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파레토의 잘 여문 콩' 해외투자기업

2023. 4. 5. 16: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출기업이 한국경제 핵심 20%
그보다 한수위가 해외투자기업
해외서 일군 혁신 자양분 삼아
국내 투자·일자리로 돌려줘

파레토 법칙은 1906년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통계학적 발견이다. 이 법칙은 20대80의 법칙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파레토가 자신의 농장에서 콩을 재배하면서 잘 여문 20%의 콩이 전체 콩 수확량의 80%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를 바탕으로 파레토는 이탈리아 인구 20%가 전체 토지의 80%를 소유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이 파레토 법칙은 경제학을 비롯한 경영학, 사회학, 심지어 생태학과 통계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응용되었다. 각 분야에서는 과연 '파레토의 잘 여문 콩 20%'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 중요한 분석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 파레토의 법칙을 한국 경제 성장 과정에 적용해 보면, 앞으로 미래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게 될 새로운 '파레토의 20% 콩'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 한국 경제를 성장시켰던 그 20%의 콩에 해당되는 기업들은 다름 아닌 수출기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물론 경제적 조건이 열악했던 당시, 수출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들이 힘겹게 노력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의 우리 수출기업들은 내수 시장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비교우위를 갖는 제품을 개발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우리 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부가가치에 크게 기여하면서, 낮은 소득 수준과 소규모의 한국 시장에서 벗어나 미국과 같은 고소득 국가와 큰 시장으로 수출했다. 이러한 업적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어, 현재도 수출이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기업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현실은 이보다 더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기업활동조사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50명 이상 고용한 기업법인 수는 1만3429개로 조사되었으며, 이 중 6509개의 기업, 즉 48.5%가 수출을 하고 있다. 수출기업들에 고용된 종사자는 약 260만명으로 전체 고용자의 61.7%에 해당하며, 매출액은 1971조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62.1%를 차지한다. 50명 이상 고용 기업을 대상으로 한 통계 자료라는 한계가 있지만, 파레토 법칙 '20%가 80%를 이끈다'가 적용되기에는 수출기업의 수가 그 예측 범위를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우리 기업들 중에는 수출기업들보다 한 단계 더 우수한 기업군이 존재한다. 해외투자기업들이다. 동일한 통계 자료를 보면 24.7%인 3313개의 기업이 해외에 최소 하나 이상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해당 기업들의 국내 고용 인원은 약 213만명(50.7%), 매출액은 1998조원(63%)이다. 과거에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에 공장을 세우기도 하였고, 판매망 구축을 위해 해외지사를 설립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혁신 기술 개발의 경로로 해외 R&D 연구소 설립 등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도체, 전지, 바이오 등 첨단기술 산업 분야의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을 위해 미국 등의 선진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해외투자기업들이 국내의 경쟁을 뚫고 수출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현지 시장 경쟁에서도 성공한 혁신기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국내 투자를 통해 고용의 양과 질을 높이고 있다. 결국 과거와 달리 오늘날 파레토 법칙에 맞는 선도적인 기업군은 수출만 하는 기업이 아니라 수출과 해외투자를 병행하는 기업들이다. 요컨대 수출이 곧 성장이라는 단순한 인식에 머물기보다는 해외투자를 통해 혁신을 이루는 기업들이 국내 경제 성장의 주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