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X파일]박영수 차명지분 의혹...김만배 "천화동인·화천대유는 박영수 돈으로 설립"
① 2015년 4월, 박영수가 화천대유로 보낸 5억 원..."화천대유 및 천화동인1호 자본금으로 쓰였다"
② 단순 대여금 아닐 가능성...김만배 "박영수가 대장동 사업에 생색을 낼 수 있는 외형 만든 것"
③ 김만배 "하여간 (박영수 5억은) 정리가 됐다"...그러나 돈 갚은 내역 없어 지분으로 챙겨준 의혹
④ 은행권 컨소시엄 관여 등 2021년에 박영수 혐의 자세히 확인한 검찰, 강제 수사는 왜 안 했나
뉴스타파는 대장동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기록 40,330쪽을 확보해 대장동 비리의 실체를 파헤치는 보도를 진행 중이다. 그중 하나가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대장동 업자들과의 유착 의혹이다.
뉴스타파가 관련 의혹을 보도한 지 두 달 만에, 검찰이 박영수 전 특검을 압수 수색했다. 박 전 특검은 대장동 업자들이 사업 초기에 은행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도움을 주고, 시가 2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021년 9월부터 대장동 사건을 수사했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박영수 관련 혐의를 자세하게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장동 업자들이 박영수의 로펌 사무실에서 사업을 준비하고, 은행권 연결을 청탁해서 실제로 이뤄지는 등 박영수가 적극 개입했단 대장동 업자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이다. 그러나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는 없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40,330쪽 대장동 수사 증거기록을 분석한 결과, 대장동 사업을 이끈 '화천대유자산관리(이하 화천대유) 및 천화동인'의 설립 자본금을 대준 당사자가 박영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진 박영수가 김만배에게 5억 원을 빌려준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단순한 '대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기록 곳곳에 나온다. 박영수가 대여금 명목으로 돈을 보냈을 뿐, 실제론 지분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김만배 "천화동인·화천대유 자본금은 박영수가 보내준 돈으로 해결"
김만배는 2015년 2월 6일 화천대유를 설립했다. 설립 자본금은 1천만 원이다. 달포 뒤인 2015년 3월 26일, 화천대유가 포함된 하나은행 컨소시엄이 대장동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 1주일 뒤인 4월 3일, 김만배는 화천대유의 자본금을 3억 1천만 원으로 늘린다.
2021년 10월 11일(1회)은 검찰이 김만배를 처음 조사한 날이다. 검사는 첫 조사부터 박영수 전 특검과의 수상한 돈거래를 캐물었다.
검사가 "피의자는 박영수로부터 화천대유자산관리의 자본금 1,000만 원 및 증자대금 3억 3,500만 원을 빌린 사실이 있는가요?"라고 물었다. 김만배는 "네, 맞습니다. 그 돈으로 화천대유 자본금을 넣은 것이 사실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박영수도 돈이 없는 관계로 이기성으로부터 돈을 빌려 다시 제게 빌려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검사에게 설명했다.
김만배 "박영수가 대장동 사업에서 생색을 낼 수 있는 외형을 만들려고 했다"
이기성은 박영수의 외사촌으로, 화천대유의 대장동 아파트 분양을 독점한 분양업자다. 지금까지 박영수는 "5억 원은 이기성이 김만배에게 빌려준 돈이고, 나는 이기성에게 계좌를 빌려줬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날 김만배의 진술은 박영수의 해명과 배치된다.
2021년 11월 21일 조사(11회)에서 검사는 다시 김만배에게 "이기성이 박영수의 계좌를 거쳐서 피의자에게 차용을 해준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데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김만배는 "박영수에게 빌리는 것으로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제가 박영수에게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해 좀 생색을 낼 수 있는 외형을 만들어주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즉, 화천대유로 입금된 5억 원은 명목상일지라도 박영수가 빌려준 돈이란 뜻이다. 박영수가 화천대유 자본금을 대줬기 때문에, 그가 훗날 생색을 낼 수도 있다는 게 이날 김만배의 진술 취지다. 이런 김만배의 진술은 "이기성에게 계좌만 빌려줬을 뿐"이라는 박영수의 해명과도 다르다.
화천대유는 김만배가 주식 100%를 가진 회사다. 천화동인1호는 화천대유가 소유한다. 결과적으로 이 두 법인 모두 김만배가 지배하는 회사다. 김만배는 본인 회사의 자본금을 박영수의 돈으로 채운 셈이다.
당시는 딱히 돈이 부족한 상황도 아니었다. SK 계열사인 '킨앤파트너스'가 대장동에 4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결정하고 일부를 먼저 지급한 때였다. 박영수가 자본금을 빌려주는 '외양(계좌 이체)'을 만들어 놓고, 실제로는 사업 지분(생색)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이유다.
