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 이제 원위치?

2023. 4.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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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비대면 진료 법제화에 의욕
소비자 중심 두고 의사 ·약사 ·플랫폼 기업 간 묘안 찾아야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해 2월 서울의 한 이비인후과병원에서 의사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전화 걸어 비대면 진료를 보고있는 모습. 사진=한국경제DB



사례1 직장인 : 30대 초반 직장인 A 씨는 얼마 전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앱)을 처음 이용했다. A 씨는 “약국에서 파는 일반 감기약으로는 잘 안 낫더라. 병원 한 번 가면 대기가 기본 30분이라 시간을 내 직접 병원에 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면서 “스마트폰 하나로 의사의 진료를 받고 처방된 약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가벼운 감기 등은 앞으로 앱을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례2 워킹맘 : 서울 사는 맞벌이 주부 B 씨는 지난달 네 살배기 딸이 갑자기 열이 난다는 어린이집의 연락을 받았다. 곧장 회사를 나올 수 없어 퇴근 후 딸과 함께 동네 소아청소년과를 방문했지만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B 씨는 전에 들었던 비대면 진료 앱을 떠올리고 급히 접속해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그는 “대면했을 때보다 의사 선생님이 처방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주신다”며 급할 때 비대면 진료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례3 도서 지역 환자 : 30년째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60대 남성 C 씨.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해 진료를 받고 처방 약을 받아야 하지만 섬에 살고 있어 오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추석에 찾아온 아들이 비대면 진료에 대해 알려주면서 일상이 바뀌었다. C 씨는 “집에서 영상으로 의사도 만나고 자고 일어나면 약도 배달돼 정말 편해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급속도로 퍼지자 정부는 2020년 2월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환자가 있는 병원이 가장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다양한 데이터가 쌓였다. 의료 기관도 환자도 적극 참여했다. 특히 의료 취약 지역 주민들과 어린아이 이용이 늘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비대면 진료는 감염병 위기 대응 심각 단계 동안 ‘한시적으로’ 허용된다는 조건이 있었다.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열리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보건긴급위원회 회의에서 국제적 공중 보건 비상 사태(PHEIC)가 해제되면 한국도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코로나19 위기 단계를 현행 ‘심각’에서 ‘경계’ 혹은 ‘주의’로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의 미래를 놓고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틈새시장 공략한 플랫폼 업체들, 반발하는 의료계

환자가 의사와 전화 통화나 영상으로 진료를 받으면 동네 약국으로 처방전이 가고 택배 업체를 통해 약이 환자의 집 문 앞에 배달된다. 이 같은 행위는 불법이다. 의료법 17조와 33조, 34조를 위반하는 행위다. 정리하면 의사와 환자 간에는 직접 얼굴 보고 하는 진료만 합법이란 얘기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라는 이벤트가 틈새를 만들었다. 플랫폼 업체들은 틈새를 이용해 변화를 이끌었다. 닥터나우·굿닥 등 비대면 진료를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에 보건소나 전담 병원과의 직통 연결에 실패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몰렸고 이후 입소문을 타며 일반 진료를 받기 위한 환자들이 앱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약 30곳에 이른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시장은 ‘한시적’으로 허용된 위태로운 시장이다. 코로나19 사태의 터널이 끝을 보이는 현재 제도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정부·의료계와 산업계 간 비대면 진료를 두고 격론이 오가는 이유다.

의료계에서 비대면 진료는 10년 넘게 지속된 단골 논쟁거리다. 그들이 반대하는 핵심 근거는 오진 가능성이다. 환자와 의사가 대면하지 않고 진료가 진행되면 의료 질과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이나 의료 영리화 등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특히 비대면 진료가 보편화되면 대형 병원의 ‘환자 쏠림’이 발생해 동네 의원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주장도 폈다.  

