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마음 내려놓으시려거든, 여주

박찬은 2023. 4. 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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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여강길 치유 여행
‘여강(驪江)’은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을 말한다. 이제 막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 남한강변을 거닐어 본다. 이제 막 마른 가지에서 연둣빛 잎을 내밀고, 성급한 꽃망울이 기지개를 펴는 이 계절의 자연도 설렘을 가득 담아 눈부신 풍경을 만들어 낸다. 역시나 몸보다 마음이 먼저 길을 떠난다. 그 길에 강이 흐른다. 남한강이 흐르는 여주는 따사로운 봄날의 여행지로 그만이다. 그런 날,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생동하는 자연 속을 소요하다 보면 걸음마다 가슴에 풍경이 담긴다. 이제까지 알던 왕의 고향, 그 유장한 이야기 대신 넉넉한 여유와 힐링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다.
파사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이포보

강천섬, 쉼이 필요할 땐 여기

‘여강(驪江)’은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을 말한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청정한 여주의 자연, 보물 같은 풍경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여주 사람들은 남한강을 ‘여강’으로 부를 만큼 강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여강길은 전체 118.8km로 남한강을 가운데 두고 여주시 전역을 두루 거친다. 전체 11개 코스에 두 개의 작은 코스가 덧붙여졌다. 강천섬을 걷는 길은 ‘여강길 3-1코스’다. 출발지인 강천마을에서 강천리교를 지나 강천섬을 한 바퀴 돈 후 다시 강천마을로 돌아오는 5.5km의 원점 회귀 코스다. 강천리교 너머 동서로 길게 누운 강천섬이 보인다. 여주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강천섬은 본래 섬이 아니었다. 강물이 불어날 때만 섬으로 변했던 이곳은 4대강 사업으로 남한강의 물길이 바뀌면서 진짜 섬이 되었다. 그런데 규모가 제법 크다. 전체 면적이 축구장 80개 정도를 합쳐놓은 크기다. 남한강 위에 떠있는 섬인 만큼 강변의 경관이 수려하고, 섬 전체가 마치 수목원을 꾸며놓은 듯 걷기도 또 둘러보기도 좋게 잘 정리돼 있다.
강천섬은 여강길 3-1코스에 속한다.

멸종 위기인 단양쑥부쟁이가 자생하고 있다는 강천섬엔 지금 목련이 한창이다. 이제 곧 신록으로 단장할 나무들은 부지런히 푸른 잎을 피워내고 있다. 가을이면 수줍게 피어날 단양쑥부쟁이 서식지 두 군데도 강변에 위치해 있다. 섬의 한 가운데에는 드넓은 잔디광장이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론 환상적인 가을 풍경을 만들어내는 은행나무길이 곧게 뻗어 있다. 강천리교를 지나면 여강길 3-1 코스를 안내하는 작은 삼거리가 나오는데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라 어느 쪽으로 걸어도 상관없다. 오른쪽 길로 들어서 잠시 걷다보면 강천섬의 특별한 풍경이 된 고사목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강천섬의 생태계를 이루던 느티나무 등 일부 수목이 환경적 요인으로 고사된 것이다. 또 다른 생명들에게 보금자리를 내주고 마지막까지 특유의 경관을 선물하는 수목의 삶에 경외감이 드는 순간이다.
백패킹 성지였던 강천섬은 이제 취사가 불가능하다.

강천섬에서의 시간은 느릿느릿하다. 백패킹의 성지였던 강천섬은 지난 2021년 초부터 숙박 야영과 취사, 낚시 행위가 금지됐다. 일부 이용객들의 무분별한 불법 행위와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덕분에 강천섬은 조용하고 깨끗한 여행자들의 쉼터가 됐다. 언제나 찾아와 편안히 쉬다 갈 수 있는 공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 바로 강천섬이다. 남한강과 강천섬이 건네는 휴식이 감미롭기만 하다.

