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회 맞은 '100분 토론'을 토론하다

정철운 기자 2023. 4. 26. 10:3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언론정보학회 'TV시사토론 프로그램과 공론장' 세미나
토론자 4412명 중 정치인·학계가 3분의2, "다양성 부족"
"거대 양당 중심 다툼 문화가 가진 한계 보완해야" 지적도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안녕하십니까. <100분 토론> 진행을 맡은 정운영입니다. 프로그램 신설과 함께 저희가 잡은 첫 번째 주제는 무엇이 언론개혁이냐는 문제입니다.”(1999년 10월21일)
“새롭게 <100분 토론> 진행을 맡게 된 손석희입니다. … 진행자로서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공정하겠다는 것입니다.”(2002년 1월18일)

1999년 10월 첫 방송 이후 4월 초 1000회를 넘긴 MBC <100분 토론>. 국내 유일무이한 대표 토론프로그램이 되었지만 '백토'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은 녹록지 않다. 'TV 시사 토론프로그램과 공론장'이란 주제로 25일 MBC가 후원하고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한 특별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100분 토론>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토론했다.

하종원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분석에 따르면 1000회 동안 <100분 토론> 주제는 '일반 정치'가 34.9%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사회적 이슈' 9.8%, '선거 토론' 6.7%, '국제 외교' 5.5%, '경제 정책' 5% 순이었는데, 검찰 주제 토론이 문재인 정부 이후 높아진 점이 특징이다. 검찰 주제 토론은 김대중·박근혜 정부 1회, 노무현 정부 5회, 이명박 정부 7회였으나 문재인 정부에서 11회로 가장 많았다. 임기가 막 1년 가까이 된 윤석열 정부에선 무려 10회나 이뤄졌다. 대통령 스스로 검찰총장 출신에, 검찰 출신이 주요 정부 요직을 차지하며 '검찰 공화국'이라는 사회적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1000회 동안 출연한 토론자는 4412명이다. 이 중 정치인 비중이 34.2%(1507명), 학계·연구계 비중이 32.4%(1431명)로 다수였다. 법조계는 5.1%(225명), 시민단체 활동가는 5.6%(246명), 언론인은 4.9%(215명)를 차지했으며 일반시민은 0.5%(23명)에 불과했다. 하 교수는 “김대중 정부에서 정치인 출연자 비중이 가장 낮았고, 박근혜 정부에서 학계 비중이 매우 높았다”고 분석했다. 최다 출연자는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42회),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42회),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35회), 노회찬 전 국회의원(32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29회) 순이었다. 유시민 작가와 홍준표 대구시장은 26회로 출연 횟수가 같았다. 하 교수는 “이슈와 출연자 다양성이 더욱 요구된다”며 시민 참여를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선민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 선임연구원은 “<100분 토론>에선 지금껏 40~50대 엘리트 남성에게 발언권이 집중됐다. 시민단체 활동가 출연 비중은 점점 줄어들었다”며 “얼마나 다양한 시선을 포괄하려 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1회~943회 출연자를 전수조사한 결과에서 출연자 성비는 남성 89.4%, 여성 10.6%로 편향이 뚜렷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출연 비중도 김대중 정부에선 10%였으나 지속적인 하락 속에 문재인 정부에선 2.6%, 윤석열 정부에선 0.7%를 기록했다.

'거대 양당 중심 토론'도 한계로 지적됐다. 유용민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손석희의 <100분 토론>을 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방송토론문화를 이끌어온 MBC의 공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100분 토론>을 포함해 우리나라 토론프로그램은 주류 정당, 진영 사이 토론으로 한정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대표되어야 할 의견이 거대 정당들 의견밖에 없나”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 교수는 “시청자들이 준비된 것을 선전하기 바쁜 양당에 끌려다니는 토론을 잘 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며 “거대 양당 중심의 다툼 문화가 가진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더 많은 의견들, 제도 외부의 의견들과 경합시킬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MBC

최근 3년간 MBC <100분 토론>을 연출한 김재영 MBC 시사교양PD는 “지난해 여성 토론자 비율이 20%를 넘었다”고 했으며 “코로나19로 지난 3년간 시민 참여가 어려웠는데 앞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김 PD는 “대부분 <100분 토론>의 이상적 상황으로 손석희 시대를 떠올린다. 그 시절은 지상파 TV의 황금기였고, 정치지도자들이 토론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설명한 뒤 “앞으로 토론이 활성화되려면 정치지도자부터 토론을 중요하게 여기고, 스스로 TV 토론에 나서게끔 하는 국민 여론도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제작진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나와야 할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2021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생방송을 40여 분 앞두고 <100분 토론> 출연 취소를 통보했던 사건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100분 토론> 진행자인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는 “공익적인 주제로 소수자를 포용하면서 재미도 있고 시청률도 높아야 한다는 주문은 하나의 토론프로그램에서 완성하기 어렵다”며 현실적 한계를 짚은 뒤 “정통 토론을 유지할지, 새로운 종류의 토론을 만들어낼지 명확한 목표설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과거엔 지상파3사 몇 개 프로그램이 독점적으로 사람들 눈을 붙잡았고, 정치인들은 출연해야 했지만 지금은 분산된 매체 환경에서 주목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현실적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김효실 한겨레21 기자는 <100분 토론>을 두고 “한국 사회의 첨예한 이슈를 공론장에 밀어 올리는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첫 토론 주제부터 홍석현 사장 구속으로 촉발된 중앙일보 사태와 언론개혁 문제를 다룬 것이 상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한쪽에선 언론자유 지표, 다른 한쪽에선 좌편향 정치방송 지표가 되었다”며 “손석희가 석연찮게 하차(2009년)하는 등 <100분 토론>이 뉴스 그 자체가 되는 시기를 거치며 <100분 토론>을 지탱해 온 내외부적 자산이 상당 부분 훼손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그럼에도 “시민들은 여전히 토론에 목이 마르다”며 100초 토론 같은 스핀오프 시도부터 '다정한' 토론, '방송계 비정규직' 이슈처럼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토론을 제안했다.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