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국힘의 오래된 ‘밀당’…“그래서 내 통제를 받아야 된다”
“전광훈 너는 정치 하겠느냐? 난 정치 안 합니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가지기 때문에 반드시 종교인의 감시가 필요해요. 종교인의 감시 없으면 그 사람들이 자기통제가 불가능하다고요. 홍준표 시장님, 황교안 전 대표님 하시는 말씀 보세요. 저게 통제되는 말입니까? 그래서 전광훈 목사의 통제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아니면 자기가 하는 말도 몰라요.”
-10일 오전 ‘국민의힘 내부분열 사태와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전광훈 목사의 입장문 발표 기자회견’ 중
(이날 저녁 사랑제일교회는 보도자료를 내어 ‘통제’ 발언을 “종교 지도자로서 정당에 조언하겠다”로 바로잡는다고 밝혔다.)
10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전광훈 목사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대표를 언급하며 “내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외쳤다. 최근 두 사람이 자신을 향해 “당에서 축출해야 한다”며 일제히 공격에 나서자 맞불을 놓은 것이다.
“전광훈 목사가 우파진영을 천하 통일했다” “목사님이 원하시는 걸 관철시키도록 하겠다” 등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전 목사와 국민의힘 정치인들 사이의 신경전이 불거졌다. 극우 성향의 전 목사에게 당이 휘둘리는 모습이 연출되며 ‘전광훈 리스크’가 현실화하자 당 안팎에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결국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그 사람(전 목사)은 우리 당 당원도 아니다”며 거리를 뒀다.
그러나 지난 15여년 동안 국민의힘은 전 목사에 ‘구애’를 보냈다가 외면하고, 다시 그를 찾는 일을 여러차례 반복해왔다. ‘태극기 부대 표심’이 필요했던 국민의힘은 선거 때마다 전 목사와 ‘사진 찍기’에 바빴지만, 그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등을 돌렸다. 전 목사와 국민의힘은 이번엔 어떤 선택을 할까. 전 목사와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오랜 ‘밀고 당기기’를 짚어봤다.
“MB 안 찍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
전 목사가 노골적으로 현실 정치에 목소리를 낸 것은 17대 대선 무렵이다. 2007년 4월 경남 마산 청교도영성훈련원이 주최한 집회에 강사로 참석한 전 목사는 교인들에게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안 찍은 사람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라며 “생명책에서 안 지움을 당하려면 무조건 이명박을 찍으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생명 책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약속받은 이들의 이름을 기록한 책을 뜻한다.
전 목사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에 선출된 2019년 이후엔 보수정당과 더욱 끈끈한 관계가 형성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 대표는 그해 3월 한기총을 찾아 전 목사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전 목사는 “(자유)한국당이 (21대 총선에서) 200석을 (획득)하면 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 달성 못 하면 국가가 해체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황 전 대표를 향해 “이승만 (전) 대통령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가는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광훈은 선지자” “나라 사랑하는 마음 강한 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전 목사의 손뼉을 치며 그의 ‘몸값’이 올라갔다. 현재 전 목사를 공격하며 ‘손절’에 나서는 국민의힘 정치인 중 일부는 과거엔 그와 손을 잡았던 이들이 많다.
황교안 전 대표는 전 목사를 두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강한 분”이라며 그를 자주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2020년 1월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로에 놓인 전 목사를 두고 “교회나 종교인에 대한 사법적 제재는 정말 신중히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2019년 9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총괄대표를 맡은 전 목사는 당시 서울 광화문 일대 등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이 집회에 황교안 전 대표와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 홍준표 전 대표, 김진태 의원 등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당 대표가 되기 전인 2019년 11월 전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 참석해 “이 패악한 정권, 독재정권을 향해 외치는 이사야 같은 선지자가 저는 전광훈 목사님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불리하면 전 목사를 ‘손절’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8월 전 목사가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늘자 미래통합당에서 집회를 방관했다고 공격했다. 당시 집회엔 홍문표, 김진태, 민경욱, 차명진 등 미래통합당 전·현직 의원들이 다수 참여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김은혜 당시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전 목사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미래통합당은 전 목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 함께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같은 당에서 왜 싸워…이래서 200석 하겠습니까”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거리두기’에도 당을 향한 전 목사의 애정은 쉽게 식지 않는 것 같다. 전 목사는 1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김재원 위원이(예배에) 와서 ‘실언을 했다’ 칩시다. 같은 당의 사람은 품어야죠. 상대방 당이 공격하면 몰라도 같은 당에서 왜 싸우고 그러냔 말이에요 이래가지고 200석 하겠습니까”라고 했다. 지난달 12일 김재원 최고위원이 사랑제일교회 예배에서 “최고위에 가서 목사님이 원하시는 걸 관철시키도록 하겠다”고 말한 뒤 국민의힘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된 것에 서운함을 표현한 것이다.
전 목사는 당시 예배에서 김 최고위원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다음 돌아오는 총선에서 (국민의힘) 200석 서포트(지원)하는 게 한국 교회의 목표입니다.”
전 목사는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일 수 있을까. 지난달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신도들에게 당원가입을 독려하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총선은 다르다. 참고로 전 목사가 이끌었던 기독자유통일당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정당지지율 1.83%(51만3159표) 득표에 그쳐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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