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표범 원정대] 고산등반 어깨 힘 빼고, 우리는 과정을 즐겼다

김태관 2023. 4. 18.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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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전준비&전지훈련
원정 준비 1단계… 손품 팔아 보험료 싼 곳 찾기와 국내외서 훈련
벤네비스 등반 중 산장 위로 오로라가 펼쳐진다.

'목로주점'이라는 노래 가사 중에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라는 대목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낭만 넘쳐서 좋았는데, 지금 보니 도리어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한 사람만이 가능한 재테크였다. 지금 모자란 원정자금에 보탤 수 있는 내 유일한 희망은 퇴직금뿐이다.

첫 기사가 월간山에 실리고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 주셨다. 힘내라거나, 조심하라거나.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나날들이다. 이젠 출국 예정일이 4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우리 팀은 뭐가 달라졌을까? 아. 아무 진전이 없다.

현지 대행사 결정하기

대행사 선정, 보험, 항공편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정해진 게 없다. 사실 레닌봉 원정 때도 2개월 전에야 다 끝내고 갔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좀 더 성장했을 줄 알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진짜 아무 진전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일단 대행사와는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 의외로(!) 중앙아시아에도 등반상품에 대한 조율 및 준비를 진행하는 다양한 업체들이 있다. 레닌봉에 갔을 때 현지 베이스캠프에는 키르기스스탄산악연맹을 포함해, 악사이, 센트럴 아시아, 파미르 등 다양한 회사들이 캠프를 설치하고 등반상품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중에 우리가 선택한 키르기스스탄산악연맹의 캠프는 제일 구린, 아니 저렴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악사이 투어로 원정을 가려고 했는데 원정대의 현지 대행사 업무와 보험을 다수 담당해 보셨던 선배님께서 카자흐스탄의 캉텐그리 투어가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적극 추천하셨다. 확실히 이름부터 믿음이 가긴 했다. 자고로 맛집이나 클라이밍 센터나 동네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은 똑같이 동네 이름을 걸고 장사했던 다른 업체를 다 이기고 살아남았다는 증거다.

일단은 양 업체 모두 견적을 진행 중이다. 한 가지 의외였던 건 우리같이 두 봉우리를 한꺼번에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현지에서는 대충 해도 되는 산이라서 그런 건지 몰라도 두 봉우리를 한꺼번에 케어해 주는 상품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봉우리 상품에서 중복되는 서비스 품목이나 비용 등에 대한 할인, 감면 등을 대행사와 조율하는 것이 제1목표다.

선자령에서 설상 훈련.

등반 보험 찾기

레닌봉은 보험 없이 갔었다. 아 있었나? 당시에 레닌봉은 쉽다는 말에 혹해서 정말 생각 없이 갔지만 이번에는 보험 하나 정도는 들고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정말 본격적인 원정대가 됐으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레닌봉 땐 프랑스 산악보험을 들고 갔었다. 프랑스 산악연맹에 회원가입을 한 후 연회비를 내면 EU 비거주민이어도 1년여의 기간 동안 오만가지 산악활동에 대해 장비분실부터 사망까지 커버해 준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나라의 보험회사들이 해당 국가의 거주민이 아닐 경우 보장범위를 축소하거나, 가입 자체를 불허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창 골머리를 썩던 도중 정보를 제공해 줬던 선배님께서 한 가지 묘안을 주셨다.

"대행사 등반상품 구매조건에 보험 가입이 있잖아."

"그렇…죠?"

"그쪽 대행사가 돈 벌고 싶다면 보험을 찾아주겠네?"

"아! 그렇죠!"

일명 '떠먹여줘' 전략이다. 진상고객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상품 가입을 위한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충분히 요구할 만한 내용이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보험 가입의 정글에 던져지느니 철판 깔고 드러누워서 해달라고 하는 편이 훨씬 심적으로 편했다.

