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현미 장남 “혼자 가시게 해…평생 못씻을 불효” 눈물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psyon@mk.co.kr) 2023. 4. 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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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현미의 장남 이영곤 씨가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삼켰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박세연 기자
“자식이 둘이나 있고 식구들이 많은데, 혼자서 말없이 가시게 하다니. 평생 못 씻을 불효를 했습니다.”

자택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장남이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현미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팬클럽 회장 김 모씨의 신고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향년 85세.

미국에 살다 급거 귀국한 고인의 첫째 아들 이영곤 씨는 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취재진과 만나 대한민국의 대가수이면서도 평범한 엄마였던 고 현미를 떠올렸다. 특히 그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평생 불효”라며 눈물을 삼켰다.

이씨는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어머니’ 현미의 모습에 대해 “문 밖을 나서면 대한민국 가수 현미인데, 집에 들어오면 그냥 평범한 엄마”라며 “지금도 ‘차조심해라’ ‘건강해라’ 늘 말씀하시는, 너무 평범한 엄마셨다”고 말했다.

그런 어머니를 비명에 떠나보낸 아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하다. 이씨는 “다른 어느 것보다도, 혼자서 가신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자식이 둘이 나 있고 식구들이 많은데, 혼자서 말없이 가신 것에 대해서는 평생 씻어도 못 씻을 불효라 생각한다”며 울먹였다.

타지에서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온 이씨는 “평소 어머님과는 카톡이나 영상통화를 자주 했다. 한국 시간으로 아침이면 어머니께서 여러가지 좋은 이야기와 이모티콘을 보내주시곤 했다”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보여주기도 했다.

고 현미의 장남 이영곤씨가 생전 어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박세연 기자
이씨가 공개한 카톡에는 예쁜 꽃 사진과 좋은 글귀, ‘이따만큼 사랑해’ 등의 문구가 쓰여진 귀여운 이모티콘 등 우리네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보내는 아주 평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씨는 “카톡을 본 지인이 ‘여자친구냐’ 묻기에 ‘우리 어머니’라고 하자 놀라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매일 영상통화를 했다. 떠나시기 전날에도 영상통화를 했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늘 하시는 말씀은 ‘차조심해라’ ‘건강해라’ ‘금방 나이든다’였다. 어제 (한국에) 도착해 빈소 일정을 잡고 어머님 댁에서 잤는데, 어머님은 방에서 주무시고 그냥 내가 어머님께 다니러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장례 절차를 마친 뒤에는 미국으로 어머니의 유해를 모셔갈 계획이라는 이씨는 “나도 동생도 미국에 거주한 지 오래 됐고, 아무래도 이곳에 모시면 자주 찾아뵐 수 없기 때문에 이제라도 모시고 가서 자주 뵙기 위해 미국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시종 담담하게 어머니를 추억한 이씨였지만 인터뷰 말미, 어머니께 한 말씀을 부탁하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그 얘기는, 죄송하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대한가수협회 주관의 5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 데 대해서는 “어머님도 가수시고 가요계에서 대선배님이시니까 가수협회장으로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동의했다”며 “조문을 많이 오시든 안오시든 엄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니까 하루라도 더해 5일 동안 편안히 모시고 가자고 그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고 현미 빈소.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씨는 “저와 동생이 있고 손주손녀도 많은데 가실 때 혼자 가셔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다. 분명히 편안하고 좋은 곳에 가셔서 지금쯤 저를 쳐다보고 계실지도 모른다”며 “어머니께서 영원히 국민 여러분들 가슴 속에 깊이 기억되는 가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한 번 애도해주시고 슬퍼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고인의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수된다. 이자연 회장과 대한가수협회 감사 서수남이 공동 장례위원장으로 나서고, 장례위원은 협회 임원 이사진이 맡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10시고, 고인의 유해는 두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으로 향한다.

현미는 지난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이후 6.25 전쟁 당시 1.4 후퇴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1962년 노래 ‘밤안개’로 데뷔한 고인은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매하며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재즈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5년에는 김기덕 감독 연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때는 말없이’의 주제곡을 불러 당대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 했다.

작곡가 고 이봉조와 사이에 영곤, 영준 두 아들을 뒀다. 장남 이영곤은 고니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둘째 며느리는 ‘사랑은 유리같은 것’으로 알려진 가수 원준희다. 가수 노사연과 배우 한상진의 이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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