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이 격추” “정부가 은폐”… 자위대 헬기 실종 나흘, 음모론 들끓는 일본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3. 4. 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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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 등 10명 탑승… 날씨 좋아… 이륙 10분만에 레이더서 사라져… 발견된 건 노란 구명보트·헬멧뿐
지난 6일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 근해 해상에 추락한 일본 육상자위대 헬기 잔해로 보이는 물체가 바다에 떠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6일 오후 3시 46분 오키나와현의 미야코지마(宮古島) 기지에서 일본 육상자위대 소속의 헬리콥터 ‘UH60JA’가 이륙했다. 헬리콥터에는 일주일 전 취임한 제8사단의 사카모토 유이치 사단장과 조종사·정비원 등 10명의 자위대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신임 사단장이 헬리콥터로 미야코지마 주둔기지의 주변 지형을 확인·숙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풍속도 별로 빠르지 않았고 시야 확보도 문제없어 육안으로 비행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본래 1시간 반 정도 주변을 돈 다음, 오후 5시 5분 같은 기지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헬리콥터는 이륙한 지 8분 후에 마지막 무선 교신 기록만을 남긴 채, 이륙 10분이 지난 3시 56분에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행방불명된 것이다. 이날 밤 육상자위대의 수장인 모리시타 야스노리 육상막료장(한국의 육군참모총장에 해당)은 “종합적으로 봤을 때 항공 사고로 판단된다”며 “1초라도 빨리 탑승한 대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해상자위대·항공자위대·해상보안청을 총동원해 수색과 구조 활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당장 일본 전역에서 같은 기종 헬리콥터의 비행을 중단했다.

실종된 헬기와 같은 기종인 육상자위대 ‘UH60JA’ 헬리콥터 사진./EPA 연합뉴스

행방불명 4일이 지난 10일, 탑승자 구조는커녕 사망자의 시신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전장 약 20m인 헬리콥터의 추락이지만 기체도 발견하지 못했다. 발견한 것이라곤 육상자위대라고 적힌 노란색 구명보트와 대원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헬멧, 해수면에 떠있는 기름 정도다.

지난 6일 행방불명된 일본 육상자위대의 헬리콥터에 실려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명보트. ‘육상자위대 구명보트 1호’라고 적혀 있다./일본해안경비대/ AFP/ 연합뉴스

자위대의 수색이 아무 진전도 없는 사이에 인터넷에서는 ‘외부 공격에 의한 격추설’이 등장했다. 트위터에는 “중국 미사일의 가능성이 있다. 탐색 임무용으로 폭약을 뺀 미사일도 있다고 들었다. 맞으면 손실이 적기 때문에 사고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기체를 은폐한 것으로 보인다. 시신도 모두 회수했다”와 같은 음모론이 들끓고 있다. 음모론은 대부분 중국군의 공격을 받아 헬기가 추락했는데 일본 정부가 숨기고 있다는 내용이다.

헬리콥터의 행방불명 전날인 5일 중국 해군의 항공모함 ‘산둥함’과 구축함 3척이 오키나와현 하테마루섬 인근에서 확인된 대목이 이런 추측의 주요 근거다.

불을 지핀 건, 야당 국회의원의 질의였다. 사고 다음 날인 7일 입헌민주당의 겐바 고이치로 중의원(국회의원)이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에게 “사고 발생 전후에 주변 해역을 통과한 중국 군함과 이번 사고 간 관련성이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한 것이다. 하마다 방위상은 “그런 정보는 현재 상황에서 전혀 들어와 있지 않다”고 부정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갑자기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른 걸 봤다’는 주변 어선의 증언과 함께 격추설이 등장했다. 연기가 실제로는 없었다는 반박이 나오자 이번엔 ‘기체의 고장을 일으키는 전파 공격설’이 나왔다.

7일 일본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해역에서 해안경비정이 헬기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교도/로이터/연합뉴스

현재 정황으론 공격설은 과학적 근거 없는 설(說)일 따름이다. 미사일 공격을 받았으면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기체가 산산조각 나는데 행방불명 현장에선 잔해를 찾아볼 수 없다. 중국군이 미사일을 쐈다면 레이더에 포착돼야 하지만 당시 아무런 비행 물체도 확인된 게 없다. 사고 현장 주변에선 항공기는 물론이고 드론 등의 접근도 없었다.

방해 전파 공격도 가능성이 없다. 헬리콥터를 타깃으로 전파를 쐈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은 주변에 광범위하게 퍼지기 때문이다. 주변 관제탑의 레이더에도 잡음이 발생하거나 통신이 두절되는 이상 현상이 생겨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 자위대는 물론이고 민간 통신기기에서도 통신 이상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자위대 헬기 실종 지점

아사히신문은 “자위대의 입장은 회전날개를 돌리는 기어의 고장으로 헬기의 추력이 한꺼번에 떨어지면서 그대로 해면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체 대부분이 그대로 가라앉는 바람에 잔해가 없다는 것이다. 추정 원인은 기체 결함이나 노후화, 정비 불량 등이다.

일본 자위대는 온라인에 퍼지는 음모론에 직접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수색에 실패한 상황에서 네티즌과 자칫 진실게임 공방전으로 흐르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일 자위대는 탑승 대원이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헬멧을 공개했다. 이라부섬의 해안에서 전날 발견한 것으로, 일련번호로 탑승자의 물건으로 확인했다. 자위대로선 명확한 원인 파악을 못 하면 한동안 음모론에 시달려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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