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 조세희, 32년 만에 표지화가 백영수를 찾아 사과하다

노형석 2023. 4. 1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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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운명]작품의 운명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조세희 작가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초판을 펴냈을 때 들어간 화가 백영수의 원작 도판. 조 작가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 열화당 제공

“죄송합니다…미안합니다.”

 작가 조세희는 창백하게 굳은 표정으로 사과의 말을 나직이 되뇌었다. 나이가 스무살 위이고 몸도 불편한 원로화가 백영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초면에 깊은 사연들을 한꺼번에 꺼내어 대화로 풀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이윽고 조세희는 수전증으로 떨리는 손을 움직여 품에서 노트만한 크기의 작은 그림 하나를 꺼내놓았다. 

 따뜻하면서도 왠지 슬픈 느낌이 다가오는 가족도였다. 새가 날아다니는 동그랗고 푸른 하늘 아래 세 가족이 그려진 화폭. 고개를 옆으로 꺾은 엄마가 자신의 아가를 품에 띄우고 그 옆에 역시 고개를 옆으로 꺾은 좀 더 큰 아이가 함께하는 가족의 도상들이 소담하게 펼쳐져 있었다. 내 그림이 맞구나! 찬찬히 그림을 훑어본 백영수와 그의 부인 김명애 여사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갔다. 백영수 화가는 어눌하면서도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그림 잘 쓰셨네요. 앞으로도 잘 간수해주세요. 이제 가까이 지냅시다.”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조세희 작가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초판본 표지. 오규원 시인이 장정과 편집을 맡았던 책이다. 백영수의 표지화는 원본과 달리 작위적으로 배치했다. 가족의 도상과 새가 날아가는 하늘의 도상을 따로 떼어 간격을 두고 그 사이에 제목과 출판사 이름을 넣은 것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0년 어느 봄날, 도봉산 자락이 보이는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에 있는 원로화가 백영수(1922~2018)의 집에서 한국 화단사와 문단사에 남을 아름다운 대가들의 만남이 성사된다.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초판을 발간한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1942~2022)가 찾아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난장이 가족의 인상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 그림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됐지만, 여러 곡절로 사전에 게재 허락을 받지 못하고 쓴 표지화의 작가 백영수를 출간 32년 만에 마침내 해후하고 뒤늦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진학> 잡지에서 박봉으로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문인 조세희는 <난쏘공>의 주역인 난장이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였다. 이런 그가 왜 수십 년이 지나고 책이 베스트셀러를 넘어 국민필독서로 등극한 뒤에야 표지화 작가 백영수 앞에 고개를 숙여야했을까.

1995년 문학과지성사가 펴낸 재판 10쇄본. 초판본과 달리 제목과 출판사명을 왼쪽 측면으로, 백영수의 표지화는 오른쪽 측면으로 갈라 배치했다. 가족의 도상과 새가 날아가는 하늘의 도상 사이 간격을 더 벌렸다. 원래 도판의 실체와는 더욱 거리감을 낳은 편집이다. 노형석 기자

백영수는 일제강점기 두살 때 일본으로 어머니를 따라 건너간 뒤 오사카미술학교를 나온 미술영재 출신이었다. 이중섭, 장욱진 등과 더불어 1948년 신사실파 동인을 결성하며 한국 근현대기 처음 추상화 운동을 본격화한 주역으로 꼽히는 대가였지만, 50년대 잡지와 신문 등 출판미술의 주역으로 활약하던 시기를 거쳐 1970~90년대 도불해 프랑스에서 작업하면서 모성을 바탕으로 한 가족도와 반추상 구도의 자연 그림을 그리면서 장년기와 말기에 특유의 애잔하고 서정적인 화풍을 정립하게 된다.

