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피해로 뒤덮힌 대한민국, 사기와 깡통전세의 컬래버
서울, 인천, 부산, 동탄 등 전세사기와 피해가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피해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집주인, 중개사, 감평사 등이 가담해 조직적·지능적으로 임차인을 속인 경우와 집주인이 무리하게 갭투자를 한 후 가격 하락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경우다.
전문가들은 집주인, 공인중개사가 작정하고 조직적으로 임차인을 속이면 거를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찰에 따르면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의 경우 공범 60명이 320명을 상대로 263억원 상당을 빼돌렸다.
최근 많이 발생하는 또다른 피해는 집값이 전세보증금보다 더 낮아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하면서 보증금을 돌려 받기 어려워진 경우다. 이른바 '깡통전세'로 시장 변화에 따라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조직적인 사기 행위와는 다르다.
동탄 등에서 오피스텔 250여채를 소유한 A씨 부부가 세입자들에게 '전세보증금 가격으로 소유권을 넘겨 받아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집값이 보증금보다 더 낮아졌기에 임차인들은 소유권을 넘겨 받아도 수천만원의 손해를 보는 입장이지만 A씨 부부에 대해 사기죄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는 힘들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이런 '깡통주택' 문제는 전국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집값이 하락하면서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이 급격히 상승한 지역들이 늘고 있어서다. 한국부동산 임대차사이렌에 따르면 최근 3개월 간 전국 아파트전세가율은 70.3% 수준이다. 통상 업계에서는 전세가율이 70%를 넘으면 깡통전세 위험 신호로 본다. 시도별로 광주, 대전, 울산, 충남, 전남, 경남, 제주 등이 이미 70%를 넘어섰고 강원(80.2), 충북(81.7), 전북(81.9), 경북(84.5)는 이미 80%대에 진입했다.
아파트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고 연립·다세대주택은 더 심각하다. 전국 전세가율이 79.6%에 달하며 시도별로 세종시(105.9)충청남도(100.7)등은 100%을 넘어섰다. 이미 전세보증금이 집값보다 더 높아져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전세제도 자체의 문제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로서 집값이 안정돼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지금처럼 집값이 급락하거나 급등했을 경우 임차인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전세는 목돈이 필요한 집주인과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싶어하는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임대 형태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로 인위적인 폐지가 어렵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 재산에 해당하는 목돈을 맡기는 제도인만큼 세입자도 늘 위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전세제도는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고 월세를 내지 않고 자산을 형성해 기초자금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문제는 전세를 악용하는 사람들이고, 정부가 그 사람들이 악용할 수 있게끔 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들어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세대출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전세대출은 소득수준 등의 제한없이 보증금의 80%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세만 조작하면 많은 금액을 대출 받기가 손쉽다. 전세사기꾼들도 이 점을 노린다.
전세피해 사례를 보면 한 사람이 수백채의 집을 보유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때문에 특정 시점에 동시에 집을 사들이거나 수백채를 보유하는 임대인에 대해서는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령 보증기관에서 악성임차인 뿐 아니라 다주택자에 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현황을 파악한 후 세입자가 보증보험에 가입할 때 알림 등을 통해 내용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세사기의 경우 공인중개사가 집주인과 짜고 처음부터 가담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공인중개사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는 물론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등 전문직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등록임대사업자 제도 미비도 전세사기를 부추긴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임대사업자 등록 확대와 관리·감독 강화도 필요한 상황이다. 전세피해를 발생시킨 사례를 보면 수백채의 집을 보유하지만 등록임대사업자를 내지 않은 무등록 부동산업자들이거나 임대사업에 등록했지만 보증 의무 가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서민을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정부는 전세사기 등으로 인해 경매로 나온 물건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들여 다시 임대에 나서는 대책을 마련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1일 LH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LH에 이미 예산과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매입임대 제도를 확대 적용해 전세사기 피해물건을 최우선 매입 대상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LH는 올해 2만6000채의 주택을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이를 최대한 피해주택 매입에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더해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지방공사의 매입임대주택 예정 물량 9000채까지 합할 경우 총 3만5000채를 매입 가능하다.
배규민 기자 bkm@mt.co.kr, 이소은 기자 luckyss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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