수수한 멋의 강변 사찰 신륵사

강천섬을 나와 여강길 3코스 ‘바위늪구비길’을 따라 걸으면 천년고찰 신륵사에 닿는다. 이번 여행의 의미가 여주에 깃든 역사와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이 아님에도 굳이 신륵사를 찾아간 것은 여강길 가운데 명품 코스로 불리는 바위늪구비길, 그 끝에 신륵사가 자리하고 있어서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강가에 위치한 신륵사는 7세기 초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고려 우왕 2년(1376)에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입적하면서 유명해졌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 영릉의 원찰이었으며,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어 풍광도 좋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일품이다. 신륵사 국민관광지라 칭하는 초입의 번잡함도 잠시, 템플스테이로 쓰이는 단아한 한옥 몇 채가 먼저 여행자를 반긴다. 거기서부터는 사찰 특유의 고요함이 다가온다.

거대한 성문 같은 불이문을 지나면 나이가 몇 백 년은 족히 넘었을 거대한 은행나무와 참나무가 멀리 보이고 그 옆으로 한옥마을 같은 모양새의 신륵사 전각들이 모여 있다. 명성에 비해 수수한 사찰이다. 신륵사는 지금 한창 보수공사 중이다. 대웅전 앞 구룡루의 색 바랜 단청과 새로 덧댄 누마루의 색감이 생경하다. 구룡루 뒤편 극락보전과 그 안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변함없이 단아한 자태다. 극락보전 앞에 서있는 보물 제225호 다층석탑은 서둘러 매달아놓은 연등에 어깨를 내준 채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고요한 경내를 돌아보고 난 다음 정자 강월헌으로 발길을 옮긴다.
(좌로부터 시계방향)나옹선사의 다비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삼층석탑, 극락보전, 대장각기비의 비문

남한강변 가파른 바위 위에 세워져 있는 ‘강월헌’ 정자에 오르면 남한강변의 아름다운 정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강 건너에는 누런 돛을 달고 여강을 오가던 황포돛배를 재현한 유람선 ‘세종대왕호’가 보인다. 이 배를 타면 신륵사 강월헌을 지나 반대편에 있는 영월루, 여주를 지켜준다는 칼바위와 마암, 여주대교 등을 30분 정도 유람하는데 신록이 우거진 강변 풍경이 아름답다. 강월헌 옆에는 나옹화상의 다비를 기념하여 세운 3층석탑이 오래 풍상에 쓸려 노회한 모습으로 바위 위에 서있다. 그 아래로 흐르는 남한강 물줄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여행자들이 많다. 뜻밖의 인증샷 명소가 된 곳이다.
(좌로부터 시계방향)신륵사 보호수, 황포돛배 세종대왕호, 신륵사 다층전탑, 소박하고 수수한 신륵사 도량

강월헌과 삼층석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보물 제226호인 신륵사 다층전탑이 우뚝 서 있다. 높이가 9.4m나 되는 특이한 모양의 이 탑은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유일한 전탑으로 알려져 있다. 전탑이란 벽돌을 구워 탑을 쌓은 것으로, 이 탑이 있는 신륵사를 예로부터 벽절(甓寺)로 부르기도 했다.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또 하나의 보물인 대장각기비(제230호)가 있다. 대장각기비는 고려말 충신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기 위해 나옹화상의 제자들과 함께 고려대장경을 새기고 2층의 대장각을 세워 봉안한 것이다. 비석은 낡고 파손돼 전체 비문을 헤아릴 수 없지만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신륵사를 돌아 나오는 순간 문득 풍경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어느 전각에 매달린 풍경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울림이 깊다. 여주8경의 제1경이 ‘신륵모종(神勒暮鍾)’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륵사에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가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를 가늠할 수 있는 말이다. 자그마한 풍경이 대신한 ‘신륵모종’의 자비를 안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남한강을 굽어보는 역사의 흔적, 파사성