경희대에서 공부한 문학청년인 조세희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문학과 지성사에서 <난쏘공> 책을 펴낼 때 레이아웃 장정을 맡은 시인 오규원이 정식 절차 없이 백영수의 도판을 표지화로 쓴 것이 훗날 조세희의 마음에 짐을 안겨주게 된다. 당시 태평양 화장품의 잡지 <향장>의 편집장을 지내면서 화단 대가들의 그림들도 지면용으로 숱하게 청탁을 받았던 오규원은 자신이 받아두었던 백영수의 작은 가족도를 조세희 첫 소설집 표지 도판으로 점찍고는 화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사실상 무단 도용해 써버린 것이다. 당시엔 저작권 개념 같은 것이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않던 터라 김병익, 김현 등 출판사를 이끌던 평론가나 기획진들도 표지화는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갔고 그렇게 90년대까지 화가에 대해서는 사실상 관심을 두지 않았던 상황이 이어졌다. 그림을 표지화로 쓴 장본인인 오규원 또한 2007년 세상을 떠나면서 구체적인 진상을 파악할 길은 영영 막히게 되었다. 이런 허물을 뒤늦게 발견하고 바로잡아야겠다고 결심한 이가 바로 출판계의 원로인 열화당 대표 이기웅씨였다. 평소 <난쏘공>삽화를 보고 저건 백영수 화백의 그림일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그는 2010년 3월 박미정 환기미술관장이 프랑스정부로부터 슈발레에 훈장을 받는 날 기념 만찬에 갔다가 우연히 한국에 온 백영수 화가 내외와 만나게 됐다.

백영수 작가. 타계하기 2년 전인 2016년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열린 마지막 개인전 때 찍은 모습이다. 그의 뒤로 1988년 작 <창가의 모자>의 일부분이 보인다. 갤러리 아트사이드 제공

“백영수 선생과 부인 김명애 여사가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한국문학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가 한국의 문학 베스트셀러를 소개한 영상을 보는데, 자신이 그린 그림이 난쏘공의 표지화로 등장한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거예요. 김 여사는 한국에와서 경위를 살펴보고 따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뒤늦게 제가 경위를 알고 조세희 선생한테 백선생 댁에 가서 경위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자고 했지요.”

이미 2000년 문학과지성사로부터 판권을 넘겨받아 자신의 아들이 운영하는 이성과 힘 출판사에서 새로 소설집을 출간한 조세희로서는 당혹한 상황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2000년 당시에도 이철수 판화가의 그림과 제호로 소설집 표지를 바꿨다가 이미 100쇄 이상 찍은 소설집의 백영수 삽화는 난장이 가족과 숙명적 인연으로 하나가 되어 교체하면 안된다고 강권하는 친우 이기웅의 제안을 수용해 원래 백영수의 표지화로 되돌린 터였다. 사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세희는 크게 부끄러워하며 그림을 빼려 했으나 가장 친한 벗인 이기웅 열화당 대표의 만류로 대신 백 작가의 내외를 찾아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마지못해 주저하면서 백 작가의 집으로 갔지만 표지화는 소설과 함께 한국민의 역사적 유산이 됐음을 강하게 설득한 동료 이기웅의 설득과 노력으로 두 대가의 만남은 따뜻한 배려와 위로가 넘치는 자리로 마무리되었다.

조세희 작가의 아들인 조중협 이성과 힘 출판사 대표가 소설 판권을 넘겨받아 2000년 새로 펴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표지. 백영수의 그림 대신 이철수 판화가가 새긴 목판화가 들어갔으나 조세희 작가는 이기웅 열화당 대표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후 판본에서 백영수의 원래 표지화를 다시 넣게 된다. 이성과 힘 출판사 제공
2002년 이래 지금까지 이성과 힘 출판사에서 발간해온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판본의 표지. 표지화는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냈던 소설집처럼 백영수 작가의 도판을 넣고 제호는 이철수 판화가의 판각 글씨를 썼다. 그림 왼쪽에 소설집 첫편 ‘뫼비우스의 띠’에 나오는 교사와 학생들의 ‘굴뚝 청소’ 문답에 대한 내용을 실었다. 이성과 힘 출판사 제공

이후 두 대가는 모두 건강이 나빠져 백 작가는 2018년 6월, 조 작가는 지난해 12월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타계 수년 전 이기웅 대표의 주선으로 이뤄진 아름다운 사과와 화해 덕분에 백영수의 가족 그림은 난쏘공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더욱 굳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미지의 우주 탐구와 사랑의 세계를 꿈꿨던 소설 속 난장이 부친의 생각을 서술한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의 다음 구절이야말로 백영수 가족 표지화에 대한 가장 적실한 묘사일 것이다.

‘아버지가 그린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 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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