"박영수에 5억원 갚았다"지만, 돈 지급 내역 없어...지분으로 챙겨주고 숨긴 의혹
2021년 11월 18일 조사(10회)에서, 검사는 화천대유의 계좌 거래 내역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박영수가 김만배에게 5억 원을 입금한 날짜는 2015년 4월 3일이다. 입금 당일에 화천대유 자본금이 '1천만 원 → 3억 1천만 원'으로 증액됐다.
이날 조사에서 김만배는 "화천대유, 천화동인 자본금을 만들기 위해 (5억을) 빌린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박영수로부터 빌린 5억 중 3억 원은 화천대유의 증자 대금으로, 나머지 2억 원은 천화동인 1호 등을 만들며 자본금으로 썼다는 것이다.
검사는 "박영수 계좌에서 받은 5억 원은 상환하였나요?"라고 물었다. 김만배는 "예"라고 답했다. 검사는 "박영수에게 5억 원을 따로 갚았나요?"라고 다시 물었다. 이에 김만배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간 정리가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영수로부터 빌린 5억 원을 갚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 증거기록을 살펴보면, 화천대유나 천화동인이 박영수에게 돈을 보낸 내역은 확인되지 않는다. 박영수는 또한 "이기성에게 계좌를 빌려줬을 뿐이고, 김만배에게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줄곧 유지해왔다.
결국 "박영수 돈을 갚았다"는 김만배의 검찰 진술이 거짓이 아니라면,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지난 1월 4일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만배 240억대 비자금...‘50억 클럽’ 박영수 전 특검에 돌려서 건넨 정황>의 내용처럼 딸이나 친인척 등 제 3자에게 대신 돈을 건넸을 가능성이다. 또 다른 하나는, 화천대유 혹은 천화동인1호에 대한 지분을 이면으로 약속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당시 검사는 이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선 추궁하지 않았다.
대장동 일당의 아지트는 박영수 로펌...박영수, 은행권 컨소시엄에도 관여 정황
최근 검찰의 압수 수색으로 박영수에 대한 여러 혐의가 불거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부국증권' 관련 내용이다. 그런데 이 혐의는 2021년 11월, 수사 초기에 이미 대장동 업자들이 검찰에 진술했던 내용이다. 이번에 새롭게 나온 진술이 아니란 얘기다.
박영수 로펌은 대장동 일당의 '아지트'였다. 대장동 업자들은 여기서 은행권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며 사업의 밑그림을 그렸다. 하나은행, 우리은행, 부국증권, 신한은행 등의 관계자들도 박영수 로펌을 드나들었다.
2021년 11월 18일 검찰 조사(10회)에서 김만배는, 박영수가 은행권 컨소시엄 구성에 관여한 정황을 진술했다. 우선 김만배는 "정영학의 부탁을 받고, 박영수에게 부국증권을 사업에서 빼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실토했다. 이어 "(부국증권 빼달라고) 저는 박영수 고검장에게 말했습니다"라고 재차 언급했다.
남욱, 정영학 등의 검찰 조서에도 '우리은행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박영수 덕분'이란 내용이 나온다. 그 당시 박영수는 우리금융지주 이사회의 의장을 맡고 있었다.
"박영수 측이 대장동 사업 준비 주도"...복수의 진술 있는데, 강제 수사 왜 안 했나
대장동 업자들이 박영수가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강남'을 본거지로 삼은 건 2014년 9월쯤부터다. 성남도시개발공사의 대장동 사업자 공모가 난 시점은 2015년 2월이다. 공모 5개월 전부터 '강남'에 모여서 사업을 설계했단 얘기다.
대장동 업자들의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그 당시 사업 준비 실무를 총괄한 건 양재식 변호사다. 그는 박영수와 같은 로펌 소속으로 2016년 국정 농단 특검의 특검보로 활동했다. 2014년 11월 5일자 '정영학 녹취록'에는 정영학이 "우리은행. 저는 진짜 진정한 신의 한 수는 양 변호사님이에요"라고 남욱에게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40,330쪽에 달하는 검찰 증거기록을 종합하면, 박영수와 양재식은 대장동 사업 준비를 사실상 주도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다른 인물을 내세웠다. 당시 남욱이 만든 회사인 '서판교자산관리'의 대표는 남욱이 아닌 권 모 변호사였다. 양재식이 앉힌 인물이다.
검찰은 박영수 측이 '바지사장'까지 내세웠단 사실을 2021년 10월에 파악했다. 하지만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검찰은 박영수와 양재식을 압수 수색했다.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 지, 18개월 만이다.
박영수 전 특검 측은 “대장동 개발 사업에 참여하거나 금융 알선 등을 대가로 금품을 받거나 약속한 사실이 없다”면서 차명 지분 의혹과 50억 수수 약속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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