게다가 등반지 정보 및 원정 보고서를 얻기 위해 찾아간 산악도서관 더 마운티니어 클럽의 문연우 선배님의 보험 가입 후기가 압권이었다. 최근 알래스카에서 등반하다가 눈사태에 휘말려 골반 뼈가 산산이 흩어진 상태로 구조돼 현지 병원에 입원했는데 눈사태로 인한 상해는 보상 범위에 해당되지 않아 통장잔고까지 산산이 흩어져 버렸단다.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우리는 보험 가입은 대행사에 일임하자고 더욱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다. 문득 해달라고 떼쓰기만 하는 진상고객에 시달리게 될 대행사 직원에게 심심한 사과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래도 보험가입은 알아서 해줬으면 한다. 진짜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최선홍 대원이 연예인 노홍철씨를 만나 응원과 더불어 원정대 깃발에 사인을 받았다.

눈! 눈! 눈이다!

마음속 열의와는 다르게 미적미적 진행되는 원정 준비는 차치하고, 훈련만큼은 제법 알차게 한 것 같다. 재호는 스코틀랜드로 갔고, 나와 선홍이는 용평으로 향했다. 얼마 남지 않은 눈을 조금이나마 밟아보려는 욕심이었다. 선홍이가 노홍철님의 팬미팅에 참가했다가 버스를 놓쳐 다음날 합류하는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우리 팀 깃발에 유명인의 사인이 박히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할 만하다. 넘치는 긍정에너지를 모쪼록 원정까지 가지고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로 팬미팅 후 바로 훈련에 오려고 등산복에 집채만 한 배낭을 메고 피켈까지 꽂고 팬미팅 장소에 도착하자 다들 산악인 '콘셉트'인줄 알았다고 한다. 열정! 열정! 열정!

선홍이가 합류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마지막 설상 훈련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훈련지로 꼽은 곳은 선자령이었다. 적설량이 준수한데다 선홍이가 자기만 아는 설상 훈련 스팟이 있다기에 그곳으로 갔다.

근데 선홍이 같은 '자기'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훈련하는 설면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가 불쑥 불쑥 나타날 때마다 혼비백산하거나 구경하거나 사진 찍거나 셋 다 하거나, 그랬다. 포토존 밑에서 시커멓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서 눈 파고 놀고 있으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설면에는 제법 눈이 남아 있었기에 우리는 설동 구축, 스노 볼라드 설치, 피켈 확보물 설치 등 설상 시스템과 활락정지 등을 훈련하면서 용평에서의 나날을 보냈다. 다만 운행을 하자니 마땅한 곳이 없었고, 설상 훈련을 하자니 슬로프가 그렇게 길지도 않아서 우리는 하루 종일 눈을 파헤치면서 놀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재호는 뭐하고 있었을까?

어둠에 잠긴 벤네비스 위로 별이 총총히 떠올랐다.

이재호의 벤네비스 훈련기

스코틀랜드 산악연맹의 호스트 10명, 영 연방과 각국에서 날아온 게스트 10명, 식사와 운영을 도와줄 분들 몇 명. 산 하나로 전 세계에서 25명 남짓의 사람이 모였다. 1997년부터 매년 개최된 국제 스코틀랜드 동계 등반대회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대회라곤 하지만 경쟁하거나 시상을 하는 건 아니다. 6일 동안 벤네비스Ben Nevis(영국 최고봉)에서 2인 1조로 등반을 진행한다. 스코틀랜드 산악연맹은 큰 틀만 지원할 뿐 세부적인 등반 및 일정은 각 조별로 구체화해서 등반한다. 또한 등반하는 6일 동안에는 여기서 차로 30분, 산길로 2시간을 들어가 해발고도 600m에 있는 산장hut에서 보낸다. 영국·폴란드·독일·이탈리아·싱가포르 그리고 한국, 다채로운 인종들이 설렘과 어색함을 안고 첫날밤을 보냈다.

