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교수 자리 내놓고 노숙인에 15년 '인술' 신완식 前병원장

이세원 2023. 4. 1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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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원이 필요 없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노숙자를 무상 진료하는 요셉의원을 이끌다 퇴임한 신완식(73) 전 병원장에게 노숙인 지원 시스템에 관한 의견을 묻자 이렇게 소망을 말했다.

가톨릭대 의대 교수 자리를 미련 없이 내려놓고 15년간 노숙인을 위해 헌신하다 지난달 퇴임한 신 전 병원장은 기자가 요셉의원을 찾아간 12일에도 봉사자의 한명으로서 변함없이 인술을 베풀고 있었다.

그런 게 잘 갖춰줘서 요셉의원이 필요 없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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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원 필요 없는 날이 오길…몸 움직이는 한 계속 의료 봉사"
"노숙인도 누군가의 가족"…코로나19 위험 무릅쓰고 대면 진료하기도
신완식 전 병원장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신완식 전 요셉의원 병원장이 12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요셉의원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4.17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요셉의원이 필요 없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노숙자를 무상 진료하는 요셉의원을 이끌다 퇴임한 신완식(73) 전 병원장에게 노숙인 지원 시스템에 관한 의견을 묻자 이렇게 소망을 말했다.

가톨릭대 의대 교수 자리를 미련 없이 내려놓고 15년간 노숙인을 위해 헌신하다 지난달 퇴임한 신 전 병원장은 기자가 요셉의원을 찾아간 12일에도 봉사자의 한명으로서 변함없이 인술을 베풀고 있었다.

요셉의원은 '영등포의 슈바이처'로 불린 선우경식(1945∼2008) 원장이 1987년 8월 빈민촌 중 한 곳인 서울 관악구 신림 1동에 개원하면서 시작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병원이다. 1997년 쪽방촌 밀집 지역인 서울 영등포역 인근으로 이전했다.

내과, 안과 이비인후과, 재활정형외과, 치과, 정신건강의학과 등의 진료과목을 개설해 노숙인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으며 음악치료나 단주(斷酒)모임 등 노숙인의 재기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개원 초기부터 현재까지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민간 후원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포기하고 택한 길이지만 처음에는 순탄하지 않았다. 노숙인 몸에 생긴 병을 치료하기 전에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먼저였다고 신 전 병원장은 회고했다.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계속 의료 봉사를 하겠다고 했다.

다음은 신 전 병원장과의 문답.

노숙인 무료로 치료하는 요셉의원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노숙인 진료 시설 요셉의원의 12일 모습.

-- 요셉의원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 가톨릭의대 감염 내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조기 명예퇴직 후 요셉의원에서 15년째 병원장(의무원장)으로 봉사하다가 올해 3월에 퇴임했다. 2008년 4월 18일 (요셉의원 창립자인) 선우경식(1945∼2008) 선생님께서 선종하셨다. 당시 중앙의료원장인 최영식 신부님이 요셉의원에서 봉사하는 게 좋겠다고 천거해주셨다. 정년을 6년 남긴 2009년 2월 말 교수직에서 퇴직하고 같은 해 3월 요셉의원에 왔다.

-- 정년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는데 교수직을 포기한 이유가 있는지.

▲ 선배 중 감염내과 과장이시던 정희영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그분이 은퇴한 다음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너무 나이가 들어서 시작하는 경우 잘못하면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봉사하는 것도 때가 있구나'라고 느끼고 조기 은퇴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 정년퇴직 전에 봉사를 시작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우경식 원장께서 돌아가시면서 계기가 찾아온 것인가.

▲ 갑자기 콜링(신의 부름)을 하신 것이다. '소명을 다해라'는 콜링이 왔을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해야지. 콜링이 와도 휴대전화를 안 가지고 다니면 소용이 없다. (웃음)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그때 내가 딱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하는 신완식 전 병원장 촬영 류효림 기자

-- 그간 요셉의원에서의 활동을 돌아보면 어떤 기억이 있는지.

▲ 처음에는 교수 생활만 했지, 이런 쪽을 잘 몰라서 여러 가지가 힘들었다. 선우 원장이 돌아가시고 (내가 올 때까지) 요셉의원에 한 일 년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힘들었다.

