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 반일? 우린 그런거 몰라”...韓드라마 잘 나가고 日애니 흥행가도
‘일타 스캔들’도 20일 동안 또 1위
‘길복순’ 일본 시청자 팬 사로잡아
슬램덩크 등 극장가서 큰 인기끌어
어디선가 들어본 말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이 말은 “화이팅 박연진, 브라보! 연진이 멋지다!”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의 문동은(송혜교)의 일본어 더빙판 대사다.
일본 넷플릭스 구독자 상당수는 ‘더 글로리’ 1ㆍ2부가 공개된 뒤 일본인 성우가 녹음한 문동은의 대사를 기억한다. 동은과 연진의 ‘살이 타고, 피가 튀는’ 누아르 복수극에 일본인들도 매료된 것.
이뿐이 아니다. 14일 글로벌 OTT 순위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전날 기준 일본 넷플릭스 시리즈물 상위 10개 작품 중 6개 작품이 포진했고, 전도연 주연의 영화 ‘길복순’은 4월 2일 1위에 오른 뒤 13일까지 일본 넷플릭스 영화 순위 1위 자리를 하루도 내주지 않고 있다.
반면 올해 1분기 한국 극장가에선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초유의 돌풍을 일으켰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누적관객수는 446만명, ‘스즈메의 문단속’은 444만명(13일 기준)을 넘어서며 일본 영화의 한국 극장 점유율이 30%를 넘어섰다.
가토 씨는 “스토리가 중간에 멈추고 2부에서 뒷이야기가 이어지는 드라마 형식은 일본에도 없기에 흥미로웠다. 기다리는 시간이 굉장히 초조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은숙 작가는 전반부에 뿌려놓은 복선을 모두 회수하는 치밀함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도쿄 시부야에 사는 42세 직장인 미야자키 타카 씨는 지난 2월부터 3월 초까지 전도연ㆍ정경호 주연의 ‘일타 스캔들’을 보는 재미에 살았다.
‘더 글로리’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기 전 공백 기간인 2월 20일부터 3월 9일까지 일본 넷플릭스 1위는 한국 드라마 ‘일타 스캔들’이었다.
미야자키 씨는 “일타 강사 최치열 쌤은 일본에서도 반가운 이름이다. 한국 드라마가 유행하면 빼놓지 않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넷플릭스 시리즈 2위는 장기용ㆍ혜리 주연 ‘간 떨어지는 동거’, 4위는 조승우ㆍ한혜진 주연 ‘신성한 이혼’ , 5위는 ‘더 글로리’, 6위는 신하균ㆍ여진구 주연 ‘괴물’, 7위는 김수현ㆍ차승원 주연의 ‘어느 날’이 올라와 있다.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현재 3위)을 제외하면 1~7위가 전부 한국 작품이다.
‘길복순’은 공개 직후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권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다가 지난 7일과 8일을 기점으로 2~3위로 하락전환(인도네시아, 홍콩, 필리핀 등)했다. 하지만 ‘길복순’은 일본에선 여전히 1위다.
조규헌 상명대 한일문화콘텐츠전공 교수는 “한국 드라마 위상이 높아진 데다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더 많은 일본 시청자가 한국 드라마로 유입될 환경이 조성됐다”며 “한국에 대해 호불호가 불명확했던 일본 시청자도 표준화된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콘텐츠를 시청하고 더 흔쾌히 받아들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즈메ㆍ슬램덩크 ‘나란히 400만’
그러나 이 분석은 오판으로 판명됐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거대한 열기에 이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극장가를 점령하다시피 해서다.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을 한국시장에 들여온 수입사 미디어캐슬의 강상욱 대표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표면적으로는 동일본 대지진 상처를 다뤘지만, 일본인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인류가 공통적으로 겪기 마련인 재난의 함의를 다뤘다는 점에서 한국 팬들에게도 너른 공감을 얻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토 스즈메라는 여학생과 무나카타 소타라는 20대 남성이 재난이 틈입하는 폐허의 문(門)을 닫기 위해 필사의 사투를 그리는 여정을 담았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최근 3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9년 ‘아바타’ 1편(43일간 1위) 이후 최장 기록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번 주말 ‘더 퍼스트 슬램덩크’ 누적관객수를 넘어설 것이 확실하다.
일본 영화의 흥행 이면에선, 올해 들어 한국 영화가 유독 힘을 쓰지 못한 점도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한국영화가 너무 안일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점도 올해 1분기 일본 영화 흥행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 잘 나갈 때 유사한 영화들을 반복 재생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일 영상 콘텐츠의 우열을 뒤로 하더라도, 일본 관객이 한국 콘텐츠에, 또 한국 관객은 일본 콘텐츠에 호감을 느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노(No)재팬’ 열기가 식지 않았던 2021년부터 이런 흐름이 가시화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3월 발표한 ‘한일 영화산업 수출입액 동향’에 따르면 2019년 400만달러 후반대였던 양국 영화 수출입액은 2021년 600만달러 후반으로 증가했다. 최근 수출입액은 더 늘어나 1000만달러 육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적 관계 무관하게 교류 활발
이어 그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한국영화가 OTT로 직행하거나 이전과 달리 개봉 몇 주 만에 OTT에서 시청 가능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는 데 더 신중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상욱 대표도 “일본 영화 흥행 현상을 한일 간 정치적 관계와 연관 짓고 싶진 않다. 그저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일본 작품이 한꺼번에 몰린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 “작년 말 미디어캐슬이 수입한 일본 영화 ‘오늘밤 세계에서 이 세상이 사라진다 해도(이하 오세이사)’도 관객수 110만명을 돌파했는데, 개봉 전에 ‘오세이사’ 책 판매량만 40만부였다. 매력적인 작품엔 국경이 없다”고 강조했다.
‘괴물’을 한국에 수입한 강상욱 미디어캐슬 대표는 “일본 영화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 더 지속될 것으로 예측한다”고 덧붙였다.
조규헌 교수는 “미국의 대중문화가 하나의 보편적인 대중문화로 자리잡았듯이, 한국문화 콘텐츠도 ‘한국 콘텐츠’라는 국적을 넘어 세계인의 보편성을 획득했다”며 “한류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세계인 일상 자체에서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됐다. 이제 ‘탈(脫)한류’가 한류의 정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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