아, 이 얼마나 그리던 어색함인가. 분명 참가비는 이 건강한 어색함도 포함된 가격일 것이다. 2년간 맡지 못했던 어색한 공기와 함께, 아직은 시차적응이 덜 된 몸으로, 여전히 알아듣기 힘든 스코티시 발음을 걱정하며, 나도 미지근한 잠에 들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1시. 아직 영혼의 반쯤은 한국에 있어 일어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간단하게 오트밀을 먹고 6일간 쓸 짐을 챙겨 우리가 머물 벤네비스 아래로 향했다. 조금은 무거운 짐을 지고 오랜만에 산을 오르려니 다리도 아프고 땀도 삐질삐질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는 눈치의 민족 아닌가! 여기서 멈추면 등반 시작도 전에 내 파트너 로버트 기디Robert Giddy에게 실망을 안겨줄까봐 이 악물고 버텼다. 그래서 한 번도 쉬지 않고 갔다.

벤네비스 첫 훈련으로 '센트럴걸리레프트 central gully left' 루트에 붙었다. 한국의 얼음과 달라 적응해야 했다.

도착하자마자 등반하라고?

2시간이 조금 넘는 산행을 통해 산장에 도착한 후 집 안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바로 짐을 정리하고 출발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그렇게 첫 등반이 시작됐다.

먼저 돌길을 20분 정도 오르고, 다시 70도 경사의 눈 덮인 사면을 40분 넘게 올랐다. 적어도 500m는 됐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설상 훈련도 겸하게 됐다. 크램폰을 신고 오르는 어프로치는 처음이라 굉장히 어색했다. 진짜 너무 숨이 차고 힘들었다.

어찌 첫 피치 하단에 도착했다. 벤네비스에는 단 하나의 볼트도 없다. 그러니 확보를 락 기어나 스크루로 해야만 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 생애 첫 해외 등반을 시작했다. 루트는 센트럴 걸리 레프트Central gully left(120m lll)였다. 후등이었고 세 피치로 나눠 갔다. 눈이 있는 구간은 바일과 크램폰이 잘 찍혔고, 루트 난이도가 쉬워서 전혀 힘들이지 않고 정상까지 올랐다.

벤네비스 정상.

스코틀랜드 얼음은 달랐다

신기한 건 한국 빙폭 등반과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은 바일 끝자락이 얼음에 끼듯 박히는 느낌인데 여긴 바일 날이 반 이상 쑥 들어가는 구간이 많았다. 눈이라 안정감이 떨어질까 했는데, 생각보다 버텨 주는 힘도 셌다.

하강은 그냥 클라이밍 다운이다. 눈 커니스도 생성되는 구간이라 경사가 좀 있다. 처음엔 로프를 사용할까 했는데, 로버트가 갈 만하다고 해서 그냥 갔다. 처음에는 떨어질까 봐 엄청 조심하면서 천천히 내려갔는데, 나중에는 그냥 무념무상으로 북한산 하산하듯이 쓱쓱 내려갔다.

두 번째 루트는 투스텝 코너Two Step Corner(140m). 여기선 하루에 루트 두 개를 등반하는 게 일반적인 것 같다.

1피치는 완경사의 빙폭이라 무리 없이 갔다. 근데 내가 트라이 캠을 빼지 못해 한 3분 정도 고전했다. 결국 뒤 따라오는 다른 조의 호스트가 빼주는 해프닝이 있었다. 안 써봤던 장비라 제거하기가 여간 까다로웠다.

2피치 구간은 거의 수직 빙폭 구간이 두 군데 나왔다. 그래도 수직 구간이 길지 않고, 로버트가 미리 길을 내주어 1피치보다는 어려웠지만 재밌게 오를 수 있었다. 약간 얼음 스탠스를 찾아 옆으로 돌아서 오르는 게 스릴 있었다.

다음 등반지로 이동 중 선등자의 확보를 받아 후등자가 등반하는 다른 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3피치였다. 정상 아래라 눈이 많아 오르기 쉬웠는데, 정상에 발을 딛기까지 딱 두 스텝이 위험했다. 오버행 눈 커니스가 바일을 고정시켜 주지 못했고, 아래는 눈이라 스크루도, 락 기어도 확보를 봐주기 어려웠다. 선등자는 45분 정도 소요하며 3군데를 찔러봤지만 오르기가 불가능했다. 결국 아래로 10m 다시 다운클라이밍해 믹스 루트로 올랐다. 믹스 구간이 조금 까다로웠는데 후등이라 자신 있게 올라봤다.

