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바뀐 것이 원인이다

허남영 국립부산과학관 전시교육본부장 2023. 4.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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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영 국립부산과학관 전시교육본부장

생물학자이자 인지발달이론을 정립하여 심리학자로 더 유명한 장 피아제는 이론을 발달시킬 때 자신의 자녀를 관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의 성장을 조금만 살펴보면 누구든지, 피아제만큼은 아니더라도 자녀의 작은 성장에 기뻐하거나, 어른의 입장에서는 간단해 보이는 것을 자녀가 해내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얼마 전 자녀가 과제풀이 하는 것을 살펴보게 되었다. 과제는 전구를 전선으로 배터리에 연결한 회로에서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을 경우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원인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쉽게 전구에 문제가 있거나, 배터리가 모두 소모된 경우 불이 들어오지 않음을 답했고, 곧이어 전선이 끊어졌거나 접촉이 불량한 경우를 찾아냈다. 회로가 세 부분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각 부분에 문제가 있을 경우를 찾아내는 것은 비교적 쉽게 해냈다. 다음 풀이단계로서 확인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전구가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즉, 전구에 문제가 있어서 불이 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그렇다. 전구를 새것으로 바꾸어서 불이 켜지는지 확인하면 된다. 불이 켜지거나 켜지지 않는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 변한 것은 전구뿐이고 전선과 배터리는 변함없다면, 원인은 바뀐 것, 즉 전구 때문이다. 배터리가 소진된 경우에도, 전선이 끊어진 경우에도 각각 배터리와 전선을 교체해 봄으로써 그것이 문제의 원인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결과가 달라지면 바뀐 것이 원인이다’로 정리할 수 있고, 과거와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면, 달라진 것 중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당연해 보이는 결론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변하지 않은 것을 이유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학 현상도 있다. 유리컵 위에 명함을 놓고 그 위에 동전을 올려놓은 뒤, 명함을 천천히 당긴다면 동전은 명함과 같이 컵 바깥으로 움직이지만, 명함을 빠르게 쳐내면 동전은 컵 속으로 떨어지는데, 그 이유를 동전의 관성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동전이 컵 속에 떨어지거나 바깥으로 이동하는 서로 다른 현상이 나타났는데, 앞서 얻은 결론과 같이 동전의 관성이 이유가 되려면 두 경우에 동전의 관성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관성을 어떻게 정의하든, 두 경우에 변한다고 보기 어렵다.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다른 결과의 원인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 앞서 전구회로의 경우, 전구와 전선과 배터리는 서로 독립적이어서 배터리가 소진된다고 해도 전구와 전선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사회적인 현상에서는 여러 변인들이 서로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 또, 여러 변인들이 한꺼번에 변하게 되면 그 중 어느 것이 원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계속해서 오르던 집값이 언제부턴가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는데, 정부정책과 환율, 공급량 등 여러 가지가 원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바뀌지 않은 것은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없으므로 제외하더라도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바뀐 것이 모두 다른 결과의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이 켜지지 않는 전구회로에서 전구와 배터리가 동시에 바뀌면, 둘 중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회로의 전구 전선 배터리를 새것으로 바꾸어 불이 켜지는지 알아본다는 해법을 찾아냈다. 컵 위 명함에 올려진 동전의 관성은 달라지지 않지만 명함이 움직이는 속력과 시간에 따라 동전의 움직임을 계산하여 컵 안 혹은 컵 바깥에 떨어짐을 확인하면,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서 조절이 일어나듯, 모순이 해소되고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한다. 최근 핫한 챗GPT는 인간을 질문하는 존재로 만들고 있다. 아직은 그 대답이 부정확하거나 편향되기도 하여 질문한 인간이 대답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인간은 이 능력을 당분간은 계속 발전시켜야만 할 것 같다. 챗GPT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오류를 줄여가고 정보의 정확성을 높여가겠지만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잘못된 정보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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