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정원 “묘비명에 새길 그 말…지금 우리 모두가 ‘댄싱퀸’” [인터뷰]

2023. 5. 1. 13: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맘마미아’ 1000회 공연 달성
세계 최장수 도나로 울고 웃은 날들
35년차 뮤지컬 배우…무대 위 다짐은
매일 처음처럼, 오늘이 마지막처럼
 
“운명 같은 ‘맘마미아!’…날 살린 작품
지금 이순간 우리 모두가 ‘댄싱퀸’”
2007년부터 어느덧 16년째 ‘맘마미아!’ 무대에 서고 있는 배우 최정원은 “‘댄싱퀸’은 나의 ‘인생곡’”이라며 “지금 이순간 우리 모두가 ‘댄싱퀸’”이라고 말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운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만남은 2007년 1월. 16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적인 팝 그룹 아바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도나 역할로 무대에 처음 섰던 때다.

“첫 공연 이후 열이 40도 넘게 오르더라고요.”

‘초인적인 힘’으로 무대를 마쳤지만, 공연 직후 최정원은 응급실로 실려갔다. 병원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쓸개관에서 담석이 세 개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더이상의 공연 강행은 안된다고,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터져버릴 거라는 불호령을 들었다. ‘베테랑 배우’ 최정원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사전에 중도 포기’란 없다. 올해로 35년차.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한 그날부터 “매일 첫 공연처럼 무대에 오르고, 오늘이 마지막 무대인 것처럼 100%를 쏟아냈다”. 병원에서 공연장으로 출근했고, 소화가 안돼 2주간 미음만 먹으며 지냈다.

2007년 ‘맘마미아!’ 당시 최정원 [신시컴퍼니]

“그러다 다시 사진을 찍었는데, 담석 세 개가 다 빠진 거예요. 정말로요. 어느날 ‘댄싱퀸’을 신나게 부를 때 배에서 데구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때 다 빠졌나봐요. (웃음)”

한 명의 배우가 같은 배역으로 1000회 공연을 달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으로 서른 여덟 살에 처음 만나, 어느덧 50대가 됐다. 도나로 무대 위에 선 날들이 1030여일.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1000회를 넘긴 작품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는 세계 ‘최장수 도나’다. ‘맘마미아’(6월 25일까지) 공연이 한창인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난 최정원은 “지금이 도나의 정서를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나이”라고 했다.

올해로 16년째 ‘맘마미아!’ 무대에 서고 있는 최정원은 “지금이 도나의 정서를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나이”라고 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 엄마로의 성장, 고스란히 ‘맘마미아!’ 안으로…

1999년 영국에서의 초연 이후, 올해로 24주년을 맞는 ‘맘마미아!’는 가장 성공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그리스의 작은 섬을 무대 삼아 도나와 친구들, 딸 소피의 이야기를 담는다.

16년의 시간이 지나자, 최정원과 그의 딸인 싱어송라이터 유하(24)는 ‘맘마미아!’ 속 도나와 소피 또래가 됐다. 두 사람 역시 ‘맘마미아!’ 모녀처럼 투닥거리다가 한없이 다정한 친구가 된다. 유하가 자라는 동안 최정원은 매일 여섯시 반에 일어나 딸의 아칩밥을 차려줬고, 곱게 자란 아이의 머리를 빗겨줬다.

“도나가 된 첫해에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요. 그 애가 이젠 다 커 시집갈 수 있는 나이가 됐죠. 딸은 제게 엄청나게 많은 감정을 알려줬어요. 마음은 소녀인데 엄마는 처음이라 서툴렀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서로 이해하며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됐어요.”

