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산행] '펫티켓'…반려견 산행 위한 첫걸음

서현우 2023. 4. 2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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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시바견 하루와 보호자 김민정씨, 호명산 산행
“내 개는 안 물어” 금물… 등산객·반려견 모두 배려하는 마음을
김민정씨가 직접 만든 풉 사코슈. 빠른 배변 수거를 위해 바로 생분해 봉투를 꺼낼 수 있도록 제작했다
호명산 정상. 멀리 호명호수를 이고 있는 보의 모습이 보인다. 스키장 건설을 위해 나무가 벌목된 탓에 전망은 시원하다.

"그건 안 돼요. 원점회귀해야 됩니다."

"왜요?"

"반려견은 케이지 없이 지하철 못 타요."

"아."

우리의 대화는 대체로 이랬다. 쳇바퀴 돌 듯 어려움과 이해가 거듭됐다. 반려견을 동반해 움직인다는 것에 무지한 탓에 평소대로 산행 스케줄을 세우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코스를 조정하고, 시간을 당기고, 산행지를 바꾸고, 교통편을 다각화했다.

"혹시 주의해야 할 게 있을까요?"

"일단 처음 만났을 때 '하루'는 먼저 와서 인사하기 전까진 만지거나 하시면 안 돼요. 그리고 '쿠리'는 미친 듯이 좋아서 안길 겁니다. 만나보시면 알아요!"

들머리 가는 길이 가장 긴장…목줄 없는 시골개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산에서도 반려견과 함께 산을 오르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월간<山> 독자 7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반려견과 함께 산행하는 사람과 마주친 적이 있다는 응답이 92%에 달했다. 동네 뒷산은 이미 흔한 광경이고, 1~2시간 이상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큰 산에서도 간혹 마주치곤 한다.

서구에서는 반려견과 산행하거나 트레킹하는 것이 익숙한 문화지만 한국은 아직 낯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의 반려견 동반 산행의 현실과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함께 산을 올라보기로 했다. 선뜻 시간을 내준 이는 시바견 하루와 함께 백개犬 명산을 찾아 오르고 있는 김민정씨. 김씨는 반려견 관련 용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소규모 브랜드 '웨더웨더'를 운영하고 있는 인플루언서(인스타그램 @hello_mjmj)다. 백개 명산은 100대 명산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다. 엄격하게 선정하는 건 아니고 하루와 같이 오른 산들의 리스트를 정리한 정도란다. 현재까지 40개산을 올랐다.

청평역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면 호명산 들머리가 이어진다. 검정색 스카프가 하루, 초록색 스카프가 쿠리다.

먼저 너무 모르고 가면 안 될것 같아 유튜브에 도움을 청했다. 보호자들을 매섭게 혼내는 강형욱 훈련사의 영상이 연달아 나왔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보호자들의 모습들이 반복될 때마다 반려견이 아니라 보호자가 걱정된다.

다행히 청평역에서 만난 김민정씨는 그런 무책임한 보호자가 아니었다. 들머리로 이동하던 도중 마주친 푸들이 목줄을 하고 있지 않자 보호자에게 목줄을 요구하고 비켜서서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리면서도 계속 경계의 눈빛을 게을리 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산행지 대부분이 시골이잖아요? 그래서 도시에 비해 더 주의해야 해요. 시골 특징이 목줄을 매지 않고 풀어둔 개들이 많다는 거예요. 들머리까지 가는 길이 더 위험한 셈이죠. 특히 쿠리는 사람은 좋아하는데 다른 개들하곤 으르렁거리며 싸울 때가 많아서 더 주의해야 됩니다."

산행 코스는 청평역에서 호명산을 올라 호명호수까지 진출한 뒤 잣나무숲속캠핑장이 들어선 골짜기를 따라 상천역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잡았다. 반려견이 힘들어하면 차도로 이어진 호명호수에서 탈출할 계획이었다.

산행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이때 반려견에 의지해 오르면 반려견에게 체력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다.
산행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이때 반려견에 의지해 오르면 반려견에게 체력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다.

"산행지는 보통 어떻게 정하세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산으로만 다녀요. 아무래도 좁은 등산로에서 사람을 자꾸 마주치면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어서요. 저는 '내 개지만 그래도 알 수 없다'는 신조로 다니거든요. 그래서 평일에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서 갑니다. 또 여름에는 강아지들이 힘들어해서 야간 등산으로만 다니고요."

오히려 산이 사람 덜 만나

기타를 형상화한 다리를 통해 조종천을 건너 호명산 오르막에 붙는다. 김민정씨가 "한 번 직접 같이 올라보라"며 쿠리의 리드줄을 건넨다. 쿠리는 김씨가 키우는 시바견 하루의 여동생. 김씨의 친정에서 맡아 기르고 있다.

오빠 하루가 얌전한 데 비해 쿠리는 원체 성격이 활발해 무척 신이 난 모양이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아 가파른 오르막을 차근차근 밟아 가려는데 앞에서 줄이 팽팽해질 정도로 당겨 몸이 끌려 나갈 정도다. 은근 편하다.

