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원 초과 아파트’에 서로 다른 기준 적용한 헌법재판관들… 왜?

심윤지 기자 2023. 4. 4. 15: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일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 문재인 정부의 2019년 ‘12·16 부동산 대책’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정부가 정함으로써 국민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 결정은 재판관 의견이 5대 4로 갈릴 정도로 팽팽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헌법재판관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그런데 쟁점 중 하나인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주담대 규제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는지’를 놓고 재판관들은 서로 다른 기준을 인용했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동향조사를 인용해 “전국 아파트 중 15억원 초과의 ‘초고가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문형배 재판관은 민간 통계인 KB국민은행 시세를 인용해 “15억원은 서울 아파트 평균적 시세에 불과하다”고 봤다.

판단근거로 삼은 통계에 따라 동일한 시기의 부동산 시장 상황을 보는 관점이 서로 갈린 것이다.

15억원 초과 주택… ‘일부’와 ‘평균’ 사이

합헌의견을 낸 다수 재판관들은 2019년 12월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동향조사 보고서를 근거로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담대 금지는 당시 주택 가격 상승을 주도하던 일부 강남권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조치로 판단했다.

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당시 전국 주택(연립·다세대 등 포함) 가격 평균은 3억1073만원이었다. 전국 아파트가격 평균은 3억5178만원,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8억2722만원이었다. 즉 15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주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반면 문형배 재판관은 초고가 아파트 기준을 ‘시세 15억원’으로 정할 경우, 규제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고 봤다. 공시가격과 달리 시세는 계속해서 변동하고, 실제로도 대책 후 2년 동안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내 시세 15억원 초과 주택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KB국민은행 부동산 시세였다.

문 재판관은 “KB국민은행 제공 시세에 따르면 2021년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1639만원이며, 최근에 분양된 30평(84㎡)이상의 한강 이북 11개구 아파트 시세도 대부분 15억원 이상으로 보도됐다”며 “15억원을 넘는 아파트는 더 이상 ‘초고가 아파트’가 아닌 평균적 시세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어떤 자료를 인용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4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각 재판관들이 KB부동산 통계가 한국부동산원의 통계보다 더 신뢰성이 높다고 판단해 서로 다른 자료를 인용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더 적절한 근거에 따라 인용한 것”이라고 답했다.

부동산원 통계와 KB시세 뭐가 다를까

같은 기간에 진행된 조사인데, 한국부동산원과 KB시세 결과값은 왜 다르게 나타날까. 이는 측정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해 무엇이 더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KB시세는 공인중개사들이 해당 단지 평형 전체의 실거래 이력을 참고해 ‘거래 가능 가격’(상한가·일반가·하한가)를 입력한 뒤, 이를 칼리 방식으로 지수화한다. 은행권 대출 심사에 주로 활용되지만, 중개사들이 입력하는 가격 정보 기반이라 하락 변동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집주인들이 상승기엔 호가를 빨리 올려도, 하락기에는 천천히 내리기 때문이다.

부동산원 통계는 전문조사원이 표본 주택의 ‘거래 가능 가격’을 입력한 뒤, 이를 제본스 방식으로 지수화한다. 표본 단지의 실거래가를 우선으로 하되, 거래가 없으면 인근 단지 호가·실거래가를 참고한다. 부동산 정책 수립의 참고 자료로 쓰이는만큼 ‘실거래가 뻥튀기’를 걸러내고 거래량이 적은 주택까지 포함한 추세적 가격 흐름을 볼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조사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문제는 통계 간 편차가 커질수록 수요자들이 느끼는 혼란도 커진다는 것이다. 2019년 말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서 부동산원 통계에 기반한 부동산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커졌는데, 이때도 부동산원 통계가 KB시세에 비해 실거래 체감률이 낮은 것이 문제가 됐다. 부동산 정책을 두고 헌법소원이 청구되고, 헌법재판관들의 결정이 정반대로 나뉜 것도 통계를 둘러싼 혼란을 반영한다.

황관석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 부연구위원(박사)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2월 한국부동산원공통주택실거래가 지수 대비 한국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는 각각 0.79배, 0.85배를 기록했다. 실거래가가 1억원 오르는동안 부동산원 지수는 7900만원, KB국민은행 지수는 8500만원 올랐다는 뜻이다.

황 부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부동산원 통계는 KB시세보다 평균 가격이 낮게 나오고, 상승 변동도 보수적으로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며 “부동산원 통계를 인용한 재판관들은 15억원 이하 주택을 일부라고 봤지만, KB시세를 인용한 재판관들은 그렇지 않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