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얼음 종류가 20가지? 얼리면 독성 물질이 사라진다고?

심영구 기자 2023. 4. 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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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사람들] 얼음 속 이상한 화학반응 이야기
지구상에서 가장 북쪽과 남쪽 끝 극단적인 곳에서 극한 체험하면서 연구하는 '극적인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가기도 힘든 남극과 북극을 수시로 오가며 연구 활동을 펼치는 극지연구소 사람들과 스프의 콜라보 프로젝트!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글: 김기태 극지연구소 저온신소재연구단 책임연구원)



우리 주변엔 많은 얼음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담수의 80% 이상이 얼음으로 존재한다. 이 얼음은 우리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얼음 때문에 우리는 스키와 스케이트 같은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음료를 마실 수 있으며, 생선이나 음식들이 빠르게 상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만약에 얼음이 없다면 많이 불편하고 허전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겨울철 인도와 도로를 미끄럽게 만들어 크고 작은 사고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고 겨울철 수도관 동파와 같은 불편함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얼음에 대해서 과학적으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까지 밝혀진 얼음의 종류가 무려 20가지가 넘는다는 사실, 얼음이 완전한 고체가 아니라 액체와 고체의 혼합물이라는 사실, 따뜻한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얼음이 된다는 사실, 지구가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매년 미국 면적의 2.5배가량의 얼음이 얼고 녹는다는 사실, 얼음에서 어떤 화학반응들은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된다는 사실(일반적으로 온도가 낮아지면 화학반응은 느리게 진행된다 : 아레니우스식)들은 아마 일반인 대부분은 전혀 모르는 얼음에 관한 진실일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극지연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행된 얼음에 관한 연구들은 남극과 북극 빙하의 이동, 바다얼음의 면적 변화, 눈과 얼음에 의한 태양 빛의 반사 능력 등과 같은 거시적이고 얼음의 물리적인 특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후, 1995년에 남극 성층권 오존층 파괴 과정이 성층권 얼음표면에서 일어나는 염소분자의 화학반응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얼음에서의 화학반응에도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얼음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화학반응

극지연구소의 얼음 화학 연구 프로젝트

극지연구소에서는 동결되는 과정에서 혹은 얼음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대해 최근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를 통해 얼음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들이 단순히 느리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수용액보다 수십만 배 이상으로 빠르게 일어날 수도 있고,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화학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처럼 얼음에서 특이하게 일어나는 화학반응들은 물이 얼음으로 변할 때 물에 녹아있던 성분들이 얼음결정들 사이에 존재하는 얼지 않는 영역(*준-액체층, 유사액체층)에 높은 농도로 모이게 되는 일명 '*동결농축효과'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준-액체층, 유사액체층(Liquid-Like Layer) : 얼음 결정 사이 경계면이나 표면에서, 완전히 얼어붙지 않은 물이 액체와 유사한 성격을 띤 채 존재하는 공간

*동결농축효과(Freeze concentration effect) : 물이 얼음으로 바뀌는 과정에 특정 성분들이 준액체층으로 모이면서 해당 성분의 농도가 수천에서 수십만 배 이상 증가하는 현상

저온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한 얼음 결정과 얼음 결정 사이의 준액체층 사진

이러한 얼음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화학반응들은 눈과 얼음이 엄청나게 존재하는 극지방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일어날 수 있고 이로 인해 극지에서만 관찰되는 여러 가지 자연현상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얼음 안에서 진행되는 화학반응들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와 이러한 이상한 화학반응들이 극지방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실생활에 응용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얼음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얼음에서 빠르게 생성되는 철 이온과 요오드 기체 모식도

우리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얼음 화학반응이 기후변화와 관련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철(Iron) 이온은 우리 인간뿐 아니라 식물과 동물의 생장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 남극 바다에는 철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극해 미세조류의 성장이 생물이 이용가능한 철의 농도에 의해 좌우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남극 바다에 철 이온이 어떻게 공급되는지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또한, 극지방 대기 중에 있는 요오드 기체는 극지방 구름 생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태양 빛을 반사시키는데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 극지연구소는 다양한 실험과 현장검증을 통해 극지방 얼음에서 일어나는 '동결농축효과'에 의해 생물이 이용가능한 철 이온과 요오드 기체 등이 매우 빠르게 생성됨을 밝혔다. 이렇게 생성된 요오드 물질은 대기 중 구름 생성을 촉진시켜 태양 빛 세기에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철 이온은 해양미세조류의 성장을 돕고, 활성화된 미세조류들은 더 많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게 된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극지방에 존재하는 얼음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물질의 생성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단서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지구온난화 또는 기후변화로 인해 극지방 얼음이 줄어들 경우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한 예측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냉동실에 넣어둔 오염물질이 깨끗해진 사연


2000년대 초, 체코 마사릭대학의 'Petr Klan' 교수 연구팀에서 얼음 내부에서 특정 오염물질의 화학변화가 액상과 매우 다르게 진행되고 그 결과 원래의 물질보다 훨씬 독성이 강한 물질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보고했다.


극지연구소 저온신소재연구단에서는 얼음에서 오염물질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한 결과 특정 오염물질들은 동결이 되면서 빠르게 독성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얼음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화학반응을 이용해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유용한 물질을 회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도금공장이나 LCD 공장에서 배출되는 6가크롬과 요오드 물질이 섞은 폐수를 얼렸을 때 1급 발암물질인 6가크롬의 독성이 매우 빠르게 사라지고, 요오드는 산업에 사용가능한 형태로 바뀌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얼렸는데 독성이 사라지다니...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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