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임상시험… 서울로 몰리는 글로벌 제약기업들
[편집자주]전 세계가 한국의 임상시험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2022년 전 세계에서 승인받은 임상시험 건수를 기준으로 점유율 5위를 달성했다. 한 해 전(6위)보다 한 계단 올라선 순위다. 특히 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임상시험 진행을 위해 한국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실력 좋은 의료진과 임상시험 인프라가 잘 조성됐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임상시험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신약 개발 성과는 여전히 저조하다. 잘 차려진 밥상에 해외 기업들만 배불려 준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한국의 임상시험의 현 주소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국가가 직면한 과제에 대해 살펴봤다.
①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임상시험… 서울로 몰리는 글로벌 제약기업들
②임상시험 수치는 글로벌 '톱'… 정작 글로벌 신약은 '0'
③글로벌 신약 2개·임상 점유율 3위… 종근당·대웅제약 '주도'
홍숙희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최근 암 환자인 A씨에게 임상시험 참여 의사를 물었다. 이 환자는 기존 표적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약효가 잘 듣지 않는 상태였다. 길어야 2~3년 정도 생존할 것으로 진단된 만큼 새로운 치료법을 통해 생명 연장을 위한 권유였다. 홍 교수는 임상시험을 통해 투여되는 신약의 경우 기존의 치료제와 비교해 안전성이 유사한 데다 약효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는 "과거처럼 중구난방식으로 환자에게 임상시험 참여를 권유하지 않고 환자가 '약발'이 잘 받을 수 있는 지 스크리닝 절차를 거친 후 근거를 갖고 제안한다"며 "오히려 환자가 해외에서 진행하는 신약 임상시험을 미리 알아보고 참여할 수 있냐는 질문도 잦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항암 관련 임상시험을 가장 많이 주도하고 있는 조병철 세브란스병원 폐암센터장은 "환자의 상당 수가 신약 임상만을 위해 센터를 찾는다"며 "임상연구에 대한 설명과 환자가 치료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효과와 단점을 설명한 다음 참여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임상시험은 새로운 의약품 개발을 목표로 환자에게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암과 당뇨, 알츠하이머 등 다양한 질환에서 신약의 필요성이 커졌다. 비록 인체 안전성이 완벽히 검증되지 않았지만 기존 치료제로도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가 신약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신약 임상시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개선되고 있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이 지난 2월 발표한 2022년 임상시험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2016명 가운데 '의약품 임상시험에 참여할 의향이 있냐'는 질의에 '그렇다'는 응답 비율이 55.8%(1125명)로 나타났다. 7년 전인 2015년 같은 인식 조사에서 36.0%가 임상시험에 참여하겠다고 답한 것보다 19.8%포인트나 높아졌다. 과거 만연했던 임상시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몇 년 새 달라진 셈이다. 이한별 서울대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한국의 의료 수준에 대한 환자들의 믿음이 커진 게 임상시험 인식이 개선된 이유"라며 "의료진들도 그동안 진행된 임상 연구를 통해 환자들의 치료 경험치도 쌓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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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에 등록된 전체 임상시험(7963건) 중 8.9%(711건)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259건이 항암 치료제 임상시험이며 내분비계 92건, 심혈관계 82건 순이다. 한국의 임상시험 점유율이 높은 원인은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연구개발 활동이 많아져서다. 2022년 진행된 711건의 임상시험 중 595건(83.7%)이 제약·바이오 기업 주도의 임상시험이며 나머지 116건(16.3%)은 연구자 임상시험이다.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전체 임상시험 건수가 줄면서 순위를 끌어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 악화와 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 전 세계의 임상시험 건수가 27.7% 줄어든 데 반해 한국에선 여전히 임상연구에 대한 열기가 이어졌고 임상시험 건수 감소율은 15.6%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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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집중된 의료인프라는 전 세계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임상시험의 장으로 선택하는 길을 열어줬다. 서울은 2017년 이후 전 세계 도시 가운데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곳으로 꼽힌다. 중국 베이징보다 순위가 높다. 서울엔 이른바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이 몰려있다.
이들 대형병원은 아프면 서울로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환자 쏠림'을 겪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 서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경우 환자 모집이 원활히 될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임상시험에는 진행하는 병원마다 TO(일정한 규정에 의해 정한 인원)가 존재해 환자모집이 끝났을 경우 의료진이 인근 병원을 소개해주기 쉽다는 점도 글로벌 제약기업들이 한국을 선택하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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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임상연구가 막대한 돈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면서 경험했다. 미국 기업 화이자는 약 1년 동안의 임상연구 끝에 개발한 코로나19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통해 2022년에만 567억3900만달러(약 71조6600억원)를 벌었다. 다른 코로나19 백신 개발사 모더나도 같은 기간 184억달러(약 22조8700억원)를 기록했다. 이들 기업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이유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국면에서 빠른 임상시험을 통해 백신 시장을 선점했기에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임상시험의 산업화는 아직 멀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개발한 블록버스터 신약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임상시험대행업체(CRO) 수준이 국내에만 머물러 있다는 한계점도 명확하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한국에서 임상시험을 가장 많이 승인받은 1위 기업은 글로벌 CRO 업체인 아이큐비아다. 20위권 안으로 이름을 올린 한국 CRO 기업은 전무했다.
일각에선 병원이 임상시험을 진행하면서 제약·바이오 기업에 받는 요금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례로 글로벌 제약기업이 항암 신약 관련 임상시험을 진행할 때 한국에서 집행하는 비용은 암환자 1명당 2억5000만원 수준이다. 반면 미국 의료기관에선 같은 조건이더라도 7억5000만원을 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제약사 스폰십 임상의 경우 비용을 높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병원이 임상에 관한 비용을 높여 받을 경우 리베이트로 오해를 살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용준 기자 jyj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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