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 살리는 택시기사입니다”[죽고 싶은 당신에게]

인천=김소영 기자 2023. 4. 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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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매일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갑니다. 한국은 죽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지친 당신이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담겠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도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1회> 택시 기사 이상길 씨

“나 어떨 땐 죽고 싶어.” 10여 년 전 설. 성묘를 위해 찾은 산소 앞에서 형이 뜬금없이 툭 뱉은 말이었다.

“아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소리 하지 마.” 동생은 형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로부터 며칠 뒤, 어머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네 큰 성(형)이 병원에 있댄다.” 그제야 동생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형이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가는 내내 ‘제발 살아있기를…’ 셀 수 없이 빌었지만 형은 끝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동생에게 평생의 후회로 남았다. 그때 형의 말에 귀 기울였다면 달라졌을까.

남은 가족들은 여전히 늘 형이 그립다. 어머니는 가끔씩 형의 영정 사진을 등에 업고 다녔다. 형이 눈을 감기 전 남긴 마지막 한마디. “엄마, 나 한 번 업어줘.” 어머니는 아들의 이 말이 두고두고 가슴에 맺혔던 것이다.

인천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이상길 씨(55)씨의 가족 이야기다. 지금 이 씨는 과거 자신의 형처럼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택시기사다. 20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사람 살리는 택시기사’ 이 씨를 만났다.

20일 이상길 씨가 택시에 있는 팸플릿을 건네고 있다. 이 팸플릿에 자살 예방 상담 전화번호 등이 적혀있다.
이 씨는 인천자살예방센터에서 진행하는 생명사랑택시 사업에 2018년부터 참여하고 있다. 생명사랑택시 기사들은 자살 위험에 처한 승객을 발견했을 때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이들이다. 이 씨처럼 일정한 교육을 수료하고 자살을 할 위험성이 높은 사람을 발굴해 전문가에게 연계하는 이들을 ‘자살예방 게이트키퍼(Gate keeper)’라고 한다. 특히 택시 기사들은 이웃을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는 만큼 자살 고위험군에게 적절한 대응을 한다면 자살 예방에 효과가 클 수 있다. 현재까지 총 609명의 인천 지역 택시기사들이 이 사업에 참여했다.

이 씨가 생명사랑택시에 참여하게 된 건 우연히 LPG 충전소에 붙은 모집 공고를 보면서부터다. 자살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글귀에 자신도 모르게 순간 멈칫했다.

“‘내 가족도 지키지 못했는데 이런 일을 해도 될까? 누군가에게 우스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형님은 지키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지키자는 마음에 신청해서 교육을 받으러 갔습니다.”

자살 예방 교육을 받으면서 이 씨는 깜짝 놀랐다. 교육 내용에 포함된 ‘자살 위험 신호’ 중 상당수가 형이 했던 말과 행동들이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받고 나오자 비가 유난히 세차게 쏟아졌다. 그날 이 씨는 주차장에서 홀로 한 시간 동안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앞으로 택시를 타는 승객들에게 이런 위험 신호가 감지되면 무조건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이후 5년째 이 씨는 택시를 타고 내리는 이들 중 자살 위험 신호가 감지되거나 유난히 힘들어보이는 이들에게 조용히 명함을 건넨다. 명함에는 이 씨의 이름과 전화번호, 인천자살예방센터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이 씨는 정신건강 전문가가 아니기에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 기관에 연계해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이상길 씨가 운전하는 택시. 그의 택시에 타면 ‘생명을 수호하는 생명사랑택시’라고 적혀있는 안전벨트가 눈에 띈다.
한 번은 택시에 탈 때부터 유난히 행동이 조심스러워 보이던 30대 승객이 있었다. 얇은 이불이 담긴 가방을 들고 탄 승객은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나 정말 그 집에 가도 돼?”라고 묻기도 했다. 살던 집에서 나와 어디론가 가는 듯한 눈치였다.

이 씨는 승객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손님, 살다보면 힘들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지요?”

그때부터 승객이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승객은 최근 보이스피싱과 파혼을 연달아 겪고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였다. 함께 사는 가족에게도 지지받지 못해 크게 실망하면서 삶의 의지를 잃었다. 승객은 더이상 살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승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뒤 조심스레 운을 뗐다.

“지금 너무 힘드시죠. 요즘은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비밀도 지켜주고 무료로 상담해주는 기관들이 있어요. 같이 한번 통화해보실래요?”

그리고 이 씨는 자신의 핸드폰에서 스피커폰으로 인천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걸어, 다음 날 오전에 다시 승객이 상담 전화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며칠 뒤 승객으로부터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는 연락을 받았고 이 씨는 승객에게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꾸준히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이렇게 이 씨는 매일 누군가가 보내는 작은 SOS 신호에 귀를 기울인다. 이 씨는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한순간, 살아가는 이유를 잠시 잃어버린 누군가에게 보내는 따뜻한 관심과 경청, 위로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 힘이라고 믿는다.

“하늘에서 형이 지금의 절 본다면 ‘야, 그때 나한테 좀 잘하지’라고 말할 것 같아요. 여전히 미안합니다. 그래서 대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꼭 잘 들어주고 싶어요. 그게 형이 제게 남기고 간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살 예방 Q&A

내 가족, 친구, 이웃이 ‘죽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문을 받아 자살 예방과 관련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드립니다.

Q. 상대방에게 자살 생각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까요? 괜히 물어봤다가 오히려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A. 자살 생각을 물어보는 것 자체는 자살 충동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자살 생각’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말고 자살생각 그 자체에 대해서 질문해주세요.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라는 부정적인 표현 대신 “자살을 생각하고 있니?” 처럼 직접적으로 물어봐주세요.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다 들어줄 개’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천=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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