로 영국의 주변 바다에서 방송을 했습니다. 육지를 벗어나면 영국 법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겁니다. 2차 대전 당시 만들어졌던 해상요새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패티 로이 베이츠(Patty Roy Bates, 이하 베이츠)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베이츠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1967년 9월 2일, 베이츠는 영국 해안에서 7마일 떨어진 구 해상요새 '포트 러프'에서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나라 이름을 시랜드(Sealand)로 명명하고 자신을 로이 베이츠 1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 시랜드 공국의 건국일은 아내 조안의 생일과 같은 날인데, 훗날 아들 마이클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숭배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기왕이면 아내의 생일선물까지 더해 겸사겸사 나라를 세웠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시랜드 공국 설립자 Patty Roy Bates와 그의 아내 Joan (뉴욕타임스, Getty Images)

시랜드 공국은 국가로 인정받았나


가장 가까이 있는 영국은 이 시랜드 공국을 그냥 뒀을까요? 시랜드 공국 공식 홈페이지에는 "영국 군함이 무력으로 시랜드 공국을 점령하려 했다"라고 적혀 있고 뉴욕타임스는 관련 기사에서 "베이츠가 영국 군함에 경고 사격을 가했다"라고 썼습니다. 여러 설들이 있지만 1968년 영국 법원은 '시랜드 공국이 영국 관할권 밖에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1982년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이 채택되면서 각 나라는 최대 12해리까지를 자국의 영해로 설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영국 해안으로부터 7해리 떨어져 있는 시랜드 공국은 현재는 영국 영해에 속해 있습니다. 영국은 다른 조치 없이 그저 관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1968년 판결은 종종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1978년 시랜드 공국에 고급 카지노를 만들려는 이들이 공격에 나서 로이 베이츠의 아들 마이클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로이 베이츠는 반격에 나서 공국을 탈환하고 거꾸로 습격자 중 일부(독일인 포함)를 인질로 붙잡았습니다. 독일 정부가 영국 정부에게 인질 석방을 요구했는데 영국은 68년 판결을 근거로 개입을 거부했고 독일은 결국 시랜드공국에 외교관을 보내 석방 협상을 벌여야 했습니다. 시랜드 공국은 이를 놓고 "독일이 시랜드 공국을 독립 국가로 인정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구글 맵으로 본 시랜드공국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