-- 어떤 부분이 특히 어려웠는지.

▲ 당시 환자 중에는 '요셉의원이 국가 돈 받아서 운영되는 데가 아니냐?', '너희들이 우리 아니면 굶어 죽는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이 있을 정도였다. 환자들은 '선우경식 선생님은 알지만, 신완식이라는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당뇨 환자에게 변화가 있어서 약을 조금 더 드셔야 하고 혈압 조절이 안 되니까 다른 약을 추가하겠다고 얘기를 하면 '선우경식 선생님이 주시던 약 먹고 여태까지 잘 살아왔으니까 그냥 그대로 똑같이 약을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환자와의 소통이 잘 안되니까 굉장히 힘들었다. 그러다가 환자들의 입장에 서서 병에 관해 여러 가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고 차츰차츰 소통하니 그분들도 마음을 열었다.

-- 이야기를 들어 보니 대학병원 교수직도 버리고 봉사하러 왔는데 노숙인들에게 나를 믿어달라고 호소하는 처지가 된 것 같다.

▲ 정진석 추기경님께 요셉의원에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교수로 계실 적에는 학구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만 (요셉의원에) 가시게 되면 전인적인 치료를 해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 왔는데 전인적인 치료라는 게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와서 처음 알았다.

--기억에 남는 환자 이야기를 들려달라.

▲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오셨는데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나서 (의원 1층에 있는 목욕실에서) 목욕하고 오시면 진료 잘해드리고 좋은 약으로 골라서 드리겠다고 했다. 그 할머니는 '약이나 주지 무슨 의사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라고 투덜거리며 내려가서 목욕하고 왔다. 그러고 나서 기분 좋게 진료받고 가셨다. 그다음에 다시 오셨을 때는 머리에 핀을 꽂고 있었다. 그러면서 '선생님 저 예뻐요'라고 물었다.

미소짓는 신완식 전 병원장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소재 요셉의원에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마친 신완식 전 병원장이 평소 진료 봉사 때 입는 조끼로 갈아 입고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이날 인터뷰를 위해 병원장 시절 입던 흰색 가운을 착용했지만 평소에는 눈에 잘 띄는 이런 조끼를 입는다. 노숙자를 위해 거리에서 봉사하는 이들이 입는 것과 비슷한 복장이다.

-- 그분 마음의 변화가 드러난 것인지.

▲ 그렇다. 환자에게 진심으로 대해주면 그 사람도 우리에게 표현하는 것 같다. 어떤 환자는 복권에 적은 금액이 당첨됐다면서 진료실 문틈에 돈이 든 편지를 놓고 갔다. '선생님들이 노력하시는 것을 보고 (나도) 뭔가 하고 싶었어요. 빚이 있어서 갚고 나머지 돈을 여기 놓고 갑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 '선생님이 이거 드세요'라고 하면서 초콜릿 하나, 사탕 한 개 놓고 가면서 나를 쳐다보는 분들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눈물 나는 촌지가 아닌가. 한번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서 구순구개열 환자를 수술해줬다. 그분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이 발성하면 소리가 난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사탕을 한 움큼 사 와서 요셉의원 1∼3층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내가 이렇게 소리가 난다'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 환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 말고 또 힘들었던 일이 있었는지.

▲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굉장히 힘들었다. 요셉의원은 후원자와 봉사자 양축으로 움직인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의료 봉사자는 물론이고 일반 봉사자들도 요셉 의원에 나올 수가 없었다. 후원자도 조금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다른 의료기관은) 비대면 진료를 많이 했는데 (여기 오는) 환자들은 검사도 하고 혈압 변화를 살펴보는 등 추적 관리가 필요했다.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분도 있고 자기 의견을 제대로 표현 못 하는 분도 많아서 (비대면 진료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때 함께 봉사하던 어떤 분(의사)이 우리 둘이 대면 진료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대면 진료를 하면서 요셉의원을 끌고 나갔다.

-- 당시는 코로나19가 정말 두려운 시절이었을 것 같은데.

