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지났지만 아직도 학생 같고 신인 같아"

고두현 2023. 4. 2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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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60주년 맞은 김종해 시인
후배·제자들과 시집 출판기념회
‘항해일지’의 뛰어난 은유 위에
노경문학의 새로운 지평 열어
김종해 시인은 "등단 60년이지만 아직도 학생 같고 신인 같은 마음으로 시를 쓴다"고 말했다.


“등단 60년이지만 아직도 학생처럼, 수습 기간인 신인처럼 시를 쓰는 중입니다. 이번 시집 원고를 넘긴 뒤로는 넉 달간 한 편도 쓰지 못했는데 여태까지 지니고 있던 커다란 덩어리가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시를 쓰더라도 꼭 남다르고 특색 있는 시를 써야겠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편하게 쓰겠습니다.”

올해 등단 60년을 맞은 김종해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가 21일 서울 마포 조박집에서 열렸다. 시력(詩歷) 60주년과 새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문학세계사) 출간을 기념하는 이날 행사에는 후배·제자 시인 30명이 참석했다.

김종해 시인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이 장소는 계간 ‘시인세계’ 신인상 수상자들의 축하 파티 자리이기도 해서 인연이 깊고 음식 맛 또한 좋다”며 함께한 제자 시인들을 향해 “좋은 시를 쓰십시오. 좋은 시인이 되십시오”라고 당부했다.

 “따뜻함과 따가움을 함께 느꼈죠”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은 “동향 선배이자 친구 김종철 시인의 형이기도 한 김종해 선배님의 시력 회갑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삶이여, 때로는 괴롭고 힘든 날도 많았었지만 대체로 따뜻하고 걷기 좋은 날”로 시작하는 시구를 낭송했다.

장석주 시인은 “우리에게 김종해 선생님은 ‘항해일지’의 시인으로 뛰어난 은유와 성찰을 보여줬고, 최근 시집들에서는 삶의 완숙 경험에서 건져 올린 온화한 지혜들로 노경문학(老境文學)의 새로운 가능성을 일깨웠다”며 “계속해서 더 뜨거운 시 창작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제자인 이선영 시인은 “선생님을 생각하면 늘 따뜻함과 따가움이라는 두 단어가 떠오른다”며 “따뜻하게 대해 주시면서도 그 속에 따가움을 갖고 있는데 그게 긴장감을 줬고, 그 긴장감이 선생님에게도 60년의 울림을 주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홍일표·장인수 시인이 감사패를 전달하고 한미영·하정임 시인이 꽃다발과 선물을 증정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진 감사패의 문구는 잔잔한 듯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겼다.

“1963년 시인으로 등단, 시로 세상을 품고 살아오신 60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시가 삶을 지탱하는 기도의 말씀이며 창조와 구원의 의미’라고 하셨고,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죽을 때까지 시가 가리키는 길을 시와 함께 걸어가겠다’는 숭고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저희 제자 시인들에게 저녁 등불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을 오래도록 사랑하겠습니다. 2023년 4월 21일 제자 시인들 올림.”

김종해 시인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지금까지 많은 상을 받아봤지만 그 어떤 상보다 더 크고 뿌듯하다”고 화답했다. 그 표정이 이번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지금 제 앞을 밝히는 저녁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새로운 시의 길을 생각하며 천천히 이 길로 걸어갈 것입니다”라고 다짐하던 순간과 닮아 보였다.

김종해 시인 등단 60주년과 새 시집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후배·제자 시인들.

 500톤짜리 배 타던 17세 소년 시절…

1부 행사가 끝난 뒤에는 일행 모두가 인근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시 낭송과 축가 등으로 ‘특별한 60년’을 축하했다. 이 자리에서 우대식 시인이 낭송한 ‘서울 입성(入城)’에는 김종해 시인의 극적인 삶이 그대로 응축돼 있다.

‘정월 대보름날 사흘 지난 1962년 2월 18일께, 나는 고향 부산을 떠났다. 고향 바다와 초장동과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자를 부산 본역(本驛)에 남겨두고 슬프고 긴 기적 소리와 함께 서울행 밤기차가 움직이자 기차 맨 끝 꼬리칸에서 난간을 붙잡고 나는 통곡하였다. 수중에는 1,450원뿐, 이 가운데 서울행 기차삯이 790원―이제 나는 다시 고향 부산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십계(十戒)」의 모세처럼 광야의 사막을 혼자서 나는 걸어가야 하리라. 넓고 낯선 저 사막, 닫혀 있는 서울의 어느 집에서 한 모금의 물이라도 얻어 마실 것인가. 먼 사막의 광야를 걸어가는 히브리인 모세가 나에게 와서 밤낮으로 회중전등을 비춰 주었다. 나는 일어서서 사막 위를 걷고 또 걸었다.’

이 시의 이면에는 시인의 눈물겨운 성장기가 깔려 있다. 가난 속에서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한 ‘소년 김종해’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점원 생활을 했다. 그러다 17세에 야간고교를 휴학하고 부산에서 속초를 오가는 500톤짜리 알마크 호 여객화물선을 탔다. 이 선상 체험은 나중에 연작시 ‘항해일지’를 낳게 해 줬다.

30편에 이르는 연작은 바다를 항해하는 수부의 기록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 도심에서 노를 젓고, 변두리의 삶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화한 것이다.

‘항해일지 1-무인도를 위하여’는 ‘을지로에서 노를 젓다가 잠시 멈추다’로 시작해서 ‘눈보라 날리는 엄동 속에서도 나의 배는 가야 한다./ 눈을 감고서도 선명히 떠오르는 저 별빛을 향하여/ 나는 노질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지로 승화된다.

김종해 시인은 그때를 상기할 때마다 “무인도에서 홀로 살고 있더라도 무인도가 마지막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듯이 혹한의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며 “내 시의 메시지도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밤늦게까지 자리를 함께한 제자 시인들은 60여 년 전 ‘사막 위를 걷고 또 걸었’던 스승이 ‘항해일지’와 ‘기도의 말씀’으로 ‘저녁 등불’을 밝혀 온 삶의 여정을 하나씩 떠올리며 자정이 넘도록 얘기꽃을 피웠다.

행사 진행은 고두현(1부), 장인수(2부) 시인이 맡았다. 참석자는 김왕노 조말선 문성해 나금숙 김산 양해기 박은정 하린 임창아 최라라 진동영 유미애 김시언 김요일 김요안 등 30명이었다. 경남 사천에 사는 김은정 시인은 대형 화환을 보내 축하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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