비대면 진료를 의료계가 주도하지 못하고 플랫폼 업체가 끌고 가자 의료계의 고민은 더 커졌다. 병원이든 약국이든 플랫폼에 종속돼 줄 세우기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지만 플랫폼을 활용해 쏠쏠하게 돈을 버는 의사들이 하나둘 생겨나자 슬금슬금 참여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실제 비대면 의료를 ‘전면 반대’했던 의사들의 평가가 일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4월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원격 의료 정책 현황과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의협 회원을 대상으로 한 원격 의료(비대면 진료) 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 955명 가운데 65.2%(623명)가 원격 의료에 반대표를 던졌다. 여전히 찬성보다 반대가 높지만 의사들의 원격 의료 반대 여론이 이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2014년 8월(회원 6357명 대상) 진행한 원격 의료 시범 사업 설문 조사에서는 반대가 95%(6053명)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코로나19 사태 2년간은 ‘상급 병원 쏠림’이 나타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 기간 참여 기관의 93.6%가 의원급 의료 기관으로, 전체 진료 건수의 86.2%에 달한다. 
 

 ◆정부·의료계·산업계 방침은

정부는 비대면 진료 법제화에 적극적이다. 비대면 진료가 윤석열 정부의 120대 국정 과제에 포함됐다. 복지부는 한시적으로 도입한 비대면 진료를 상시 제도화하는 것을 추진하면서 도서·벽지 환자 등 의료 취약지·사각지대 환자를 위해 우선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초진(첫 진료) 환자보다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적용하고 상급 병원보다 의원급 의료 기관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해 의료계와의 갈등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와 의협은 지난 2월 9일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2차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합의했다. 다만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재진, 의원급 의료 기관 대상 등 원칙적인 방침을 확인한 상태일 뿐 제도화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것은 아니다”면서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의 보조이지 대체로 고려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업체와 약사 단체의 반발도 여전하다. 플랫폼 업체는 초진 환자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진 환자만 비대면 의료를 적용하면 수요가 크게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앱 이용자 대부분은 가벼운 증상을 가진 초진 환자다. 재진 환자만 대상이 된다면 기존 이용자 90%는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는 기존 약국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약국이 복약 지도보다 대량 조제 및 배송에만 초점을 맞추는 공장형 약국으로 전락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유통 중 변질·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 문턱을 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월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비대면 진료 법안이 상정됐지만 더불어민주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거셌다. 

“비대면 진료 90%, 대면 진료 10%인 비대면 전문 병원이 생길 수 있다”, “현행 수가 130%는 높다”, “복지부는 약 배달, 공적 전자 처방전 등 아무것도 검토하지 않았다” 등의 지적이 나왔다.
 

 ◆의료 취약 지역, 워킹맘 이용률 증가

그래픽=송영 기자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코로나19 사태 동안 진행된 비대면 진료의 편의성을 맛본 이용자는 크게 늘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가 처음 허용된 2020년 2월 24일부터 2023년 1월 31일까지 전국 2만5697개 의료 기관에서 1379만 명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 3661만 건이 실시됐다. 이용자는 첫해 대비 3년 만에 1300만 명 늘었고 진료 건수는 10배 이상, 참여 의료 기관은 3배 정도 증가했다. 

설문 조사 결과 재이용 의향은 87.9%, 만족도는 77.8%로 높았다. 병원에 자주 방문하기 힘든 섬 지역 등에서 특히 이용이 많았다. 복지부가 관리하는 ‘의료 취약 지역(98개의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의 비대면 진료 이용량은 2020년 5만4500명에서 2022년 94만7600명으로 2년 새 약 17배 증가했다.

야간 진료를 하는 소아과가 부족해 아침부터 아픈 아이들이 몰리는 ‘소아과 오픈런’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도 제공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갈수록 줄면서 ‘소아 진료 대란’ 조짐까지 보이자 부모들의 비대면 진료 이용이 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영유아·어린이(0∼14세)의 비대면 진료 이용량은 195만6000여 건이다. 제도 시행 첫해인 2020년 5만7000여 건과 비교해 2년 사이 약 34배 증가했다.

비대면 진료를 두고 정부·의료계와 산업계는 각자의 시각차로 신경전이 팽팽하다. 환자(이용자)의 안전과 편의성을 각자의 근거로 대지만 정작 환자의 안정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논의는 아직 수면 아래에 있다. 예를 들어 “비대면 의료 구조에서 우리가 병을 상담하는 상대방은 진짜 의사일까” 같은 근본적 질문은 나오지 않고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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