16년째 ‘맘마미아!’ 무대에 서고 있는 최정원은 “초연은 언제나 어렵다”며 “39세 때에도 아무 못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며 웃었다. [신시컴퍼니 제공]

오랜 시간의 길이는 ‘맘마미아!’를 마주하는 깊이와 감정의 변화를 가져왔다. 최정원은 “초연은 언제나 어렵다”며 “서른 여덟에도 아주 못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며 웃었다. 엄마로의 성장은 작품 안으로 쌓여 관객에게 가닿는다. 그는 “딸과의 관계를 담백하고 담담하게, 보다 한국적인 정서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공연 후반부, 최정원이 도나가 돼 토해내는 ‘이긴 사람만이 모든 걸 다 갖죠(The Winner Takes It All)’는 이 작품의 공식 ‘눈물 버튼’이다. 지나온 삶에 대한 이해, 그 시간을 딛고 선 지금에 대한 포용이 담겨서다.

“한 작품을 오래 하는 것은 뾰족했던 돌을 동글동글하게 매만지는 과정이에요. 그 돌이 반질반질해져 내 손으로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게 되는 거죠.”

2023년 ‘맘마미아!’ 최정원 [신시컴퍼니]

■ 4대 뮤지컬 부럽지 않아…“모두가 행복한 작품”

‘맘마미아!’ 공연장은 기존 뮤지컬 극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1200여 석의 공간은 그 자체로 ‘세대 통합’의 장이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들부터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 관객, 2030 젊은 세대가 객석을 채운다. 아바의 음악이 흐를 땐 조심스레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도 탄다.

배우들에게도 의미가 각별하다. 2030 여성 관객이 절대 다수를 이루는 뮤지컬 시장에서 이들이 선호하는 스타 남자 배우가 아닌 4050 세대의 중년 여배우들이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도나와 함께 울고 웃는다. 객석의 반응은 보상으로 와닿는다. “너무 행복해 눈물을 흘렸다”는 팬들의 손편지를 받으며 ‘맘마미아!’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지지를 느낀다.

그는 “40~50대 여배우가 엄마 타이틀로 주인공을 하기는 쉽지 않다”며 “‘맘마미아!’가 대한민국 엄마, 아빠들에게 힐링할 수 있는 문화생활을 만들어주고, 중년 여성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준 것 같다”고 했다.

“‘맘마미아!’는 배우도 관객도 모두가 행복한 작품이에요. 무대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아요. 서로를 미워하지도 않고요.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작품이죠. 커튼콜에서 ‘댄싱퀸’을 부를 때, 관객들이 야광봉을 흔들면 소위 말하는 4대 뮤지컬도 부럽지 않아요.”

2023년 ‘맘마미아!’ 최정원 [신시컴퍼니]

■ “‘댄싱퀸’은 나의 인생곡…묘비명에 새길 것”

30년 넘게 무대에 서는 동안, 그에겐 매너리즘도 슬럼프도 없었다. 그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매일 같은 흙을 가지고 논다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대는 그에게, 언제고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다. “35년간 한 번도 일을 한 적이 없어요. 매일 노는 것 같아요.”

더 잘 놀기 위한 ‘자기 관리’는 배우 최정원을 ‘영원한 댄싱퀸’으로 이끈다. 공연 시작 4시간 쯤 전에 공연장에 도착해 불을 밝히는 것에서 그의 하루는 시작한다. 매일 두 시간씩 운동을 하고, 후배들과 워밍업을 한 뒤, 무대에 오른다. “관객이 볼 때 이러다 죽는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댄싱퀸’은 가장 빛나는 지금의 인생을 축복하는 말이에요. 당신이 주인공이라는 뜻이죠. 이 노래는 제 ‘인생곡’이에요. 딸한테도 묘비명으로 ‘댄싱퀸’ 가사를 새겨달라고 했어요. ‘신나게 춤춰봐, 인생은 멋진거야. 넌 최고의 댄싱퀸’이라고요. 전 매일 아바에게 기도해요. 아바가 제 인생을 살렸으니까요. 지금 이순간 우리 모두가 ‘댄싱퀸’이에요.”

 

sh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