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성수기 앞두고 다 타버렸다···하루아침에 빈털터리”

산불로 터전 잃은 강릉 펜션단지 업주들
“쑥대밭 된 곳에 관광객 돌아올까” 시름

강원도 강릉시 저동 펜션단지에서 12일 오전 이태림씨가 지난 11일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자신의 펜션을 바라보고 있다. 이삭 기자.

10여개 펜션들이 몰려 있는 강원 강릉시 저동 펜션단지는 평소 경포호수와 경포대와 가까운데다 운치도 좋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지난 11일 발생한 산불로 폐허처럼 변해버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건물 곳곳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일부 펜션은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겨우 손님좀 받나 했더니….” 검게 그을린 펜션을 보며 주인 이모씨(45)가 착잡한 듯 말했다. 이번 산불로 7개의 객실이 있는 이씨의 펜션이 모두 불에 타 버렸다. 강릉 토박이인 이씨는 7년 전 이곳에 3층짜리 펜션 건물을 짓고 영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산불로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기존 예약을 모두 취소하고 예약사이트도 닫았다”고 말했다. 이어 “비수기 때 전기세 등 공공요금이 모두 올라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며 “이번 달부터 날씨가 좋아지면서 숙박 예약이 잇따라 숨통이 트이나 했더니 산불로 한순간에 빈털터리가 됐다”고 허탈해했다.

강릉에서 애견펜션을 운영한다는 A씨는 “애견 펜션을 운영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번 산불로 건물이 잿더미가 됐다”며 “이번 산불이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 사근진 해변 인근 한 모텔 건물이 지난 11일 발생한 산불로 불에 탄 모습. 이삭 기자.

이번 산불로 경포 주변 소나무 숲도 씨커멓게 타버렸다. 경포 주변 송림은 2000년 동해안 대형 산불은 물론 1998년과 2002년 등 과거 발생한 여러 차례 산불 속에서 견뎌냈다. 하지만 이번 산불에는 버티지 못했다. 이번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가 소실됐는데 대부분이 소나무 숲이다. ‘경포 송림’은 대관령 금강소나무 숲과 함께 강릉의 또 다른 관광자원이었다.

덩달아 상인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화재로 시설물 피해를 본 업소들이 상당수인데다 전기와 상수도 등이 모두 끊겨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이기 때문이다. 송림을 비롯한 문화재 등 강릉의 관광자원이 불에 타 관광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크다.

19개 객실이 있는 한 모텔은 이번 산불로 건물이 내·외부가 불에 타 바닥 곳곳에 화재의 열기를 견디지 못해 깨진 유리창이 널려있었다. 이 모텔 업주의 아들 B씨는 “부모님께서 2000년부터 운영해 온 곳”이라며 “아버지는 이번 산불로 충격이 커 식사를 하지 못하고 계신다”고 전했다.

인근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C씨(52)의 경우도 34개 객실 중 2개가 불에 탔다. 그는 “다행히 피해가 적은 편이지만 연기가 객실 전체에 들어차 한 두 달 정도 영업이 힘들 것 같다”며 “뉴스를 본 고객들의 예약 취소도 잇따라 고객 중 50%가 객실 예약을 취소했다”고 씁쓸해 했다.

사근진 해수욕장 인근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김모씨(53)는 “건물 외벽 일부가 불에 타 전기와 상수도가 끊겨 민박 예약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를 본 동료 상인들이 많은데 이들을 두고 나 혼자 영업하자니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화재로 쑥대밭이 된 곳에 관광객들이 찾아올까 걱정”이라며 “성수기인 7월 전에 시설 등을 모두 복구 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