그렇게 정상에 두 번째 도착하니 오후 6시였고, 해가 지고 있었다. 결국 빠른 하산을 위해 60m를 하강하고 나머지는 걷기로 했다. 눈 경사는 어찌어찌 내려왔지만, 어두운 돌길에서는 몇 번씩 넘어졌다.

그렇게 다시 산장에 도착하니 오후 7시다. 준비해 준 스프를 먹고 짐을 정리했다. 이 스프는 등반이 끝날 때마다 먹었는데, 영국 전체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맛이다. 저녁은 구운 닭, 커리, 당근과 완두콩, 밥이었다. 동양인이 셋이나 있어 맞춰 준 것 같다. 장장 15시간 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이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정말 정신 없이 하루가 흘렀고, 나의 첫 스코틀랜드 등반도 그렇게 끝났다.

마지막 날 등반을 마치고 태극기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난이도는 숫자에 불과하다

똑같은 루틴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 알바트로스Albatros 루트를 하고 싶었는데, 힘든 어프로치를 1시간 걸려 가보니 이미 사람들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20분 더 올라가 숏 인더 풋Shot in the foot (50m V, 4)에 붙었다. 50m 코스인데도 선등자가 오르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와중에 골짜기 안으로 바람이 자꾸 불어 몸이 추웠다.

마침내 선등이 완료되어 뒤따라 얼음에 붙어봤다. 붙자마자 왜 1시간이 걸렸는지 알았다. 얼음이 너무 잘 깨지고 얼음 기둥을 따라 오른쪽 왼쪽으로 계속 밸런스를 옮겨야 했다. 모든 구간을 킥킹해서 가야 했고 밸런스가 잘 나오지 않아 선등자에게 큰 부담이었을 것 같다. 박혀 있는 스크루를 다 뽑아가며 정상에 오르니 로버트가 여기 난이도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오늘은 구름이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불투명한 비눗방울 속에 갇힌 느낌이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두둥실 떠오르는 감정이 들었다.

정상이 추워 후딱 내려가 인디케이트 라이트 핸드Indicate right hand(140m V5) 앞에 섰다. 1피치는 내가 선등을 섰다. 어렵지 않게 30m 정도를 올라갔다. 초반 15m 정도만 경사 있는 얼음 구간이고, 나머지는 많이 누워 있었다. 2피치는 로버트가 이어서 선등을 섰다. 30m 정도를 올랐는데, 기술적인 부분은 2피치가 많았던 것 같아 좀 아쉬웠다. 그리고 다시 3피치는 내가 선등을 섰다. 기술적인 부분은 초반에 트래버스 및 수직 구간이 전부였다. 이후 그 구간을 넘어가 경사진 눈 구간을 70m를 넘게 오르는데 돌과 얼음이 눈에 가려져 확보를 보기가 애매했다. 중간에 캠과 여러 기어들을 사용해 연등하는 식으로 올라갔고, 마지막 커니스를 트래버스해서 결국 정상에 올랐다.

벤네비스 정상석 앞에 선 등반 파트너 로버트.

날씨가 좋지 않아 준비해 간 점심을 빠르게 먹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로버트는 진짜 걷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 거의 3배 이상 빠른 것 같다. 나도 나름 빠르다 생각했는데, 현지인은 따라갈 수 없다.

산장에 도착해 와인을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미샤의 독일 이야기, 스콧의 캐나다 이야기 등 산에 대한 정보를 많이 공유했다. 와인 세 잔을 먹으니 조금 알딸딸해지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쏟아지는 별과 밝은 달에 비춰지는 벤네비스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냈다.

