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해요 2만원만…” 벼랑끝 전세사기 피해자 죽음 내몰린 삶
‘인천건축왕’ 피해자 잇단 극단선택
대책위 “정부, 실질적 방안 마련해야”
30대 女, 새벽부터 일하며 수습 안간힘
숨지기 전날에도 출근… 안타까움 더해
유서엔 삶 포기한 심경 고스란히 담겨
20대 男 “엄마, 2만원만…” 마지막 전화
“대책 굉장히 실망” 정부 향한 원망 남겨
조사 결과, 그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경찰에 앞서 신고를 접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당초 2019년 9월 보증금 7200만원을 주고 전세로 들어갔지만 이후 2021년 9월 임대인의 요구로 9000만원에 재계약했다. 그러나 거주하던 아파트는 전세사기 피해로 인해 지난해 6월 전체 60세대가량이 통째 경매에 넘어갔다.
그는 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하는 상태로 이 사실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대책위 측은 전했다. 아파트가 2017년 준공돼 전세보증금이 8000만원 이하여야 그나마 최우선변제금 2700만원을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해당되지 않았다. 평소 새벽에 일을 나가 밤늦게 귀가하는 등 힘든 시기를 겪는 중에도 백방으로 구제를 받으려 한 것으로 전해진 이 여성은 실제 숨지기 전날까지도 출근해 주위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앞서 피해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주검이 된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정부를 원망하며, 대책이 실망스럽다고 한탄했다. 정부가 정한 보증금 상한선에 불과 1000만원이 넘는다는 이유로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거리로 쫓겨나지 않으려 긴급주거지를 물색했지만, 현행 6개월에서 3번만 연장이 가능하다. 이마저도 언제·어떤 처지가 될지 불안함이 감돌 뿐이다.
“엄마 2만원만 보내주세요. 그렇게 급하지는 않으니 편할 때 입금 바랄게요.”
지난 9일 인천 20대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어머니. 평소 살갑게 대하던 자식이 고작 2만원이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쉽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던 그였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들리지 않았지만 “미안해요”라며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것만 같았다는 게 엄마의 생각이다. 그게 모자의 마지막 대화였다. 같은 달 14일 오후 8시쯤 미추홀구 숭의동 한 연립주택에서 20대 남성이 숨졌다. 사건 현장에서 극단적 선택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이 나왔다.
유족들에 따르면, 가정 형편이 녹록지 않았던 그는 고등학교를 나온 뒤 곧바로 취업했다. 인천 남동산업단지 등지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다. 그렇게 마련한 둥지가 숨을 거둔 공간이 됐다. 2019년에 6800만원을 내고 들어간 집이었지만 2021년 8월 재계약 때는 임대인의 요구로 전세금을 9000만원으로 올려줬다. 최근까지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사기를 당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임의경매에 넘어간 주택은 2019년에 1억8000만원이 넘는 근저당이 설정된 터였다. 주택 낙찰자가 나오더라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최우선변제금 3400만원 외 나머지는 받기 어려웠다. 오는 여름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 대출도 상환해야 했다. 막막했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2월 28일 오후 5시40분쯤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30대 남성의 육성 같은 글이다. 그가 생전에 휴대전화에 메모 형태로 남긴 유서에는 하루하루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을 상황이 전해진다. 휴대전화 기록상 유서는 26일쯤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숨지기 이틀 전으로, 생을 마감할 때를 기약했던 셈이다.
청춘이었던 그의 삶이 한순간에 바뀐 것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택 근저당권이 설정된 전세금은 7000만원이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소액임차인은 전셋집이 경매 등에 넘어갔을 때 최우선으로 일정 금액의 변제금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이 기준인 6500만원을 훌쩍 넘어섰고, 고스란히 모든 재산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살던 빌라는 임의경매(담보권 실행 경매)로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은행에 대출 연장을 확인했으나 결국 거절당했다. 최근 직장까지 잃으면서 구직활동을 하던 그였다.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했던 30대 젊은이는 그렇게 삶의 끈을 놨다. ‘(전세 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정부를 향한 원망을 현장에 남긴 그의 싸늘한 시신은 가족에게 인계됐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정부 대책이 당면한 문제를 유예하는 방안에 불과하다며 18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를 출범키로 했다. 이들은 국토교통부·법무부·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전담팀(TF) 구성, 전세사기 주택 경매 일시 중지, 선지원 후 전세 사기범에게 구상권 청구 등의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피해대책위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다음 전셋집을 구해야만 받을 수 있는 저금리 대출의 조건과 용도를 완화해야 한다"며 "지금은 경매에 집이 매각된 피해자들도 뾰족한 수 없이 퇴거만 기다리는 세대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두 달 사이 인천에서 숨진 20∼30대 청년 3명은 수도 요금조차 내지 못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인천 건축왕’으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죽음이 계속되면서 강력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축왕’으로 불리던 건축업자와 공인중개사·중개보조원 공범은 지난해 1∼7월 미추홀구 일대에서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1채의 전세보증금 125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인천=강승훈 기자 s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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