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반려식물이 벌떡…입원치료에 당직의사 스마트폰 상담까지

김규현 2023. 4.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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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식물병원들
대구시 반려식물 치료센터로 지정된 서구 화원인 내당플라워에서 직원 홍인선(58)씨가 손님에게 식물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식집사’는 식물을 가족같이 돌보며 애정을 쏟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일컫던 ‘집사’라는 말 앞에 ‘식물’을 붙여 만든 것으로, 2~3년 전부터 식물 애호가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식물을 반려동물처럼 키우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아픈 식물을 치료하는 식물병원까지 등장했다.

지난 13일 찾아간 대구 서구 내당동의 화원 입구에는 ‘대구시 지정 반려식물 치료센터’라는 명패가 달려 있었다. 김세현(30) 내당플라워 대표는 “잎이 갈색으로 변해 떨어지거나, 벌레 먹은 식물들을 많이 들고 온다. 인터넷으로 식물을 샀는데 상태가 좋지 않다며 찾아오는 분들도 꽤 있다”고 했다. 그는 대구의 식집사들 사이에서 ‘명의’로 통한다. 화원 안에는 판매하려고 진열해놓은 화분들 외에 ‘치료’를 위해 맡겨두고 간 식물들로 빼곡했다.

내당플라워에 ‘반려식물 치료센터’란 명패가 걸린 건 올해로 3년째다. 대구시는 2021년 10월부터 8개 구·군의 화원 20곳을 치료센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주인들은 모두 도시농업관리사 등 관련 자격을 갖춘 이들이다. 처음 대구시가 기초자치단체마다 식물치료센터를 운영한다고 했을 때는 시청 내부에서조차 ‘동물병원도 아니고 식물병원이란 게 제대로 운영이 되겠느냐’고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구시는 2021년 10월부터 8개 구·군의 20개 화원을 지정해 식물 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서구 주민 김담희(50)씨는 반려식물만 100종 넘게 기르는 ‘프로 식집사’다. 그런 김씨도 전문가의 도움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벌레가 생겼을 때다. “진드기, 깍지벌레 이런 게 생기면 무조건 옵니다. 치료센터가 생기기 전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약을 구한 뒤 직접 뿌렸는데, 확실히 전문가에게 치료받으니까 다르더라고요.”

반려식물 치료센터에서는 일정 크기 이하의 화분은 무료로 분갈이도 해준다. 직원 홍인선(58)씨는 의뢰인이 맡긴 ‘하트호야’ 화분을 분갈이하며 “화분이 작아 보이기 시작하면 분갈이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다”고 했다. 하트호야를 큰 화분으로 옮겨 분갈이 흙에 입자가 굵은 마사토를 섞어 채워주자, 하트 모양 이파리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대구시 반려식물 치료센터로 지정된 서구 화원인 내당플라워에서 직원 홍인선(58)씨가 손님이 맡긴 ‘하트호야’ 분갈이를 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반려식물 치료센터를 이용해본 이들은 큰 만족감을 나타낸다. 대구시의 센터 운영 분석 자료를 보면, 이용자의 97%가 ‘매우 만족’했다고 답했고, 99%가 ‘추가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대구시 농산유통과 관계자는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워, 주민복지 증진 차원에서 사업 확대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지난 1월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반려식물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반려식물을 기르면 ‘정서적으로 안정된다’(76.9%), ‘행복감이 증가한다’(73.1%) , ‘우울감이 감소한다’(68.4%) 등의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대구의 반려식물 치료센터가 ‘동네병원’이라면, 서울에서는 반려식물을 위한 ‘상급종합병원’도 생겨났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서초구 내곡동 서울농업기술센터에 ‘반려식물병원’을 열었다. 같은 날 종로·은평·양천·동대문에는 ‘생활권 반려식물 클리닉’이 운영을 시작했다. 클리닉에서는 간단한 약제 처방과 분갈이, 병충해 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집중관리가 필요하면 반려식물병원으로 인계해 ‘입원치료’를 받도록 한다. 나름의 1·2차 진료체계를 갖춘 셈이다. 반려식물병원에서는 정밀진단이 가능한 전문장비를 갖추고 다양한 식물 관련 전공자들의 협진도 이뤄진다. 진료비는 무료다. 한 사람이 화분 3개(월 1회 기준)까지 맡길 수 있다.

서울시 반려식물병원에서 ‘식물 의사’가 정밀진단을 하고 있다. 손지민 기자

지난 11일 방문한 반려식물병원에서는 ‘식물 의사’가 현미경을 통해 식물의 병세를 진단 중이었다. 가지에 붙은 하얀 반점을 뜯어내 현미경으로 확대하자 벌레 한마리가 6개의 다리를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깍지벌레라고 했다. 식물병원에선 전화 처방도 내려준다. 이날의 당직의사인 주재천 환경농업팀장이 의뢰인에게 “물을 굉장히 좋아하는 식물인데, 뿌리 쪽이 부패해 영양이 못 올라가는 상황인 것 같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급격하게 나빠지는 것 같지는 않으니 병든 잎은 다 따낸 뒤 건조시켜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식물 의사들은 사진만 보고도 척척 처방을 내놓았다.

서울시 반려식물병원에서 분갈이를 하는 모습. 손지민 기자

입원실도 있다. 관엽식물, 다육식물, 꽃 등 종류별로 입원 구역을 분리하고, 집중 치료가 필요한 식물은 병원의 ‘중환자실’처럼 따로 모아 관리한다. 이곳엔 전문가가 상주하며 아픈 식물을 치료한다. 다만 희귀식물, 고가의 식물, 야외에서 자라는 식물은 입원시키지 않는다.

면회객을 위한 공간도 만들었다. 병원 관계자는 “다른 지역의 식물병원은 일반 화원처럼 꾸며 운영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내부를 병원처럼 만들었다. 그래야 병원에 왔을 때 내 식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문 치료센터도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경북 경주시는 지난해부터 반려식물 치료센터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2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반려식물 활성화 및 산업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시 반려식물병원 입원실에서 ‘식물 의사’가 물을 주고 있다. 손지민 기자
서울시 반려식물병원에서 이용자가 올린 사진을 보며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손지민 기자

김규현 손지민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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