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택지 싸게 사고 비싸게 분양전환?"…민간임대 정책실패 막으려면[부동산백서]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수용당한 공공 땅을 싸게 낙찰받더니 갑자기 4년 민간임대로 특혜를 누리고는, 막상 입주하니 9개월도 안 돼 기습 매각해버렸습니다. 돈 없고 시기 안 맞아 반대한 집 37가구는 3자 매각을 해버렸습니다. 민간임대로 입주했는데, 이 37가구는 집주인이 들어오겠다고 하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법안 좀 고속으로 만들어주십시오."
어느 민간임대주택 임차인들의 호소인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발단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나라의 임대주택은 1984년 제정된 임대주택건설촉진법이 1993년 전부개정 된 이래 줄곧 임대주택법의 규율을 받아왔습니다. 조금씩 법을 개정하며 '국민주거생활의 안정'을 도모해왔지요. 그러던 임대주택법은 2015년 대변혁의 시기를 맞습니다.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임대주택법을 공급 주체에 따라 '공공주택특별법'과 '민간임대주택법'으로 구분하게 된 겁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뉴스테이(New Stay)' 정책을 기억하실 겁니다. 민간기업형 임대주택의 시작이지요.
임대주택 '공급'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참여하는 기업에 많은 혜택을 부여했습니다. 공공임대주택에 적용되는 임대료 규제나 분양전환 규제에서 자유로울뿐만 아니라, 4년 단기임대를 등록하기만 해도 임대사업자로서의 다양한 세제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준 거죠. 건설사가 임대아파트를 지은 뒤 4년간 적지 않은 임대료를 받고 운영하다가 비싼 가격에 분양할 수도 있는 '불안한 당근'을 준 셈인데요. 국민주거생활 안정을, 단순히 임대주택의 양을 신속하게 늘리는 측면에서 접근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건설사는 2015년 경기도 하남시 위례지구에서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한 공공택지를 입찰받은 뒤 2017년 당시 일반분양택지이던 해당 부지를 임대주택부지로 변경합니다. 뉴스테이 정책에 참여한 건데요. 2018년 2월 '하남시에 거주하는 무주택 세대주를 대상으로 4년간 (전용 101㎡ 기준) 보증금 6억2000만원에 월세 25만원을 받고 임대하는 조건'으로 임차인 모집공고를 냅니다. 이후 집이 지어지자 2021년 2~4월 입주가 시작됐고요. 보증금이 적지 않아 보이긴 합니다만, 일단 4년간 새 아파트에서 안정적으로 주거할 수 있다는 데 방점을 찍고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문제는 이후 정권교체로 정책이 바뀌는 과정에서 터졌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임대주택은 주거 '안정'에 집중, 민간임대주택의 임대의무기간을 10년으로 늘리고 2020년에는 급기야 4년 단기임대와 각종 세제 혜택을 폐지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합니다. 위 사례의 경우 LH 택지로 지어진 임대주택이기 때문에 새 분류상 '공공지원 민간임대'에 해당하지만, 임대기간을 10년으로 늘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임차인 동의를 받으면 당초 약속한 4년 임대기간을 채우지 않고도 분양 전환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종합부동산세 등 세제혜택이 사라진 터라 업체 측에서도 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요.
결국 이 아파트는 2021년 12월~2022년 5월 조기 매각 절차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 법의 진짜 사각지대가 드러나는데요. 바로 분양가 규제와 임차인 우선 분양 조항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임차인들에 따르면 당시 업체가 제시한 분양가는 12억6000만원으로, 주변 아파트 분양가(7억2000만원)의 175% 수준이었습니다. 아파트 실거래가 정보 제공업체 '아실'에서 같은 101㎡ 평형 매매 가격을 보면 2021년 12월 최고가 18억원을 찍고 2022년 11월 11억 3000만원으로 떨어졌으니, 제시된 분양가는 당시 주변 매매 시세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짐작해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분양가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항의한 37가구에 대해서는 제3자 매각이 이뤄졌고, 이들 가구 임차인은 4년 임대를 기대하고 입주했다가 돌연 주거 불안에 시달리게 됐다는 게 이날 호소의 요지입니다. 아울러 임차인들은 △처음 업체 측이 공공택지를 분양받을 때 '벌떼입찰'로 낙찰했고 △돌연 부지를 민간임대로 전환한 건 공공택지에 적용된 분양가상한제를 회피하려는 목적에서였으며 △임차인들은 계약금·중도금·잔금 외에도 대출이자 명목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했으며 △결국 이 과정에서 기업이 수천억원 상당의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권교체기 정책 급선회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법의 사각지대로 애꿎은 임차인들이 피해를 보게 된 사례인데요. 분양전환 시 임차인에 우선매수권이 있었다면 분양가를 협상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고, 나아가 분양가 규제 조항이 있었다면 공공택지를 매입해 지은 아파트 분양가가 당시 고공행진하던 다른 집값과 똑같이 치솟진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임대주택 임차인 권익향상을 위한 TF' 주최로 진행된 '임대주택 임차인의 주거안정과 권익향상을 위한 입법적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법·정책적 미비점을 고찰했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는 수십 건의 민간임대주택법 개정안이 발의돼 치열한 논의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다만 김경헌 국토교통부 민간임대정책과장은 "임대주택정책의 기본 목표는 장기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통한 국민주거안정 확보"라면서 "이를 위해 지자체와 공공이 저소득 주거약자를 대상으로 공급하되, 그 대상이 아닌 일반 국민과 청년 및 고령자 등 생활양식에 맞춘 창의적 시도를 수용해 민간역량을 활용한 민간임대주택으로 보완하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임차인 주거안정과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후속대책 등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민간 장기임대주택 재고관리를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는 고민도 전했습니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정책지원단장은 "민간임대는 이중적 역할이 있다"면서 "건설부문이 국가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민간임대는 육성해야 할 '산업'인데, 임차인 보호에 치중하면 두 가지 목표가 상충될 수 있다"고 짚었는데요. 민간 건설산업을 육성하면서도 임차인 권리를 보호하는 게 입법 및 정책 입안의 딜레마라는 지적입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국민 10명 중 6명이 자가, 4명은 임차로 살고 있고 그 수치는 30년간 변함이 없다"면서 "임차인과 임대인이 '반반'인 관계에서 법도 균형적인 측면에서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한국은 대표적인 '임대인 친화적인 국가'에 속하는 만큼, 영국식 주택 옴부즈맨 제도나 미국식 임차인 권리 장전 시도를 통해 어느 정도는 균형을 맞출 필요도 있다고도 제안했습니다.
영국의 주택 옴부즈맨 제도는 주택부가 지원하는 비정부 공공기관이 임차인에게 임대인과 갈등 시 불만 제기 절차를 교육해주고, 임차인과 임대인 갈등이 법적 소송으로 가기 전에도 신속하고 저렴한 법률 구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라고 합니다. 임대인이 열악하고 비좁은 집을 임대했다가는 임대료를 몰수 조치당하는 규정도 있다고 하네요.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현 행정부가 △안전하고 품위 있으며 저렴한 주택 △명확하고 공정한 임대차 계약 △임차인 권리 교육 시행 및 강화 △임차인의 조직(organize) 권리 보호 △퇴거 방지 및 전환가 구제 등 임차인 권리 장전을 위한 청사진을 올해 1월 발표했는데요.
나라마다 주거 방식 특색과 선호도가 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세' 제도가 있어 각론은 다를 겁니다. 다만 이날 살펴본 사례의 핵심은 '균형감 있는' 법·정책 설계가 되겠네요.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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