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 토론’ 정준희 “말로 하는 전쟁, 기억에 남는 토론자는…”

정혁준 2023. 4. 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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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인터뷰
토론은 민주주의의 힘으로 이어져
‘기후문제, 인류 삶과 연관’ 많이 다루려
기억나는 ‘100분 토론’ 패널은 신해철
<100분 토론> 사회자 정준희 교수가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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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21일 방송을 탄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이 지난 9일 1000회를 맞았다. <100분 토론>은 현재 지상파 유일의 토론 전문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다. 1987년 10월 시작한 ‘생방송 심야토론’(<한국방송>)이 지난해 12월10일로 종영되면서부터다.

<100분 토론>은 첫 방송부터 30회까지는 고 정운영 박사, 31회부터 100회까지는 유시민 작가가 사회자였다. 101회부터 10주년 특집(443회)까지는 손석희 <제이티비시>(JTBC) 순회특파원(전 뉴스룸 앵커)이 사회를 봤다. 기자·아나운서·교수·시사평론가 등이 그뒤를 이었다.

2020년 8월27일부터 정준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가 진행을 책임지고 있다. 정 교수는 손석희 특파원(7년10개월)에 이어 두번째로 장수하고 있는 사회자다.

그동안 <100분 토론>은 수많은 스타 토론가도 배출했다. 고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전원책 변호사, 나경원 전 국회의원, 가수 고 신해철, 방송인 김제동 등이 대표적이다.

1000회를 맞아 <100분 토론> 특집 3부작이 방송됐다. 9일 전파를 탄 ‘토론하면 좋은 친구’ 편엔 홍준표 대구시장과 유시민 작가가 토론자로 맞붙었다. 11일엔 손석희 전 앵커가 출연한 특집 다큐멘터리 ‘그래도 토론’ 편이, 18일엔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이 나온 ‘토론하면 좋은 친구2’ 편이 방송됐다.

올해 <100분 토론> 시청률은 0.4~1.3%를 오가며 평균 0.8% 수준에 머물렀지만 1000회 특집 첫 방송은 전국 가구 시청률 3.9%(닐슨 코리아 집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유튜브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 25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에서 정 교수를 만나 한국 사회의 토론 문화 등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손석희와 대담, 추가로 방송되기를”

―1000회 특집 3부작이 화제였습니다. 준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100분 토론> 1000회는 아무래도 각별하다 보니 특집 얘기는 1년 전부터 나왔습니다. 처음엔 손석희 전 앵커와 저가 대담하는 기획만 세웠지만, 토론 프로그램에서 대담만 하는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토론의 영광’을 상징하는 홍준표-유시민 토론자를 모시고, ‘토론의 미래’를 의미하는 이탄희-천하람 토론자를 모시면서 3부작이 만들어졌습니다. 본격적인 준비는 석 달 정도 걸렸습니다. 제작진이 탈진할 정도로 매우 힘들었습니다.”(웃음)

―홍준표-유시민 토론자의 토론 스타일은 어땠습니까?

“홍준표 시장은 큰 꿈을 꾸시는 현역 정치인이다 보니 이전보다 수위를 낮추고 예능감을 살리면서 토론에 나선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한 말이 언론에 어떻게 나올지에도 신경을 쓴 듯합니다. 그래서 이번 토론에서 약간의 설화(‘국민이 정치력 없는 대통령을 뽑아놓고 왜 탓 하나’)가 있었는데, 저는 그 말이 ‘준비된 설화’에 가까울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어 훨씬 더 자유롭게 토론한 것 같습니다. 유 작가는 대중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재미있게 얘기하면서도 생산적인 토론을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손석희 전 앵커와 한 대담도 관심을 모았습니다.

“현재도 한-일 관계 해법을 찾기 쉽지 않지만,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에서 만난 손석희 전 앵커는 <100분 토론>을 맡고 있을 때 일본 오사카 현장에서 진행하거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의 토론을 추진하면서 갈등을 토론으로 풀어 보려고 시도했다고 얘기했습니다. 갈등적이고 민감한 토론 주제임에도 <100분 토론>이 그 문제를 다루려고 애쓰고 노력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00 분토론> 사회자 정준희 교수가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이탄희-천하람 토론자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한데요.

“이탄희 의원은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라는 말이 떠올리게 할 정도로 두 가지 측면을 잘 녹여 토론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논리적인 화법을 쓰긴 했지만, 그 내면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약자를 향한 배려 같은 열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천하람 위원장은 법조인이어서 이탄희 의원처럼 논리적이었지만, 비유를 즐겨 쓰는 편이었습니다. 그 비유는 홍준표 시장의 풍자와는 약간 결이 달랐습니다. 20~30대가 좋아할 만하게 통쾌하고 냉소적인 비유 어법을 자주 쓰는 편이었습니다.”

―특집 3부작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일본에서 손석희 전 앵커와 대담을 나눈 게 가장 기억이 남습니다. 국내 언론과 저널리즘 전반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대부분 빠진 게 아쉬웠습니다. 촬영한 분량은 3~4시간이었지만, 실제 들어간 분량은 몇십 분 정도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그 내용이 별건으로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00분 토론> 사회자 정준희 교수가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기억에 남는 토론 ‘이재명 vs 원희룡’

―2020년 8월27일부터 진행을 맡으셨습니다. 기억 나는 토론은 무엇인가요?

“2020년 9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가 기본소득을 이슈로 한 토론이 기억이 남습니다. 당시 두 현직 지사가 지방정부에서 나름대로 실험해 왔던 정책을 놓고 토론했는데요. 기본소득의 진보적 대안(보편)과 보수적 대안(선별)을 이상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적용해왔던 정책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여주는 토론이었습니다.”