다른 건 몰라도 여강길 8코스 ‘파사성길’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파사성은 꼭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고 여주 여행을 계획하는 이가 있다면 꼭 권해주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꼭 파사성길 전부를 걷지 않아도, 파사성 정상까지 만이라도 다녀오길 바란다. 아마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여주의 색다른 매력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파사성은 남한강 동쪽에 있는 파사산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삼국시대의 석축 산성으로 그 둘레가 936m에 이르고, 성벽의 높이가 최고 6.25m에서 낮은 곳은 1.4m 정도 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25년(1592)에 서애 유성룡의 발의에 따라 승병장 의엄이 승군을 동원해 쌓았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아 있다. 성의 일부가 강 언덕 돌출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남한강의 상하류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해발 230.4m 파사산 정상 부근에 있는 파사성까지 가는 길은 가파른 산길이지만 걷는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아 힘들 건 없다. 성의 입구 격인 남문터까지만 올라가면 성곽을 끼고 정상까지 가는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비교적 무난하다. ‘파사과우(婆娑過雨)’라 하여 파사성에 여름철 소나기 스치는 광경이 여주팔경의 하나로 꼽히지만 신록이 물들기 시작하고 봄꽃이 피어나는 이맘때의 풍경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파사성 보도현수교에서 20여 분 정도 산길을 오르면 둥그렇게 이어진 산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문터로 들어오면 왼쪽으로 넓은 폭의 석축이 산 정상을 향해 부드럽게 뻗어 있고 그 아래로는 ‘S’자로 굽어진 남한강 물줄기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이포보의 모습도 보인다.
파사성과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에 새겨진 부처의 모습

남문터에서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남문터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남한강의 풍경이 잠시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니 걷다가 잠깐씩 뒤를 돌아보는 맛이 제대로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이며 여주 일대의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아래 남문터까지 이어진 석축은 한 폭의 산수화처럼 수려한 모습이다. 정상까지 올라갔다면 양평 쪽 산 중턱에 있는 마애여래입상과 마애약수까지 다녀와도 좋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양평이지만 파사산 정상에서 10분만 내려가면 만난다.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은 커다란 바위벽에 새긴 불상으로, 바위의 앞면을 깎아서 선으로 새겨 조각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서있는 부처의 모습으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고 사각형의 굳은 얼굴과 길쭉한 돌기둥 형태의 신체, 각이 진 팔꿈치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의 불상으로 추측된다. 마애여래입상 바로 옆에는 마애불 감로수가 불리는 마애약수가 있다.

여강길 핫플레이스

목아박물관

1. 목아박물관
여강길 3코스 바위늪구비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동양 최초의 불교박물관으로 1993년에 개관한 유서 깊은 문화공간이다. 무형문화재 108호인 목아 박찬수 선생이 만든 사립 박물관이지만 여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박물관 이름인 ‘목아’는 나무의 눈이라는 뜻. 죽은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다. 이곳에는 박찬수 선생이 직접 수집한 6000여 점의 불교 관련 유물 및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된 전시관에는 불상과 불화 등의 불교 유물과 함께 동자상을 비롯한 목공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야외 조각공원에는 미륵삼존대불, 비로자나불, 백의관음, 자모관음상 등의 불상과 삼층석탑 등 유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 소장품 중에는 3점의 보물도 있고, 그밖에 수많은 불교 유물들이 있어 매년 기획전과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천서리 막국수촌

2. 천서리막국수촌
파사성 자락에 위치한 천서리 막국수촌은 고기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어 만든 육수로 유명한 곳이다. 과거 고기육수는 꿩고기로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지금은 각각의 막국수집 특유의 비법으로 만든 육수를 사용한다. 쫄깃한 메밀이 어우러진 동치미막국수와 칼칼한 맛의 비빔막국수가 일품인 곳이다. 천서리 막국수촌의 빅2로 알려진 홍원막국수와 강계봉진막국수는 40~50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막국수의 ‘제 맛’을 내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인에게 인기 있는 천서리막국수와 봉진막국수도 여주 막국수 맛집으로 통한다.
천서리 막국수촌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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