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을 가두는 것 자체가 코미디…인간의 재미를 위해 소비되는 동물들[이진송의 아니 근데]

기자 2023. 4. 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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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없는 동물원’이란 상상을 다룬 영화 <해치지 않아> 가 말하고 있는 것
망해 가는 동물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해치지 않아>. 직원들이 동물 탈을 뒤집어 쓰고 우리 안으로 들어가 나무늘보, 사자, 북극곰, 고릴라 등을 연기한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모든 존재는 일정한 공간을 점거하고, 머물 만한 곳에 머문다. ‘있어야 하는 곳’을 이탈하여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출몰했을 때 그의 존재는 사건이 된다. 장르는 공포거나(낯선 사람이 내 방에 있다) 모험이 될 수도 있고(발바닥이 부드러운 나약한 인간이 외딴섬에 떨어진다) 코미디가 될 수도 있다(욕을 잘하는 할머니가 랩 배틀에 나간다). 얼마 전, 서울 한복판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차도와 각종 음식점의 간판, 평범한 주택가의 골목길 같은 익숙한 풍경 사이로 ‘얼룩말’이 출현한 것이다. 상식 속에서 얼룩말이 있어야 하는 풍경은 둘 중 하나다. 하나, 광활한 초원. 둘, 관람객과의 거리가 확보된 동물원. ‘단조로운 회색빛 도심’과 얼룩말의 조합은 아무리 봐도 누가 ‘누끼’를 잘못 따다 붙인 것 같다. 저기, 이거 여기 붙이는 거 맞아요? 아닌 것 같은데?

얼룩말의 정체는 근처의 서울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 3시간 정도 근처를 돌아다니다 포획되어 동물원으로 돌아갔다. 스펙터클만 놓고 보면, 얼룩말의 출현은 확실히 흥미진진하다. 뉴욕 동물원의 동물들이 탈출해 도시를 누비는 애니메이션 영화 <마다가스카>를 떠올리게도 한다. 얼룩말과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시민이 태연하게 돌아나가는 모습이나, 그가 어린이대공원 직원이었다는 비하인드는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각종 ‘짤’이나 패러디가 쏟아졌다. 동물원으로 돌아간 세로는 인기스타가 되어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런 세로의 모습을 마냥 귀여워하거나, 지루한 일상 속의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여기고 지나가기에는 무언가 석연찮다. 거리를 헤매는 세로의 모습은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수밖에, 울타리를 넘은 세로가 마주친 것은 동물이 완벽하게 배제된 채 만들어진 세계다. 동물원의 해명에 따르면, 군집 생활을 하는 얼룩말인 세로는 최근 가족을 잃고 ‘반항’ 중이었다고 한다. 외로워하는 세로를 위해 암컷 얼룩말을 데려오겠다는 설명에도, 어린이대공원의 홈페이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세로를 포함한 동물원의 동물을 우려하는 의견이 속속 등장했다. 세로는 2018년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 뽀롱이 사건에 이어, 다시 한번 ‘동물원의 동물’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많은 이들에게는 동물원의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경이와 감동의 색깔이었던 그것이, 어딘가 모를 불편함과 안쓰러움으로 전환된 경험까지 말이다.

여기, ‘동물 없는 동물원’이 있다. 영화 <해치지 않아>(2020)는 동명의 웹툰(다음 웹툰, 작가 Hun)을 원작으로 한 코미디이다.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생계형 수습 변호사 ‘태수’는 망하기 직전의 동물원을 되살려 판매 가치를 올리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로펌 대표의 제안을 받는다. 뭐든지 시키는 건 다 한다는 정신의 태수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동산파크’로 향한다. 하지만 경영난으로 돈 될 만한 동물은 다 팔아버린 동산파크에는 미어캣 같은 약간의 소동물 몇 마리, 월급을 못 받고도 남은 몇 명의 직원이 전부다. 어느 날 호랑이 박제를 보고 깜짝 놀란 태수는 ‘어차피 멀리서 보면 진짜와 가짜가 구별이 잘 안된다’는 논리를 펼치며 직원들에게 직접 동물이 될 것을 제안한다. 정교한 동물 탈을 뒤집어쓴 직원들은 우리 안으로 들어가 북극곰, 사자, 기린, 고릴라, 나무늘보를 연기한다. 직원들의 고군분투에도 관람객 유치는 시들하기만 한데, 땡볕 속에서 북극곰 인형 탈을 쓰고 있느라 잔뜩 지친 태수는 무심코 관람객이 던진 콜라를 따서 마신다. 그렇다. 그 유명한, 코카콜라 광고 속 북극곰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진짜 북극곰이 콜라를 마시네?!” 이 장면이 엄청난 화제가 되면서 동물원에는 관람객이 몰려든다.

