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 튀는 ‘조선판 MZ세대’… 젊어진 사극, 안방극장 점령

이복진 2023. 4. 2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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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깬 사극 잇따라 방송
‘조선변호사’·‘꽃선비 열애사’ 등
중년 아닌 청춘 남녀가 주인공
말투·행동 등 현대에 맞게 각색
장르물 자리 잡아… 해외서도 인기
“젊은 시청자들에겐 뉴트로 감성
중장년층엔 익숙함 선사” 분석

연청색 도포를 걸치고 갓을 쓴 정갈한 모습의 젊은 남성. 그가 건넨 첫말. “외지부 사무소를 차려야지. 사연 하나 없이 한양 오는 사람이 어디 있고, 사연 하나 없이 한양 떠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모르겠느냐. 눈에 보이는 모두가 내 돈줄. 목으로는 이곳이 제일이다.” 조선 시대 변호사인 외지부를 다룬 MBC 금토드라마 ‘조선변호사’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는 조선 최고의 외지부 강한수가 백성을 위하는 진짜 변호사로 성장해가는 드라마다. 우도환이 주인공 강한수를 연기한다. 선왕의 딸이자 강한수의 조력자인 공주 이연수는 김지연이 맡았다. 이 밖에 천호진, 최무성, 신동미 등이 출연한다.

MBC ‘조선변호사’, SBS ‘꽃선비 열애사’, tvN ‘청춘월담’ 등 사극 드라마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이들은 조선 시대 변호사인 외지부, 과거 시험 응시생을 위한 하숙집, 내시로 잠입한 천재 소녀 이야기 등 젊고 캐주얼한 사극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사람들로 가득한 저잣거리. 젊은 처자가 선비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곤 “과거 시험 합격에 이화원. 우리 모두 다 같이 이화원. 이화원은 합격입니다. 선비님들, 이화원으로 오시지요”라고 말한다.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에 오는 선비들을 자신의 하숙집에 머물도록 호객하는 것. 지난달 20일부터 방송 중인 SBS 화요드라마 ‘꽃선비 열애사’의 내용이다. 고정관념을 타파한 하숙집 ‘객주 이화원’ 주인 윤단오와 비밀을 품은 하숙생 꽃선비 3인방의 이야기를 다룬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임지연 분) 아역을 연기한 신예은이 윤단오 역을 맡았다. 꽃선비 3인방 중 폐세손 이설이자 강산은 려운이, 이설의 그림자이자 파수꾼인 김시열은 강훈이, 세자의 숨겨진 아들 이겸이자 정윤 대감 양자인 정유하는 정건주가 연기한다.

두 드라마는 모두 현재 방송 중으로, 조선 시대를 다룬 사극이다. 하지만 중년 남성으로 이뤄진 양반들이 도포나 관복을 입은 채 근엄한 자세로 정사를 논하거나 현재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어투로 대화를 나누는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극을 예상하면 안 된다.

우선 나이대부터 다르다. 중년이 아니라 20∼30대 청춘 남녀가 주인공이다. 젊어진 나이만큼 이들이 이끄는 극의 분위기도 밝아졌다. 기존 사극이 가지고 있던 이야기 진행 방식도 따르지 않는다. 조선 시대 변호사라는 독특한 직업을 소재로 한 ‘조선변호사’는 물론이고, 하숙집 주인 딸과 비밀이 있는 하숙생을 다루는 ‘꽃선비 열애사’도 모두 통통 튄다.

등장인물들의 말투는 물론이고 행동까지 자유롭다. 양반과 중인, 상민, 천민 등으로 신분제가 뚜렷했던 조선 시대라는 것이 무색하게 강한수는 신분과 상관없이 사람들을 대한다. ‘꽃선비 열애사’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일곱 살이 되면 남녀가 함께 앉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흔했던 유교 관념이 널리 퍼졌던 것을 감안하면 ‘감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남녀 사이가 가깝다. 심지어 주인공인 윤단오가 오히려 더욱 꽃선비 3인방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다. 이들은 사극이지만 현대 시선에 맞게 각색된 ‘젊어지고 캐주얼해진’ 사극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일에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청춘월담’도 기존 사극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미스터리한 저주에 걸린 왕세자 이환과 하루아침에 일가족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천재 소녀 민재이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로, 민재이는 성별과 신분을 숨기고 내시로 궁궐에 들어와 왕세자를 돕는다. 여성이 내시로 들어와 뛰어난 머리로 각종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부터 전통 사극과 다르다. 거기에 저주에 걸린 왕세자라는 설정은 덤.

다음달 6일 방송하는 1938년을 배경으로 하는 tvN 토일드라마 ‘구미호뎐1938’도 역사 드라마이지만 구미호와 산신, 요괴 등이 나오는 판타지 장르다. 복면과부 여화와 종사관 수호를 이야기하는 코믹 드라마 MBC ‘밤에 피는 꽃’, 별을 사랑한 천재 과학자인 왕세자 이향과 미래를 보는 신비한 여인 해류의 로맨스를 다룬 ‘해시의 신루’까지. 기존에 알던 사극과 다른 사극들이 안방극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사극의 변화는 영상 플랫폼이 변화하고 사극이 장르물로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배경은 조선이지만 로맨스나 활극 등 요소가 가미되고 젊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사극이 최근 많아지고 있다”며 “젊은 시청자에게는 뉴트로 감성을, 중장년 시청자에게는 익숙함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최근 사극은 그 자체가 장르로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해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며 “국제 에미상을 받은 ‘연모’와 큰 인기를 얻은 ‘옷소매 붉은 끝동’ 등이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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