―토론 주제를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다루지 않는 주제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게 기후문제인데요. 진보와 보수를 떠나 기후문제는 인류의 삶과 연관돼 있기에 많이 다루려 합니다. 관심이 약간 낮아 시청률이 떨어질지라도 이런 주제를 일부러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말꼬투리 잡기 등 토론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회자가 아닌 토론자로 나서고 싶을 때도 있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토론이 엉뚱한 주제로 빠질 때는 제가 제어를 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저는 듣는 걸 좋아합니다. 토론자가 논리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하더라도 ‘왜 저런 얘기를 하지’라고 생각하며 이유를 찾아내는 걸 좋아하고 즐기는 편입니다. 토론 사회자에게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정하게 사회자 역할을 하더라도 비판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내 편에 가까워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균형을 맞추는 게 훨씬 토론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고, 그걸 직업윤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완벽한 기계적 균형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사회자는 어느 정도 날카로움이 깃들어 있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토론 내용이 어떻게 되든지 시간 관리자 역할만 하는 건 자격 상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토론 ’논리·근거·감성’ 갖춰야

―<100분 토론>에서 토론을 잘하는 유형은 어떤 스타일일까요?

“저희가 1000회 특집에서 토론자로 모신 분들이 대표적으로 토론을 잘하는 유형입니다. 논리, 사실적 근거, 감성적인 어루만짐 등 세 가지 요소가 조화돼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논리입니다. 형식적인 논리로만 끝나면 안 되고 사실적인 근거가 뒷받침돼야 하죠. 이와 함께 상대를 무조건 감정적으로 눌러버리는 게 아니라 어루만져 줘야 합니다. 무조건 ‘좋게 가자’가 아니라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감성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토론을 잘 못 하는 유형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내 편에게 칭찬받으려고 토론하는 유형입니다. 고집스럽고 타협 불가한 태도로 토론에 나서는 사람은 지지하는 편에서 “잘 찔렀어”라는 평가를 받을지는 몰라도 상당히 안 좋은 토론 스타일입니다. 주변에서야 박수받으며 ‘정신 승리’를 끌어낼 수야 있겠지만, 대다수에게 불쾌감을 주는 유형입니다.”

―1999년 10월21일 시작한 <100분 토론>은 10여명이 넘는 사회자가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정운영, 유시민, 손석희 3명의 전직 사회자가 대중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요.

“세 분 모두 독특한 개성으로 담론을 만들어 내며 토론 프로그램을 잘 이끌어 가서 그런 것 같습니다. 토론 프로그램을 신기해하고 많이 보던 시절이란 시대적 배경도 이유가 될 수 있겠죠. 세 분 이후는 기자·아나운서분들이 맡기도 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정치계에 뛰어들기 전에 얼굴을 알리기 위해 맡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대중의 기억에 오래 남지 못했다고 봅니다.”

―손석희 전 앵커는 기억에 남는 <100분 토론> 토론자로 고 노회찬 전 대표를 꼽았는데요, 교수님은 어떻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가수 고 신해철씨입니다. 그분은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자신감 있게 논리적으로 예의를 갖추면서 토론에 임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토론의 긴장을 한순간에 풀어주는 유머도 갖췄으니 말이죠.”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합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토론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토론 프로그램이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건 오해라고 봅니다. 오히려 차이를 잘 드러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차이를 보며 많은 사람이 어떤 의사 결정을 할지를 결정하게 되는 거죠. 그런 차이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게 하고, 그렇게 움직인 사람의 힘이 여론의 힘으로 바뀌고, 그 여론이 민주주의 힘이 되는 게 토론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입니다.”

―지상파 토론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100분 토론>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100분 토론>이 그동안 쌓아 올린 브랜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영방송에서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는 측면도 있겠습니다. 상업적인 이유로만 보면 언제든 축소하거나 폐지할 수 있지만, 공영방송의 역할을 되새기며 ‘지속해야 한다’,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제작진 사이에서 강한 편입니다.”

―‘토론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조건(~하면)이 아니라 현재형(~하는)으로 살짝 바꿔 ‘토론하는 좋은 친구’가 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이 말은 평소에 토론하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상에서 서로한테 감정적으로 자극되지 않은 좋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난 9일 방송된 <100분 토론> 1000회 특집에 출연한 홍준표 대구시장과 유시민 작가가 시민 논객들과 함께한 모습. <문화방송> 제공

최고 권력자, 소통에 뜻 없으면 일방적 결정

―한국 사회에선 합의가 실종되고 토론이 비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풀기 위한 의사결정에서 토론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토론을 통해 모든 걸 바꿀 수는 없지만, 일부라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개선하려면 최고 권력자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은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소통과 토론에 별 의지가 없으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론을 통해 뭔가 바꿔내지 못하면 국민 역시 토론 효능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독특했는데요. “다 같이 토론하면서 문제를 풀어 봅시다”라며 토론에 적극적인 분이었죠.”

―토론의 효과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지난해 6월 가수 유희열씨가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작품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이슈를 두고 저희가 토론한 적이 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이 사안을 놓고 혼란스러워 한 사람이 많았지만, 저희가 토론을 한 뒤 어느 정도 여론의 방향이 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방송 뒤 여론은 ‘유희열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가 했던 처신은 잘못됐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 대중문화 산업에 중요한 문제’라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모호했던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이 어떤 의견을 갖게 해주는지가 토론의 효과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서 토론은 왜 필요한지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만든 이유는 칼이나 총으로 의사 결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토론은 말로 하는 전쟁입니다. 말의 힘이, 담론의 경쟁력으로, 다수의 경쟁력으로, 의사결정의 경쟁력으로 상승작용 하면서 민주주의는 발전합니다. 첫 단계인 말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게 바로 토론입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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