오늘 등반했던 인디케이트 라이트 핸드가 가이드북 상으로는 난이도가 높다. 근데 체감 상으로는 숏 인더 풋의 등반 난이도가 반 이상 높았던 것 같다. 이에 관해 묻자 동계등반 특성상 얼음과 눈은 매년 다르게 생성돼서 난이도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여기 등반가들은 난이도나 선등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다. 정말 등반을 있는 그대로 즐긴다. 서로 등반했던 곳을 물어보고 난이도가 높든 낮든 서로의 등반을 존중하고 즐겼으면 됐다는 마인드로 등반과 등반가들을 대한다.

그들의 태도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평소 누가 어느 곳을 등반했다고 하면 난이도는 몇이었는지, 선등을 했는지 등을 따져 묻고,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물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도 이러한 기준에 맞춰 루트를 골랐었다. 등반 자체를 오롯이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뒤꿈치 통증 올 정도로 열심히 등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오전 6시, 비몽사몽 빙벽화를 신었다. 근데 발이 심상치 않았다. 뒤꿈치 통증이 소름 돋게 올라왔다. 이 때문에 어프로치가 늦어졌는데, 마지막 날이니 꾹 참고 올라가긴 했다.

오늘 콤걸리라이트Comb gully right의 마지막 피치를 선등하기로 했는데 아래 두 피치를 올라보니 숨도 너무 차고 발도 잘 디디지 못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리딩을 포기했다. 수직구간 및 트래버스 10m만 올라가면 큰 어려움은 없었다. 세 피치에 나눠 올랐고, 마지막 피치는 어렵지 않아 연등으로 올랐다.

오늘은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사진만 간단히 찍고 내려갔다. 어차피 오늘은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날이라 오전 등반만 가능했다. 내려가는 내내 뒤꿈치에서 고통이 느껴졌고 거의 눈물을 훔치며 내려갔다.

마지막 스프를 먹고 가져온 짐을 모두 챙겼다. 매일 딱딱한 빙벽화만 신다가 등산화를 신으니 너무 편했다. 후다닥 2시간 내려가 글래스고로 넘어가니 위스키 파티를 한다고 했다. 위스키 5병이 준비돼 있었고 스코틀랜드 전통음식인 해기스가 나왔다.

위스키를 한 모금씩 맛보다 보니 어느새 취해 버렸다. 그 상태로 발표 시간을 맞아 한국 산에 대한 소개를 했다. 인수봉과 선인봉, 설악산을 소개했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한국 산에 대한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보여 줬다. 그리고 다시 먹고, 먹고, 먹다 지쳐서 먼저 잠에 들었다.

이번 등반은 산을 뛰어 넘어,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경험을 했다. 낯선 곳에서 며칠을 살아가려니 처음엔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나의 주제로 모인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일주일이란 시간 전부를 한 주제에 쏟아 붓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느 것이든 몰두하는 사람들은 매력적이다.

정상 케른을 활용해 확보했다.

"히말라야 갈 거냐" 묻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월간山 3월호 기사를 읽고 많은 분들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개중에 꽤 많이 들은 이야기가 있다.

"히말라야에 가려고?"

뭐, 이 질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고산등반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식을 대변하는 말 같아 아쉽다. 히말라야의 유명한 높은 산들을 가는 것이 고산등반의 최종 목적이라는 인식 말이다.

물론 히말라야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 있는 곳이기에 고산등반에 있어 최종 보스 같은 존재는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고산등반가들의 최종 목적이 히말라야란 법은 없다. 어찌 보면 이것도 한국 산악계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등정주의에서 비롯된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인식을 타파한다거나 그런 건 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그럴 만한 실력도 안 된다. 다만 꼭 고산등반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름을 남기고 말겠다는 필사적인 공명의 수단 같은 건 아니라는 건 알리고 싶다. 사표 쓰는 회사원, 대학원생, 대학생 같이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도 머리 싸매고 준비해서 즐겁게 갈 수 있는, 해외여행 같은 활동일 수도 있다는 정도의 느긋한 시각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무엇보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필사적이지 않다. 헤헤. 필사적이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으면 만족!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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