▲ 무서울 때였다. 하지만 '우리가 코로나19 걸리면 환자들을 진료 못 하게 되니 주님께서 알아서 하세요'하는 마음으로 했다. 요셉의원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4분의 3 정도는 코로나19에 걸렸는데 (대면 진료를 제안한) 그분과 나는 한 번도 안 걸리고 꿋꿋하게 버텼다.

요셉의원 창립자 고(故) 선우경식 [요셉의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노숙인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얘기해달라.

▲ 노숙인이라고 하면 흔히 거리에서 술에 취해 졸고 있는 거리 노숙인을 주로 생각하지만, 노숙인복지법을 보면 쉼터와 같은 시설에서 살고 있는 시설 노숙인, 쪽방이나 고시원 등 열악한 환경의 노숙인들도 모두 포함한다. 노숙인들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마음에 두꺼운 갑옷을 입은 환자들이다. 여러 가지 실패로 집·돈·건강을 잃었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그리운 외롭고 가난한 누군가의 가족이다. 이들을 사회 부적응자나 갱생의 대상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이웃으로 바라보는 성숙한 시각이 필요하다. 오랜 노숙 생활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당뇨병, 고혈압, 골관절증 등 만성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다. 피폐화되어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다수는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편견과 차별로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 사회의 노숙인 돌봄이나 자활 지원 시스템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처음 여기 올 때만 해도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지금은 쪽방촌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다. 이제 여기 처음 오는 분이 아닌 이상 주민증이 없는 분도 많지 않다.

사회적으로는 많이 발전한 것 같지만 다른 한쪽을 보면 사회 계층이 고착되고 있다. 불평등이 옛날보다 심화했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느냐.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면서 양극화가 더 심해진 것 같다. 게다가 마음이 우울해지는 '코로나 블루' 시대다. 심리 방역도 중요해지고 있다. 노숙인이 되기 직전의 계층을 보살피는 새로운 프로그램, 안전망이 필요하다. 그런 게 잘 갖춰줘서 요셉의원이 필요 없는 날이 오면 좋겠다.

활짝 웃는 신완식 전 원장 촬영 류효림 기자

-- 의사라는 직업이 베풀기보다는 출세나 축재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세태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 학생들이 방학 때 봉사하겠다고 가끔 여기 온다. 나는 그들에게 '왜 의사가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가. 그런 의사가 된다면 그것은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으라고 말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보면 의사로서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베풀고 사랑했는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 인공지능 시대를 거치면서 상대에 대한 배려와 협력·상생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 근황을 알려달라.

▲ 이제 새로운 병원장님이 오셨고 나는 그냥 의료 봉사자다. 월요일과 수요일 일주일에 두 번 요셉의원에 나와서 봉사한다. 몸이 움직일 수 있는 한 계속하려고 한다.

-- 최근에 조금 편찮으셨다고 들었다는데.

▲ 요새 목 디스크가 생겼다. 최근에 감기로 2주 정도 고생했고 식중독까지 걸려서 한동안 힘들었다. 한 5년 전에는 식도암이 걸려서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좋아졌다. 그때는 한두 달 쉬고 또 진료했다.

신완식 전 병원장 촬영 류효림 기자

-- 너무 몸을 돌보지 않고 봉사한 것 아닌가.

▲ 어떤 분들은 너무 그러지 말고 좀 쉬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고생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빨리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나 스스로 마음에 채찍질하는 느낌이 있다.

-- 요셉 의원에 안 오는 나머지 닷새는 무슨 일을 하는가.

▲ 백수가 엄청 바쁘다. (웃음)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아이들도 찾아오고 한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낸 게 (최근에 아파서 쉬는 동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교수 시절에도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그렇게 쉬어봤는데 정말 좋았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자원봉사를 경험한 사람들은 '실제로 와서 해보니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았다', '내가 행복했기 때문에 봉사하는 삶이 즐겁다'고 흔히 얘기한다. 행복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오직 자기 자신만이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봉사하려면 체력, 시간적 여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건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들은 모두 갖추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간에 변수가 생기면 지연된다. 우선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나눔은 혼자 하면 힘들고 어렵지만, 여럿이 함께 하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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