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정말 반가웠다, 능글맞은 조승우('신성한, 이혼')

최영균 칼럼니스트 2023. 4. 1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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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이혼’ 조승우, 영웅에서 힐러로의 전환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JTBC 토일드라마 <신성한, 이혼>이 막을 내렸다. 다소 짧은 듯하지만 요즘 늘어나는 추세인 12부작으로 마무리한 이 드라마는 여동생의 납득할 수 없는 죽음으로 피아니스트에서 변호사로 변신한 신성한(조승우)이 이혼 사건들을 다루면서 여동생으로부터 남겨진 일들까지 해결해나가는 스토리다.

<신성한, 이혼>은 6~7%대를 오가는 준수한 시청률로(이하 닐슨코리아) 조승우가 2021년 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로 겪었던 부진을 털어냈다. <시지프스: the myth>는 조승우를 비롯해 출연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타임슬립이라는 복잡한 스토리라인과 모호한 연출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신성한, 이혼>에서 신성한은 때로는 친구 장형근(김성균), 조정식(정문성)과 신들린 개그 호흡으로 유쾌함을, 때로는 이혼의 귀책사유자로 낙인찍힌 의뢰인을 편견 없이 선의와 성실함으로 구해내는 변호사의 훈훈함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조승우는 연기 활동에 있어 이번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장을 연 느낌이다. 그간 강력한 상대와 맞서 싸우면서 존재의 근간이 흔들릴 위기를 이겨내는 영웅형 캐릭터로 배우의 입지를 확고히 굳혀 왔다면 이번 드라마에서는 힐러의 면모로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조승우는 영화 <춘향전>이나 <클래식> 등 풋풋한 시절을 거친 후 대중들에게 자신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작품들에서는 영웅형 캐릭터가 대세였다. 영화 <타짜>에서는 최종 상대 마귀는 물론, 모두가 죽어 나가는 도박판의 험악한 현실을 이겨나가는 안티히어로의 연기로 최고의 배우 반열에 올랐다.

영화 '내부자들'

드라마 <비밀의 숲>이나 영화 <내부자들>에서도 치명적인 위기들을 힘겹게 극복해가며 권력이라는 거악과 부딪혀 헤쳐나가는 영웅이었다. 영화 <퍼펙트게임>에서는 선동렬이라는 맞수 이면에 본인이 처한 여러 문제들을 극복해야 하는 스포츠계의 영웅 최동원이었고, 특별 출연한 영화 <암살>에서도 일제와 맞서 싸우는 독립 영웅 김원봉 역을 맡았다.

그렇다 보니 화면에서의 조승우는 늘 압박과 긴장감이 함께했다. <타짜>, <내부자들> 등에서는 간간이 웃음 유발 장면도 있었지만 이는 곁들여진 것일 뿐 근간은 근엄한 모습으로 닥쳐오는 압박을 헤쳐 나아가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시지프스: the myth>에서도 괴팍한 설정의 과학자라 우스운 상황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은 세상과 연인을 구하는 진지한 영웅이었다.

<신성한, 이혼>의 신성한은 다르다. 죄 또는 유책 사유로 보이는 일을 저지른 이를 외면하지 않고 의뢰인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세상 모두가 외면하는 의뢰인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소중히 대하면서 재판에서 숨겨진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게 만들어 의뢰인을 구원하는 모습이 이 드라마에서 조승우가 보여준 연기의 핵심이다.

불륜 과정에 찍힌 몰카가 유출된 아나운서, 시어머니를 때린 며느리, 베트남 아내를 폭행한 농부 남편 등 신성한의 의뢰인들은 재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부도덕한 인물들로 사회에서 배척받는다. 하지만 신성한은 이들을 거부하지 않고 문제 이면의 반전 사연들을 찾아내 법정에서 의뢰인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온전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신성한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위안을 전했고 힐러로 기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신성한 친구 3인방이 펼치는 코믹 연기도 시청자들을 유쾌하고 밝게 만들면서 신성한의 힐러스러운 면모를 더욱 강화했다.

물론 신성한도 이 드라마의 스토리텔링 한 축인 여동생 죽음으로 인한 사돈 집안과의 대립에 있어서는 영웅스런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여동생의 죽음이 억울하고 여동생의 아이가 사돈 집안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는 일에 분노하고 대응하는 과정은 영웅스러운 설정이지만 훈훈하고 흥겨운 조승우의 힐링 연기에 비해 비중이 작아 보인다.

이미 조승우는 비극과 희극이 함께 가능한 최고의 배우였지만 그간은 짓누르는 무게감이 압도하는 작품들에서 주로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작품들에서는 거악을 이겨내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남겼다면 이번에는 즐거움과 위로를 선사했다.

능글맞으면서도 따뜻한 연기를 한 작품 속에서 유려하게 오갈 수 있는 배우는 극히 드물어서 이런 조승우를 보는 일은 반갑다. <신성한, 이혼>이 조승우의 새로운 연기 영역의 신호탄일지 다음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JTBC, 영화 <내부자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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