지난 3월23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광진구의 한 골목길에서 오토바이 배달노동자와 마주친 모습.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끼어들어 댓글을 달고 싶은 순간은 있다. 아니, 관람객이 곰한테 저렇게 이물질을 던져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고? 콜라를 마시는 북극곰으로 유명해질 때까지 동물단체에서 가만둘 리가 없는데. 심지어 그게 사육사 주도의 쇼로 소비된다고?! 액상과당을… 먹어도 되는 거임? 북극곰도?(진짜 곰 아니지만) 그리고 저런 북극곰이 있는데 사이버 레커 영상이 하나도 안 붙고 평화롭게 흥행한다고…? 사실 영화든, 원작의 웹툰이든 <해치지 않아>는 동물의 관점이나 동물권이 중심인 콘텐츠가 아니다. 장르는 명백히 코미디이고, 영화에서는 태수의 정직원 전환과 동물원 직원들의 생계가, 웹툰에서는 사육사 철수가 짝사랑했던 소원에 대한 순정과 가짜 동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사연이 이 기상천외한 인형극을 벌이는 이유다. 하지만 꼭 중심 주제여야만 이야기해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문화 콘텐츠는 다양한 층위의 소재와 의미가 페이스트리 빵처럼 겹겹이 쌓여 있으니까. <해치지 않아>에서 북극곰 까만코는 동산파크에서 관람객을 유치할 만한 동물로서는 유일하게 ‘진짜’다. 머리로 우리를 들이받는 까만코는 전형적인 정형행동을 보인다. 태수는 사육사 소원과 대화를 나누며 까만코의 정형행동에 대해 언급한다. 정형행동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이지만 목적이 없는 행동을 말하며, 격리 사육하는 동물이나 우리에 갇힌 동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보이는 증상이다. 한자리를 맴돌거나, 털을 뽑거나, 배설물을 먹거나, 종일 누워서 잠만 자는 무기력한 행동, 아쿠아리움의 고래가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행동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동물원에 수용된 많은 동물이 이 같은 정형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원 얼룩말 ‘세로’ 도심 탈주극
가족 잃고 방황하다 울타리 넘어
사연까지 화제되며 왜곡된 위로
관람객 몰려 또 다른 스트레스
영화 속 북극곰의 탈을 쓴 인간
무더위에 캔음료를 따서 마시자
망해 가던 동물원에 관람객 몰려
풍자와 정형행동 등 문제제기도
돈 벌이·생태 학습 등 다양한 목적
허술한 관리에 문제 생기면 제거
동물 위한 동물원은 존재하지 않아
이제 ‘동물 없는 동물원’ 고민할 때

소원은 까만코가 동물원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체험’의 형태로 까만코와 함께했고, 그 행복한 기억을 발판 삼아 사육사가 되었다. 정형행동을 보이는 까만코를 외국의 보호센터에 보낼 기회가 있었을 때 소원은 자신이 까만코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동물원에 갇혀 있는 한, 소원의 사랑이나 선의는 까만코에게 충분하지 않다. 영화 <트루먼 쇼>처럼. 트루먼은 자신의 일상이 리얼리티 쇼로 실시간 송출된다는 것을 모른 채, 전 세계인의 스타로 살아간다. 트루먼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아낀다. 트루먼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눈물짓고, 그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트루먼을 쇼로 소비하는 윤리적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트루먼은 시청자의 감정을 적절히 자극할 수 있는 상황에 던져지기도 하고, 재미와 연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트루먼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거된다. 초기의 동물원이 철저하게 인간의 볼거리 위주였다면, 지금의 동물원은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고 연구한다는 의의가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애초에 동물이 자생적으로 살아갈 환경을 파괴하고 그들이 있던 곳에서 ‘뽑아’ 온 것도 인간이다. 국내의 대부분 동물원은 동물이 살기 편한 곳이 아니라, 인간이 ‘보시기 좋’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해치지 않아>의 ‘동물 없는 동물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인간이 동물원에서 보고 싶은 것은 ‘진짜’ 동물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은’ 동물, ‘재미를 보장하는’ 동물이다. 진짜라도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는 동물은 ‘재미없다’며 등을 돌리거나 괴롭힌다. 하다못해 정형행동이라도 해야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구경의 본질이다. 원작 웹툰에서는 이러한 관람객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초코파이를 뭉쳐 만든 코끼리 똥을 발사하는 비장의(?)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알코올 맥주처럼, 디카페인 커피처럼, 동물 없는 동물원을 다양하게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몇 차례의 ‘디지털 동물원’, ‘디지털 아쿠아리움’이 시도되었다. 2018년 결성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곰 보금자리’는 사육 곰을 구조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민간 최초로 생크추어리(Sanctuary)를 기획하고 추진 중이다. 생크추어리는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동물을 자연사할 때까지 돌보는 ‘구역’으로,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갖추어진 시설들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까만코가 떠나는 곳도 이 생크추어리로 추정되며, 소원을 다시 만난 까만코는 유유히 풍경 속으로 사라진다. 온전한 대자연은 아니지만 동물이 가진 능력치를 발휘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환경이 생크추어리다.

세로의 탈출은 그가 초식 동물이기에 귀엽고 재미있는 이벤트 정도로 소비되었다. 하지만 퓨마 뽀롱이처럼, 인간에게 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동물은 ‘침입자’로 규정되어 신속하게 처리된다.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가두고, 비용 절감을 위해 허술하게 관리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제거하는 방식을 넘어 동물과의 관계를 새로 상상할 때이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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