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비극 벌써 잊었나… 97명 정원 유람선에 열쇠잠긴 구명조끼 [밀착취재]
부산서 구명조끼 자물쇠 상자에…승객 자력사용 사용불가
구명조끼 115개 있다는 선실 승객 접근못해 위치 확인불가
1994년 충주호 유람선 참사 때도 희생자 30중 27명 익사
목포 항로 어선들 위치추적기 꺼놓아 여객선 깜깜이 항해
인천 쾌속선 승객들 착석규정 아랑곳않고 왔다갔다 불안
세월호 이후 제도개선 있었으나 안전불감증·대비구멍 여전
초봄 행락철을 앞두고 지난달 17일 부산에서 운영 중인 A유람선에 승선했다. 부산에는 △태종대(5개 업체 각 1척 운영) △해운대(미포, 1개 업체 2척 운영) △오륙도(이하 각 1개 업체 1척 운영) △용호만 △남항 5곳에서 9개 업체, 총 10척의 연안 유람선이 운영되고 있다. A 유람선은 이용객 수에 따라 평일의 경우 대략 오전 11시∼오후 3시 서너 차례 운항하고, 주말이나 휴일은 7~8회 운항한다.
선장을 포함해 정원 97명인 30t 미만 소형 유람선에 실제 승선한 인원은 24명(선장 포함). 대부분 가족 등 단체 관광객이다. 오전 11시20분쯤 선착장을 출발한 유람선이 태종대 전망대 앞바다에 이르자 강풍과 함께 파도가 높게 치면서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배를 때리는 거센 물결로 요동치거나 옆으로 기울어지는 아찔한 상태에서도 승객들은 위태로운 행동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갑판에선 아무런 안전장비 착용 없이 갈매기에게 과자를 준다든지 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부서지는 파도를 느끼려는 승객들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선실 밖의 승객에게 안전장비를 나눠주거나 안전을 위해 자제할 것을 알리는 방송은 전혀 없다.
해경은 5일 이와 관련해 해당 유람선 선실 내부에 구명조끼 115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1월 점검시 확인했다는 선실 캐비닛에 담긴 구명조끼 사진을 보여줬다. 문제는 규정대로 구명조끼를 구비했다고 하더라도 열쇠에 잠긴 상자에 보관하거나, 승객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장소에 있어 비상시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1994년 10월 발생한 충주호 유람선 화재 당시 희생자 30명(전체 승선자 132명) 중 불에 타 숨진 3명을 제외한 나머지 27명(행방불명 포함)이 익사했다는 점에서 구명조끼 문제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해경 관계자는 “구명조끼를 실내나 실외 어디에 배치하라는 규정은 없다”면서도 “해당 유람선이 승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갑판에 구명조끼를 더 많이 배치하지 않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배가 기울면 승객들이 구명조끼가 있는 곳까지 찾아가기 힘들다”고 했다.
지난달 17일 전남 목포신항.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노란색 리본이 묶인 북문 철조망 너머로 바다에서 인양한 세월호가 녹슨 모습으로 육상에 거치돼 있다. 이날 연안여객선 유토피아호(287t, 최대 승선정원 365명)에 대한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의 안전점검이 있어 동행했다.
김택균 감독관은 “요즘 같은 시기에는 짙은 안개가 잦아 사고 위험이 높은 만큼 가장 먼저 항해 장비를 중점 점검하고 있다”고 했다. 배의 심장부인 조타실에 오른 김태균 감독관이 선장에게 던진 첫 질문도 일명 바다내비로 알려진 항해장치 e-내비게이션과 관련한 것이다. “감지는 잘 되느냐, 주변 선박과의 충돌위험은 없느냐”고 물었다.
