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국힘의 오래된 ‘밀당’…“그래서 내 통제를 받아야 된다”

강재구 2023. 4. 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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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전광훈-국민의힘 동행·신경전 반복
김기현 당시 전 울산시장(현재 국민의힘 대표)이 2019년 11월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문재인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JTBC 뉴스> 갈무리
“전광훈 너는 정치 하겠느냐? 난 정치 안 합니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가지기 때문에 반드시 종교인의 감시가 필요해요. 종교인의 감시 없으면 그 사람들이 자기통제가 불가능하다고요. 홍준표 시장님, 황교안 전 대표님 하시는 말씀 보세요. 저게 통제되는 말입니까? 그래서 전광훈 목사의 통제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아니면 자기가 하는 말도 몰라요.”
-10일 오전 ‘국민의힘 내부분열 사태와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전광훈 목사의 입장문 발표 기자회견’ 중

(이날 저녁 사랑제일교회는 보도자료를 내어 ‘통제’ 발언을 “종교 지도자로서 정당에 조언하겠다”로 바로잡는다고 밝혔다.)
단식투쟁에 돌입한 황교안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2019년 11월20일 청와대 분수대 인근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 집회를 찾아 총괄대표인 전광훈 목사(오른쪽)의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전광훈 목사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대표를 언급하며 “내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외쳤다. 최근 두 사람이 자신을 향해 “당에서 축출해야 한다”며 일제히 공격에 나서자 맞불을 놓은 것이다.

“전광훈 목사가 우파진영을 천하 통일했다” “목사님이 원하시는 걸 관철시키도록 하겠다” 등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전 목사와 국민의힘 정치인들 사이의 신경전이 불거졌다. 극우 성향의 전 목사에게 당이 휘둘리는 모습이 연출되며 ‘전광훈 리스크’가 현실화하자 당 안팎에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결국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그 사람(전 목사)은 우리 당 당원도 아니다”며 거리를 뒀다.

그러나 지난 15여년 동안 국민의힘은 전 목사에 ‘구애’를 보냈다가 외면하고, 다시 그를 찾는 일을 여러차례 반복해왔다. ‘태극기 부대 표심’이 필요했던 국민의힘은 선거 때마다 전 목사와 ‘사진 찍기’에 바빴지만, 그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등을 돌렸다. 전 목사와 국민의힘은 이번엔 어떤 선택을 할까. 전 목사와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오랜 ‘밀고 당기기’를 짚어봤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2019년 3월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열린 원로들과의 면담에 참석해 전광훈 전 한기총 대표회장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MB 안 찍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

전 목사가 노골적으로 현실 정치에 목소리를 낸 것은 17대 대선 무렵이다. 2007년 4월 경남 마산 청교도영성훈련원이 주최한 집회에 강사로 참석한 전 목사는 교인들에게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안 찍은 사람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라며 “생명책에서 안 지움을 당하려면 무조건 이명박을 찍으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생명 책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약속받은 이들의 이름을 기록한 책을 뜻한다.

전 목사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에 선출된 2019년 이후엔 보수정당과 더욱 끈끈한 관계가 형성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 대표는 그해 3월 한기총을 찾아 전 목사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전 목사는 “(자유)한국당이 (21대 총선에서) 200석을 (획득)하면 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 달성 못 하면 국가가 해체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황 전 대표를 향해 “이승만 (전) 대통령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가는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2017년 5월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독자유당·범기독교계 지지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해 전광훈 목사와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전광훈은 선지자” “나라 사랑하는 마음 강한 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전 목사의 손뼉을 치며 그의 ‘몸값’이 올라갔다. 현재 전 목사를 공격하며 ‘손절’에 나서는 국민의힘 정치인 중 일부는 과거엔 그와 손을 잡았던 이들이 많다.

황교안 전 대표는 전 목사를 두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강한 분”이라며 그를 자주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2020년 1월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로에 놓인 전 목사를 두고 “교회나 종교인에 대한 사법적 제재는 정말 신중히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2019년 9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총괄대표를 맡은 전 목사는 당시 서울 광화문 일대 등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이 집회에 황교안 전 대표와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 홍준표 전 대표, 김진태 의원 등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당 대표가 되기 전인 2019년 11월 전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 참석해 “이 패악한 정권, 독재정권을 향해 외치는 이사야 같은 선지자가 저는 전광훈 목사님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불리하면 전 목사를 ‘손절’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8월 전 목사가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늘자 미래통합당에서 집회를 방관했다고 공격했다. 당시 집회엔 홍문표, 김진태, 민경욱, 차명진 등 미래통합당 전·현직 의원들이 다수 참여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김은혜 당시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전 목사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미래통합당은 전 목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 함께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2019년 10월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문재인 탄핵 10‧3 국민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전광훈 목사가 운영하는 유튜브채널 ‘너알아TV’ 갈무리

“같은 당에서 왜 싸워…이래서 200석 하겠습니까”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거리두기’에도 당을 향한 전 목사의 애정은 쉽게 식지 않는 것 같다. 전 목사는 1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김재원 위원이(예배에) 와서 ‘실언을 했다’ 칩시다. 같은 당의 사람은 품어야죠. 상대방 당이 공격하면 몰라도 같은 당에서 왜 싸우고 그러냔 말이에요 이래가지고 200석 하겠습니까”라고 했다. 지난달 12일 김재원 최고위원이 사랑제일교회 예배에서 “최고위에 가서 목사님이 원하시는 걸 관철시키도록 하겠다”고 말한 뒤 국민의힘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된 것에 서운함을 표현한 것이다.

전 목사는 당시 예배에서 김 최고위원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다음 돌아오는 총선에서 (국민의힘) 200석 서포트(지원)하는 게 한국 교회의 목표입니다.”

전 목사는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일 수 있을까. 지난달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신도들에게 당원가입을 독려하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총선은 다르다. 참고로 전 목사가 이끌었던 기독자유통일당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정당지지율 1.83%(51만3159표) 득표에 그쳐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달 12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에서 열린 주일예배에 참석해 전광훈 목사와 보수 유튜버 신혜식씨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광훈 목사가 운영하는 유튜브채널 <너알아TV’> 갈무리
10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열린 ‘국민의힘 내부분열 사태와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전광훈목사의 입장문 발표 기자회견’ 에서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전광훈 목사가 운영하는 유튜브채널 <너알아TV> 갈무리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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