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은 건졌지만 살길 막막"... 잿더미 위에 남겨진 사람들 [하상윤의 멈칫]

하상윤 2023. 4. 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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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휩쓸고 간 강릉 저동 펜션 단지 주민들
남은 건 잿더미로 변한 집터만... "살아갈 일이 막막"
강릉 저동 주민 안영순(61)씨 의 집터 앞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있다. 23년된 안씨의 목조 주택은 이번 불로 전소했다. 그는 "관절염 약을 비롯해 상시 복용하는 약 몇 가지만 챙겨서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면서 "익숙한 집에서 먹고 자고 쉬는 평범한 일상이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강릉 저동의 한 주택이 산불에 전소되며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강릉 저동 주민 전영란(60)씨가 폐허로 변한 집터 위에 섰다. 91세 노모와 사는 전씨는 타버린 김치통을 바라보며 "한치 앞도 모르면서 차곡차곡 쌓고만 살았다"면서 "인간은 자연 앞에 이리도 작은 존재다"라고 말했다.

화마가 할퀸 마을의 봄은 적막했다. 그림 같던 집은 폐가가 됐고, 주변 솔숲에선 산비둘기 울음소리만 드문드문 들려왔다. “운 좋게 살아남아서 감사하긴 한데, 다시 살아가려고 보니 앞이 막막하네요.” 지난 21일 전영란(60)씨가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강원 강릉시 저동에 위치한 그의 집은 지난 11일 발생한 산불로 모두 탔다.

마당 귀퉁이엔 백골로 남은 강아지 사체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산불은 태어난 지 1년도 채 안 된 진돗개 '진순이'와, ‘진돌이’의 운명을 갈랐다. 진순이는 타 죽었고, 진돌이는 살았지만 입양 보내졌다. 전씨는 스마트폰을 열어 지난해 모친의 90번째 생일날 대가족이 마당에 모여 찍은 단체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에선 서른 명이 넘는 가족들이 번듯한 기와집 앞에서 함께 웃고 있었다. 전씨는 이 집을 ‘천국 같은 곳’이었다고 회상하며 잿더미로 변한 기와집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삶터, 그리고 전씨처럼 그 위에 남은 사람들을 한 프레임에 기록했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 서 있던 나무들의 모습. 왼쪽 사진부터 벚나무, 느티나무, 두릅나무.
강릉 저동 주민 최석규(78), 김춘옥(77)씨 부부가 이번 산불로 완파된 집터 위에 서 있다.

지난 19일 김춘옥(77)씨는 이재민 임시 대피소 한 구석에서 홀로 엎드려 있었다. 그는 50여 년 살던 서울 노원구 상계동 아파트를 떠나 지난해 4월 이곳으로 이사 왔다. 그리곤 25년 된 주택을 사들여 노후를 보낼 공간으로 고쳤다. 처음 맞는 봄, 텃밭을 꾸리고 앵두며 무화과, 감, 석류 등 과실수를 둘레에 심었다. 이번 산불로 완파한 집은 그들에게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매매가 6억7,000만 원에 리모델링 비용으로 약 1억7,000만 원이 더 들었다. 김씨는 “금세 불이 다 꺼지고 저녁쯤엔 당연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서, “그저 입은 옷에 전화만 딸랑 챙겨서 집을 나왔다”고 했다.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이 구멍가게 운영하면서 토큰 팔아 과자 팔아 모은 돈으로 산 집이다. 추억이 담긴 앨범도, 옷도, 패물도, 그릇도 모두 다 탔다. 울어도 소용없는 걸 알지만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허무해서 눈물이 자꾸 차오른다.” 김씨의 눈가에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 좋아했던 공간에 가서 서 달라는 요청에 전씨는 남편 최석규(78)씨와 함께 주방이 있던 자리로 향했다. 고개를 늘어뜨린 그들 뒤로 검게 그을린 숲이 보였다.

강릉 저동 주민 김혜란(47)씨가 전소된 집터 위에 섰다. 그는 "옅게 보이던 연기가 마을 쪽으로 확산해 불바다를 이루기까지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며 "허무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화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경운기(왼쪽 사진부터)와 자전거, 스키드로더의 모습.

재난 예측과 대응 시스템만 제대로 굴러갔더라면, 주민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20일 저동 펜션 단지에서 만난 김혜란(47)씨는 "‘그날’의 상황은 ‘각자도생’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는 “주택이 높은 밀도로 몰려 있는 마을이 불바다로 변하는 30~40분 동안 현장에 소방차 한 대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119에 전화를 걸었더니 ‘바쁘니까 끊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했다. 고3 아이 교복도, 교과서도, 아무것도 못 챙기고 맨몸으로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어디로 대피하라’는 재난 안내 문자 한 통 오지 않았다. 이번 화재로 목조 건물 세 동과 트럭, 중장비가 잿더미로 변했고, 집을 빠져나오지 못한 고양이는 타 죽고 말았다.

강릉 저동 주민 조인숙(62)씨가 이번 산불로 전소한 자신의 목조 주택이 있던 자리에 서 있다. 그는 "우리는 개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면서 "재난 예방 및 대응 시스템에 변화가 없다면 다시 이곳에 집을 짓고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화염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일상의 흔적들. 왼쪽 사진부터 세탁기, 전기차량 충전기, 에어컨 실외기.

“민가 주변에 이토록 소나무가 많은데, 이곳에 15년 사는 동안 산불 위험 기간에도 어떤 예방 활동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시스템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안일한데, 그사이 기후위기는 빠르게 악화했다.” 지난 21일 마을 어귀에서 만난 조인숙(62)씨는 격앙돼 있었다. 조씨는 마을 입구에 설치돼 있는 소화전을 가리키며 “저렇게 떨렁 설치만 해놓고 어떤 매뉴얼도 교육도 없었다”면서 “아침이라 그나마 다행이지, 모두가 잠든 새벽이었다면 우린 모두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을 인간이 거스를 순 없지만,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게 국가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릉 저동 주민 조정희(50)씨가 이번 산불로 전소된 창고에 들어가 그을린 벽면을 바라보고 있다. 화염에 휩싸였던 정씨의 집은 겉과 달리 내장재가 모두 녹아내렸고, 보험사로부터 '완파' 진단을 받았다. 그는 "시청 공무원이 피해 조사차 방문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잘 닦아서 살면 된다'라고 말해서 분통이 터졌다"라고 말했다.
화염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일상의 흔적들. 식물을 담은 화분들이 녹아내린 채 널브러져 있다.

강릉시의 1차 피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1명이 숨지고 26명이 부상을 입었다. 축구장(0.714㏊) 530개에 달하는 면적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경포 일대 펜션과 민가 등 건축물 266동, 저온저장고 등 농업시설 122동이 전소 또는 반소됐다. 217가구, 489명의 주민이 삶터를 잃고 임시 주거시설에 머물고 있다.

편집자주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강릉=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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