선장은 이에 “최근 들어 5t 미만의 소형어선들이 어선위치추적장치(V-PASS)를 켜지 않고 다닌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10척 중 4척 정도가 이 장치를 끄고 다닌 것 같다”며 ”안개가 낀 날씨에도 이 장치만 켜고 운항하면 웬만한 해양사고 발생 확률을 확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객선 항로에 있는 어선이 V-PASS를 끄면 위치를 알 수 없어 사실상 깜깜이 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 소형 낚싯배의 경우 선장만 아는 주요 포인트를 다른 배에 알리지 않기 위해 V-PASS를 끄고 운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사익(私益)이 대형 사고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특히 호남의 핵심 항구 도시인 목포와 인기 관광지 홍도를 잇는 여객선 루트는 한국의 대표적 항로 중 하나다. 남해고속과 동양훼리가 이 항로에 총 7척의 여객선을 운영하는데 지난해의 경우 38만명이 이용했다. 하루 1041명꼴이다. 홍도는 세월호가 좌초한 진도군 조도 병풍도 앞 해상에서 90㎞쯤 떨어져 있다.
지난달 24일 오후 찾은 인천연안항에는 2만7000t급 카페리 비욘드 트러스트호가 정박해 있었다. 이 배는 길이 170m, 너비 26m, 높이 28m 규모에 승객 810명, 승용차 487대, 컨테이너 65개 등을 실을 수 있다. 세월호를 대신해 인천∼제주 항로에 2021년 12월20일 투입됐지만 잦은 고장으로 결항이 반복됐다. 2월4일에는 엔진 부품 결함 발견으로 2주간 운항이 정지됐다가 2월22일부터 여객은 태우지 않고 화물만 싣는 반쪽짜리 항해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지난달 29일 여객 탑승이 재개됐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측은 기계적 결함과 함께 운영상 과실 등 여러 원인이 더해져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안전관리체계와 처벌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있지만 해양사고는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5일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3∼2020년 관리 대상인 내항 여객선 298척 중 연평균 사고 발생 건수와 선박 척수는 각각 98.5건과 58.4척이다. 같은 기간 인명피해를 동반한 사고도 연평균 11.1건 발생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제외한 사망·실종자는 6.3명, 부상자는 24.1명으로 집계된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운항 업무를 점검·지도하는 운항관리자를 기존 해운조합에서 공공기관인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으로 바꾸고 인력 규모도 73명에서 149명(본사, 12개 센터, 40개 파견지 및 촉탁고용직 포함)으로 2배 이상 늘렸다.
안전기준 위반 시 처벌수준도 대폭 강화했다. 사업자 대상 과징금을 기존 최대 30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상향했다. 또한 여객 금지행위 위반 시 과태료 또한 최대 100만원에서 최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개정했다.
정부의 제도보완 노력에도 구멍은 여전하다. 대표적으로 선박이 의무적으로 구비해야 할 구명조끼 수다. 세월호 참사 후 2015년 7월 개정된 선박안전법 행정규칙(선박구명설비기준)은 제2종선(국내운항 여객선)이 구비해야 할 구명조끼의 수량을 최대승선 인원의 100%에서 110%로 늘리고 어린이용 10%, 유아용 2.5%를 추가로 갖추도록 했다. 이에 비해 유선(遊船)및도선(渡船)사업법 시행령은 유람선의 경우 여전히 최대 승선인원의 100%를 갖추도록 하면서, 소아용을 별도로 20%를 준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람선이라도 먼저 선박안전법 행정규칙의 규정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구명조끼를 승선 인원의 최소 110%를 준비해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유·도선사업법 시행령에 따라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또 유·도선사업법 시행령에서는 단순히 선박안전법 행정규칙과 달리 ‘소아용 구명조끼’라고만 규정해 크기가 다른 어린이용과 유아용 구명조끼의 현실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도선사업법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용어 부분이나 전반적으로 수정과 관련해 논의를 해보겠다”며 “법이 만들어진 지 오래돼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안전관리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개선과 함께 안전의식 확산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영수 한국해양대학교 항해융합학부 교수는 “선박 안전관리와 관련해 공공의 역할이 확대되고, 처벌 범위도 기존 실무자 위주에서 회사까지 확대한 것은 분명 안전 제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 하더라도 잘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제는 정부가 안전문화 확산에 집중해야 할 타이밍이다”라고 말했다.
부산·목포·청주·=오성택·김선덕·윤교근 기자, 채명준 기자, 인천=강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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