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尹 대통령의 이상한 韓日 과거사 인식

이철영 2023. 4. 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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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 후보 시절엔 "日 사과 반드시 이끌어낼 것"
與, 이번엔 '오역' '주어가 없다' 전 국민 독해 테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회담에서 악수하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대통령실 제공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유럽은 지난 100년 동안 여러 차례 전쟁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았다.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발언이다. 두 귀를 의심할 정도의 내용으로 파문이 크게 일고 있다. 기자들도 이게 사실이냐는 반응을 보인다.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인식이 이와 같은 수준이라면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가해국인 일본에 과거사 문제를 더 이상 언급해 봐야 의미가 없을 것이란 생각마저 든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3월 한일정상회담 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를 결정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은 윤 대통령이다.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한다는 지적부터 윤 대통령의 역사 인식은 친일사관에 가깝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번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내용은 국민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막무가내에 가깝다. 피해자는 진심어린 용서 구하기를 바라는데 대통령이 가해자들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21년 9월 11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기념관'을 찾아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만났다. 윤 후보는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이끌어내고, 할머니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것들을 다 해드리겠다"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의 과거사 인식은 대통령 후보 당시와 180도 달라졌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윤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안보 우려가 일본과의 협력을 지연시키기에는 너무 급박했다"며 "일부 비평가들은 결코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안보 문제라는 것인데, 국민이 윤 대통령의 발언을 온전히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2021년 9월 11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기념관'을 찾아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손하트 포즈를 취하는 모습. /윤석열 캠프 제공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항상 사과와 반성을 이미 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3월 한일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1998년 한일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내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했을 뿐이다. 제3자 변제라는 우리 정부의 양보에도 고작 이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으니, 일본에 더는 사과를 요구할 이유마저 없애버린 꼴이 됐다.

윤 대통령은 일본이 더는 우리에게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은 여전히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 있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지난 19일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대인 학살에 대해 또다시 사과했다. 그는 나치 독일군이 1943년 바르샤바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데 대해 "독일인이 행한 끔찍한 범죄에 용서를 구한다"며 "독일의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선 2019년 9월 1일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폴란드 중부 비엘룬을 찾아 "나는 오늘 생존자와 희생자의 자손들, 그리고 비엘룬 시민들 앞에 서 있다"며 "비엘룬 공격의 희생자와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사과에 "도덕적 배상"이라며 "과거사를 직시하고 사죄하는 그의 태도가 양국 간의 우정을 쌓는 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해국의 사과에 피해국이 손을 잡아준 것으로 한일관계와 상반된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윤 대통령 발언이 도마에 오르자 '오역', '주어가 없다' 등으로 방어에 나섰다. 그러자 윤 대통령을 인터뷰했던 워싱턴포스트 미셸 리 기자는 25일 자신의 트위터에 "번역 오류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오디오로 다시 교차 확인했다"며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여당이 민망해진 상황이다.

한일 과거사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고통은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특히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 권리는 피해자에게 있다. 대통령이 이를 대신할 수도 없을 뿐더러,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윤 대통령의 발언 파장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 대통령의 역사관이 친일사관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국민들로선 불행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은 본인 발언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한 후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도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윤 대통령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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