"아. 혹시 체중을 쿠리한테 실어서 올라가시면 안 돼요. 부담을 줘서 금방 지칠 수 있거든요. 줄이 팽팽하지 않게 페이스를 잘 맞춰 가야 됩니다."

말을 듣고 보조를 맞춰 보려는데 영 석연치 않다. 끌려가는 힘에 균형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헤매고 있자 김씨가 다시 쿠리의 줄을 가져간다. 줄을 상황에 맞게 손에 쥐었다가 배낭 허리끈이나 어깨끈에 결속시키기도 하며 오르는 게 딱 숙련된 반려자의 모습이다.

첫 오르막이 끝나고 운동기구가 놓인 안부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하루와 쿠리에게 물을 주는 김씨에게 질문을 건넨다.

"어떻게 하루를 만나게 된 건가요? 또 같이 산행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요?"

"원래 하루는 지인이 길렀었는데 입양 8개월 차에 사정 상 파양하게 되면서 제가 맡게 됐어요. 산행은 제가 원래 산을 다녀서 백패킹도 자주 가는데 하루도 같이 가면 어떨까 싶어서 데려가 봤는데 무척 잘 적응하고 좋아해서 그때부터 같이 다니기 시작했죠. 하루가 싫어하고 힘들어한다면 당연히 바로 그만 둘 거고요."

코스 초입에 리기다소나무와 낙엽송 군락이 우거져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브랜드 웨더웨더도 하루와 같이 산행하기 위해 만든 브랜드다. 시중에 많은 반려견 관련 용품이 있지만, 산행할 때 쓰기에는 마땅한 제품이 없어 직접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풉 사코슈가 대표적이다. 생분해 봉투를 바로 뽑아 배변을 수거할 수 있도록 만든 사코슈다. 배낭을 벗었다가 다시 메는 번거로움을 해소했다. 김씨는 아웃도어 브랜드 몽벨에서 텐트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어 손재주가 좋다.

"그런데 굳이 산행인 이유는 뭘까요? 등산객들과 마주치면 시비가 붙을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이렇게 평일에 인기 없는 산을 걷는 게 도시 주변에서 산책하는 것보다 훨씬 사람을 마주칠 일이 적어요. 아무래도 하루가 큰 편이라 딱히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시비 거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풍경을 함께 누리고 싶은 게 큰 이유죠. 하루가 체력도 되고 산에 있으면 좋아하거든요. 저도 하루랑 둘이서만 노는 게 너무 좋아서 6년 동안 원래 다니던 산악회도 안 가고 얘하고만 산에 갔어요. 반려견은 수명이 짧잖아요."

등산객들 안심시키려 개에게 스카프

반려견의 평균 수명은 약 15년으로 대형견은 7~8살, 소형견은 9~10살부터 노화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의사들은 노견의 경우 산행처럼 격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러니 사실상 같이 산에 다닐 수 있는 기간은 몇 년에 불과한 것이다.

주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가는 길은 한결 기세가 수그러든, 그러나 만만치 않은 오르막이다. 여유가 좀 생긴 탓에 다시 한 번 쿠리의 리드줄을 잡아봤다. 처음에는 마구 치고 나가려고만 하던 쿠리가 이젠 속도를 맞춰준다. 스카프를 맨 채 방실거리며 앙증맞게 걸어가는 뒤태가 귀여워 다른 풍경을 볼 겨를이 없다. 또 속도를 꾸준하게 내며 밟기 편한 곳을 스스로 골라 걸으니 완벽한 페이스메이커다.

"스카프가 너무 잘 어울려요."

"예쁘죠? 근데 그냥 예뻐 보이라고 스카프를 매준 건 아니고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미지를 순하게 보이려고 한 거예요. 아무래도 덩치가 있으니깐 이런 소품 없이 맨 몸으로 있으면 무섭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한 번은 선자령에 갔을 때 너무 개를 무서워하는 분이 계셔서 애를 먹은 적도 있어요. 그저 제가 죄인이라 엄청 민망했죠."

호명호수에 도착한 김민정씨와 하루, 쿠리

호명산 정상에 이르러 한 숨 돌린다. 멀리 호명호수 댐도 보인다. 호명산이란 지명은 산에 사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마을까지 들렸기 때문에 유래했다는데 지금은 시바견 두 마리의 거친 숨소리뿐이다. 그러니 호멍산이라 불러야 할까?

그런데 정상 바로 아래 사면의 나무가 몽땅 벌목된 흔적이 보인다. 가평군청 산림과에 연락해 보니 과거에 스키장을 만들려고 했던 흔적이란다. 가슴 아프지만 덕분에 전망은 골골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시원하다.

"휴~ 이제 오르막은 끝났네요. 이 정도면 반려견한테 힘든 산 축에 속하나요?"

