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콩깍지’ 배누리 “버티면 승리합니다”[스경X인터뷰]
개인적으로 배우 배누리를 처음 만난 때가 11년 전인 2012년이었다. 당시 배누리는 19세로 이제 막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무녀 잔실이 역할을 해낸 배우였다. 가진 꿈도 많았고, 희망도 많은 그리고 급격하게 늘어난 관심에 고민도 있는 20대 초입의 배우, 그 모습이었다.
11년이 지난 배누리는 만으로도 서른이 됐다. 예전의 풋풋한 느낌은 없지만, 훨씬 차분해지고 성숙해졌다. 단지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기쁨, 슬픔, 설렘, 낙담 등 각종 감정을 겪은 후 좀 더 단단해졌다는 편이 맞겠다.
서른을 맞은 그에게 전기가 다가왔다. 첫 번째 주연, 가장 긴 드라마 그리고 갖은 사연을 가진 캐릭터. 배누리는 KBS1 드라마 ‘내 눈에 콩깍지’에서 이영이 역을 맡았다. 많은 배우들이 자신의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이 작품은 배누리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도 그렇고,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여운이 큰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 어떤 걸 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했던 역 중 가장 길었고 보여드린 것도 많았고, 또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었거든요.”
그가 연기한 이영이는 주인공이었다. 남편 김도진(신정윤)과 일찍 결혼해 딸도 두고 있었지만,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는 시련을 겪는다. 어린 딸을 홀로 씩씩하게 키우지만 김해미(최윤라), 차윤희(경숙), 하다못해 시어머니 오은숙(박순천)도 그가 한 명의 사회인으로 커나가는 일을 두고 보지 않는다. 시련 끝에 꽃을 피우는 ‘캔디’, 전형적인 ‘콩쥐’ 캐릭터였다.
“영이 캐릭터가 생각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는 친구라, 체력적으로 덤벼보자는 접근을 했어요. 저를 위해 다 모여주신 스태프라는 생각이 드니 책임감이 더 느껴지는 거였죠. 알면서도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고, 모든 의견을 수렴해야 했어요. 민폐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컸죠.”
사별, 모성 등의 요소는 미혼인 배누리가 겪지 못한 감정이었다. 다행히 드라마가 123부로 길었던 탓에 서서히 그런 설정에는 녹아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영이는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는 이영이처럼, 배누리도 그렇게 이영이가 돼갔다.
“초반 촬영이 기억나는데요. 서울 홍대 주변을 미친 듯이 달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때가 지난해 7월 말로 굉장히 더웠던 때였는데 정말 호되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만으로 도전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침에 유산균, 홍삼, 비타민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먹고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야외 세트의 경우에는 하루에 56개의 씬을 촬영하는 어려운 일정이었다. 초반에는 지쳤지만, 장경준 역 백성현이나 정혜선, 박철호, 박순천 등 선배 연기자들의 조언과 도움으로 중심을 잡았다. 일일극인 탓에 피드백도 많았다. 좋은 댓글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메일 등을 보며 기분을 다잡았다. 자기 전에 그날 방송을 꼭 보고자는 루틴도 만들었다. 정 머리가 아프면 ‘더 글로리’ ‘나의 해방일지’ 등 다른 작품을 보며 기분을 환기했다.
“실제 가족들이 가장 큰 버팀목이 돼 주셨어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손녀가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드렸죠. 작품이 시작되고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실 때는 보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도 일을 한다는 인정을 받는 것. 그 마음으로 열심히 했던 것이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을 잡아줬습니다.”
생각보다 이른 관심이었다. 2010년 드라마 ‘드림하이’로 데뷔하고 곧바로 ‘해를 품은 달’ 잔실이로 관심을 받을 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그에게 계속 증명을 요구했다. 때로는 잡을 수 없었던 기회에, 안타깝게 날려버린 시간에 아쉬움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면 승리한다’고 했던가. 그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충실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차’ 싶을 때도 있습니다. 더 큰 역할을 하는 데 대한 불안도 있었고요. 하지만 ‘내 눈에 콩깍지’를 하면서 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든 것 같아요. 원하던 기회가 막상 온대도 겁이 났고, 그런 제가 싫었거든요. 하지만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서른, 잔치는 시작됐다. 어릴 때부터 연기했기에 나이가 많아지며 존중을 받는 기분이 좋았다. 20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다소 한정적이었다면, 서른이 된 지금은 좀 더 넓은 곳을 유영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수많은 오디션을 보면서 알아봐 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때마다 버티겠다고 다짐했는데 조금씩 그 바람이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잖아요. 단순한 유행어일 수 있지만 제게는 진심이 담긴 말이에요.”
긴 작품을 마쳤기에 당분간은 여행도 가고, 쉴 생각이다. 하지만 빨리 좋은 작품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크다. 배누리의 진짜 연기인생을 아직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지금부터다. 기대해도 좋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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