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대책 나왔는데…최선의 대응 vs 실효성 부족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r2ver@mk.co.kr) 2023. 4. 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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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지난 4월 18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사기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 사례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시적 특별법을 제정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최선의 대응이라는 평가와 실효성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2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발표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정부 대책의 법적 근거가 담겼다. 통상 전세 계약이 2년 단위인 것을 감안해 이 특별법도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앞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거주하는 주택에 대한 경·공매 유예·정지 및 우선 매수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또 전세사기 피해자에게는 재해·재난 이재민과 같은 자격으로 간주해 1인 가구 기준 매달 최대 102만원의 생계·주거비를 6개월간 지급한다. 저금리 대출과 임대주택 제공도 이뤄진다.

구체적으로 경·공매를 통해 주택을 낙찰받을 때는 금융·세제 지원을 진행한다. 주택 구입 자금 마련을 위해 디딤돌대출을 실행하면 최우대 요건(한도 4억원·금리 1.85~2.7%·만기 30년)에 거치 기간 3년을 적용한다. 소득 기준은 7000만원 미만이어야 한다.

소득 기준이 없는 특례보금자리론(한도 5억원·금리 3.65~3.95%)도 이용 가능하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제도 1년간 한시적으로 완화된다. 취득세와 재산세도 면제 또는 감면된다.

우선매수권을 포기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택을 매입한 뒤 매입임대주택으로 피해자에게 시세 대비 저렴한 금액에 임대해 준다. LH가 전세사기 주택을 사들이기 어려운 경우에는 피해자의 생활반경에서 가까운 공공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4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공공 차원의 보증금 반환과 같은 파격 혜택은 없었지만, 피해자가 살던 주택에서 계속 거주가 가능하도록 범부처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해 임차인 퇴거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이 마련됐다고 판단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당연히 보증금 전액을 보전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특별법을 통해 임차인이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국가가 해결책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며 “한계점을 보완해 나가면 임차인의 피해가 상쇄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가 까다롭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특별법 지원 대상은 ▲전입 신고 및 확정일자 확보 ▲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 집행권원 또는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주택 기준 충족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등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피해자다.

다수의 피해자나 보증금의 상당액 등 일부 항목의 기준이 모호해 국토부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의 해석 논란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주택경기 위축과 공급과잉 이슈로 직전 계약보다 보증금액이 낮아진 역전세 상황이나 임대인이 처음부터 사기를 칠 의도였음을 밝히기 어려운 경우에도 특별법 혜택을 받지 못할 전망이라 사기꾼들의 퇴로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경기도 화성시 동탄 오피스텔 전세사기 피해 의심 사례의 경우에는 임대인 부부가 세금 미납으로 파산 절차를 진행하게 됐다며 임차인들에게 오피스텔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 달라는 메시지를 발송한 것을 고려해 계획된 전세사기라고 판가름하기 어려워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지난 4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부의 전세사기 특별법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도 지난 28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에서 발의한 특별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여 주기식에 불과한 법안이라며 폐기를 주장했다.

이강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계속 등장할 텐데 특별법의 시한을 규정하는 것은 피해자들의 괴로움을 외면한 처사”라며 “요건 충족이 까다로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가 한정적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구제 대상에 들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위한 방안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신중한 고민 없이 문제 주택에 입주했다가 피해가 발생해도 정부가 책임져 준다는 인식이 고착된다면 다른 범죄에 악용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또 사회를 멍들게 한 보이스피싱 범죄에도 정부가 대규모 구제책을 제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LH의 예산을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 집중 투입해 다른 사업 진행을 막아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아닌 수요자들을 위한 정책에 사용될 재원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과거 체결된 전세사기 계약 만료 도래로 당분간 전세사기 피해가 지속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관련 시장에 대한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전세제도가 유지되는 한 전세금 미반환 리스크가 상존할 수 있는 만큼 임대차 표준계약서 특약 활용 교육이나 전세금 에스크로 제도 등도 도입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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