"제법 오르막이 가팔라서 조금 힘들어하긴 하네요. 그래도 퍼지진 않아서 다행이에요. 예전에 단양의 어느 산을 갔었는데 사전 조사를 미흡하게 해서 엄청 험한 암릉 지대를 만났어요. 결국 업고 내려와야 됐죠. 진짜 힘들었어요. 하루 몸무게가 13kg거든요."

내리막은 반려견보다 보호자가 앞서야

이제 호명호수를 향해 달음박질한다. 완만한 내리막이지만 곳곳에 돌부리들이 널려 있어 산책하듯 가긴 어렵다. 쿠리도 걸음을 계속 잇다가 슬쩍 멈추고 돌아본다. 이젠 알 것 같다. 쉬자는 뜻이다. 걸을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

"내리막에선 강아지가 뒤에서 걷게 해주는 게 좋아요. 갑자기 치고 나가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넘어지기 쉽거든요."

목줄을 당기자 쿠리가 순순히 뒤로 오더니 따라 걷는다. 확실히 뒤로 보내니 걷기 한결 편하다. 순간 반려견의 존재를 잊고 걷자 목줄이 팽팽하게 팍 당겨지며 "꽥"소리가 난다. 리드줄이 나뭇가지에 걸린 탓이다. 알아서 잘 따라오리라 생각지 말고 계속 신경을 써줘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반려견과 같이 산행하려면 준비할 것도, 현장에서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다른 보호자들이 김씨에게 자주 상담을 요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씨 일행이 호명호수변 공원에서 산책과 휴식을 즐긴다.

"보통 반려견하고 같이 산행을 가보려는데 어떤 산이 좋은지 물어봐요. 저는 트레킹은 조비산, 백패킹은 민둥산을 많이 추천하는 편입니다. 둘 다 난이도가 평이해서요.

또 자신의 체력이 이 정도인데 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요. 사실 반려견하고 같이 산행하려면 사람 체력보다 반려견 체력과 건강 상황을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해요. 사람이야 본인이 판단할 수 있는데 반려견은 오롯이 보호자만 따라가거든요."

호명호수를 지나쳐 상천역으로 하산한다. 고도를 내릴수록 한두 그루 잣나무가 등장하더니 어느 덧 울창하게 머리 위를 가득 메운다. 잣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잇따라 내려가니 목책으로 둘러싸인 호명산 잣나무숲속캠핑장이 나온다. 캠핑장의 음식 냄새 방향으로 향하는 리드줄을 애써 당겨 하산을 마친다.

날머리에서 사진기자와 김씨는 자차회수를 위해 택시를 불러 청평역으로 간다. 반려견들과 함께 남겨져 심심하진 않다.

그때 캠핑장으로 가는 백패커들이 스쳐 지나간다. 귀엽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이도 있는 반면,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흠칫 놀라며 시선을 계속 둔 채 경계하며 지나가는 이도 있다.

이들에게 어떻게 걱정하지 말란 의중을 전해야 할까?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해야 할까? 잠깐 고민한 끝에 꽉 쥐고 있던 목줄을 그저 몸으로 바짝 잡아당기는 것으로 했다. 자극하지 않으면 물 가능성은 낮겠지만, 그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 보호자의 책임일 것이다. 산행에 지친 건지, 이런 생각을 알아 준 건지 두 마리 모두 품속으로 파고들어와 배를 깔고 눕는다.

쿠리와 하루, 그리고 보호자 김민정씨. 이제 오르막이 끝난 걸 아는지 기분 좋게 웃고 있다
반려견과 같이 산행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긴 여러모로 어렵다. 김민정씨는 본인의 차 캐스퍼를 '개스퍼'라고 불렀다
호명산 개념도

산행길잡이

대부분 청평역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초반의 가파른 오르막만 짧고 굵게 끝내놓으면 금방 정상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평역에서 내린 후 2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바로 정면에 호명산 등산로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으며 그 뒤로 건너야 할 기타 모양의 하얀색 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고 오르막을 10분 정도 오르면 주능선이다. 등산로도 뚜렷하고 갈림길마다 이정표도 있어 크게 헷갈릴 건 없다. 능선을 따라 호명호수에 닿으면 차도로도 연결된다.

단 원점회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호명산 정상까지만 가는 것이 좋다. 호명호수에서 대성사 방면으로 골짜기를 따라 조성된 등산로를 이용하면 청평역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올 수 있었는데 현재 지자체에서 폐쇄한 상태기 때문이다.

교통

서울시내에서 접근할 경우 회기역이나 망우역에서 춘천 방향으로 가는 경춘선고속전철을 타면 된다. 5시30분부터 23시56분까지 20분 간격으로 수시 운행한다.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청평역과 상천역에 각각 주차장이 있다.

숙식(지역번호 031)

닭갈비 맛집이 많다. 상천역 근처에는 가온길(584-9494)의 숯불닭갈비, 청평역 인근에는 청평호반닭갈비막국수(0507-1323-5921)의 철판닭갈비가 잘 알려진 맛집들이다.

닭갈비 대신 다른 메뉴를 고르자면 상천역보다 선택지가 더 많은 청평역 인근에서 식당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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