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건축 세계 <2> 설국열차] 꼬리 향해 달리는 열차와 함께 사는 열린 공간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2023. 4. 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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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 사진 네이버 영화

봉준호 감독의 2013년 작품 ‘설국열차 (Snowpiercer)’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살포한 인공 냉각제가 오히려 새로운 빙하기를 초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계를 덮친 거대한 한파로 인해 거의 모든 것이 멸종된 상황이다. 마지막까지 생존한 생명체의 유일한 보호처는 끊임없이 궤도를 질주하고 있는 열차 한 대뿐이다.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성균관대 건축공학,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 바젤 사무소 건축가

2011년 시나리오 완성 직후, 감독은 길이 25m의 객실 칸 60개로 구성된 열차의 도면을 그렸다. 열차는 각 칸이 나란히 배열돼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공간의 기계장치다. 진행 방향에 따라 열차의 양단은 머리 칸과 꼬리 칸이라는 위계를 갖는다. 영화에서 열차는 아프리카부터 툰드라까지 이어진 43만8000㎞의 순환 궤도를 1년에 한 바퀴씩 반복해서 돌도록 설계됐다. 따라서 한 번 달리기 시작한 열차의 진행 방향은 항상 고정되며 처음 설정된 머리와 꼬리의 위계는 영원히 뒤바뀔 수 없다.

봉준호 감독 ‘설국열차’ 도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불평등의 선형 공간

불행하게도 열차는 성경 속 ‘노아의 방주’처럼 안도와 평화가 존재하는 안식처가 아니었다. 감독은 1.5㎞의 긴 선형 공간을 불평등의 구조로 정의했다. 꼬리 쪽의 20개 칸은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으로 연명하는 빈민들의 영역으로, 머리 쪽은 신선한 음식, 술, 마약까지 즐기는 특별한 자들의 영역으로 설정했다.

양단 영역 간의 차별은 공간의 구조와 점유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빈민들은 창문 없는 어두운 객실에 비좁게 쌓인 침대에서 생활한다. 반면 선택받은 자들은 창이 있고 구별된 개인 공간을 제공받는다. 미용실, 수영장, 사우나, 클럽 등 공용 칸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최전방에 위치한 엔진 칸 전체는 열차의 절대권력자 개인에게만 오롯이 할애된다.

열차의 불평등한 선형 구조는 지배자에 의한 접근성과 정보의 전유로 완성된다. 오직 지배자 계층만이 머리 칸에서 꼬리 칸으로 향하는 문들을 열어 접근할 수 있고, 빈민들은 꼬리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따라서 영화의 주요 사건인 빈민들의 반란은 그동안 통제로 불가능했던 꼬리 칸에서 머리 칸 방향으로의 역이동을 상징한다. 카메라가 반란자들의 동선을 따라 각 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쫓는 중, 열차의 불평등한 직선 구조가 깨지는 순간이 발생한다. 열차가 거대한 원형의 궤도를 돌며 휘어지면서 직선상으로 멀리 떨어진 두 객실이 극적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화 내내 견고하게 존재했던 머리 칸과 꼬리 칸의 이분법적인 차별을 근본적으로 깨트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꼬리를 문 뱀, 혹은 양단을 체결한 진주 목걸이처럼 열차의 머리 칸과 꼬리 칸이 맞붙어 그 구별이 상쇄된 환형 공간에 대한 상상이다.

쿠바의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 사진 아틀라스 옵스큐라

통합의 환형 공간

극적으로 양극단이 서로를 마주한 설국열차와 닮은 공간이 현실에도 있다. 2020년 울창한 숲과 닿아있는 스위스 로잔대 캠퍼스의 가장자리에 137m 지름의 원형 건물이 세워졌다. 목재와 콘크리트의 따뜻한 질감을 가진 9층 규모의 건축물은 녹음이 우거진 둥근 안뜰을 품고 있는 환형이다. 환형은 두 개의 동심원 사이에 있는 도넛 모양의 도형을 뜻한다. ‘소용돌이(Vortex)’로 명명된 건물은 청소년 동계올림픽을 위해 건설됐고, 많은 수용 인원 덕분에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선수가 한곳에 머문 올림픽 기숙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올림픽이 끝난 현재 이 건물은 1100여 명의 학생과 학자가 모여 생활하고 있는 작은 도시다. 각 층의 내부에는 규모와 구조가 상이한 9개 타입의 주거 유닛이 공존할 뿐만 아니라 1층과 9층에는 공용 시설이 배치되어 건물 안에 살아있는 도시를 만든다.

건물의 설계자인 스위스 취리히의 건축 설계회사 뒤리크(Dürig AG)가 강조하는 개념은 ‘함께 사는 삶’이다. 이 개념은 건축물의 형태인 환형의 기하학적 구조를 통해 나타난다. 원은 한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건물 내 존재하는 유닛들은 그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 동등한 위계를 갖는다. 실제로 이 건물은 외부에서 볼 때 모든 면이 주요한 정면이 되며, 각 구성원은 평등하게 안뜰을 향한 조망권을 갖는다. 이에 더해, 모든 층은 나선형의 완만한 외부 경사로를 통해 균일하게 연결된다. 커뮤니티 통로를 따라 걸으면 1층 안뜰부터 시작해 모든 가구를 거쳐 제네바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공용 옥상 테라스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구조다. 설계자는 이 2.8㎞ 길이의 공용 통로가 모든 구성원을 공간적으로 연결할 뿐 아니라 상호 간에 열린 교류를 통해 연대와 통합을 촉진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스위스 로잔대 내부 기숙사 ‘소용돌이(Vortex)’. 사진 뒤리크

평등한 구조의 균형

‘소용돌이’ 건물 같은 평등의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연대의 균형을 면밀히 유지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만약 환형 구조에서 특정 공간이 균형을 깨고 원의 중심점을 점유한다면, 전체 공간 시스템은 ‘팬옵티콘 (Panopticon)’ 형태로 전락할 수 있다.

‘팬옵티콘’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감옥 건축 양식으로서 ‘모두 본다’는 뜻을 가진 용어다. 죄수를 수용하고 있는 6층 규모의 원형 감옥과 그 중심에 놓인 간수의 감시탑 구조를 의미한다. 늘 어둡게 유지되는 감시탑으로 인해 수용자들은 간수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감시당하는 듯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렇듯 전체의 평등 구조는 작은 예외나 일탈만으로도 쉽게 변질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건축 공간에만 국한되는 사실은 아닐 것이다. 영화와 건축에 내재한 의미를 거울삼아 우리의 현재를 다른 각도에서 반추해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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