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담보로 일하는데 “건폭”이라뇨?

한겨레 2023. 4. 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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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조종사의 항변
지난 3월16일 인천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순간적으로 부는 바람에 의해 2톤짜리 갱폼(대형 거푸집)이 타워크레인 조종실 창문에 부딪히며 창문이 깨졌다. 조아무개(41)씨는 창문이 없는 채로 안전벨트도 없이 약 15분을 조종실에 더 머물러야 했다. 본인 제공

[왜냐면] 이경수 |  33년차 타워크레인 조종사

전국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종일 진동과 소음이 멈추지 않는 조종석에서 무거운 건설 자재를 나른다. 누구보다 위험한 곳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을 수행하느라 온갖 고생은 다 하는 사람인데 요즘은 삶의 보람이 느껴지질 않는다. 정부가 언론을 통해 연일 조종사 때리기에 몰두한 탓이다.

타워크레인은 사고가 발생하면 근처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까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종사는 특별한 작업을 앞두고 있거나 강한 비와 돌풍을 거스르며 일을 할 땐 온전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는다. 콘크리트 타설이 있는 날엔 날씨와 상관없이 타설공들이 작업을 마칠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다 분배기를 내려주고 퇴근해야 한다. 묽은 콘크리트를 고르게 분사하는 기계가 분배기인데 네 곳의 철제 다리에 묻힌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일을 끝내야 옳다. 그러나 시간을 상당히 지체할 때도 잦은데, 타워크레인에 매달린 3.5톤의 분배기가 힘을 받으면갑자기 튀어 오르기도 한다. 이럴 땐 타워크레인 전체가 흔들려서 조종사가 진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운행 중 중량물의 변화가 심해 붐(팔 부분)이 연신 출렁거리는 ‘콘크리트 버킷’ 작업은 타워크레인이 해야 할 주 업무가 아니기에 더욱 꺼려진다. 아파트 공사장 외벽 맨 위로 돌아가며 고정한 갱폼(거푸집)도 마찬가지다. 설계한 구조와 면적에 따라 크기가 제각각인데 폭이 좁은 것은 1톤 트럭 정도고 큰 것은 트레일러 길이만 하다. 높이는 아파트 4층보다 더 높아 약한 바람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보통 슬라브 콘크리트를 타설한 다음 날 위층 공사를 위해 타워크레인 훅(고리)에 갱폼을 하나씩 매달아 놓고 작업자들이 건물과 고정된 볼트를 풀고서 지렛대로 떼어 내면 천천히 들어 올린다. 무게도 서로 달라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무게를 정확하게 추정해 훅을 당기고 붐의 각도를 맞춰 놓느냐에 따라 갱폼을 떼어 냈을 때 장비에 와 닿는 충격을 줄이고 작업 능률을 올릴 수 있다.

타워크레인은 마치 커다란 낚싯대와 같다. 조종사가 갱폼의 무게를 잘 못 맞추면 벽에서 떼어 낸 순간, 틀린 무게만큼 위아래로 요동치게 된다. 이 작업은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더욱 꺼려진다. 그러나 건설현장 대부분은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그날 계획한 공정은 밀어붙이려고 한다. 결국 한 번 더 시도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고, 조종사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만다. 특히 측벽에 있는 갱폼은 타워크레인이 들어 올릴 수 있는 제한 하중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많아 날씨가 좋을 때도 몹시 긴장된다. 간혹 떼어낸 수 톤의 갱폼이 강한 바람에 대형 연처럼 휘날리다 방향이 뒤집히기도 한다.

건설현장의 구조물은 매일 조금씩 위로 성장하는 형태라서 안전의 빈틈은 늘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타워크레인 작업은 신호수 말고도 줄걸이 작업자 2명을 상하 2조로 배치하게 돼 있다. 크고 위험한 물건을 여러 차례 취급하는데 혼자보단 둘이 낫고, 무전기를 휴대한 사람은 신호에만 전념키 위함이다. 그런데 일부 현장은 아직도 혼자 신호하면서 물건을 받기도 한다. 꼭 필요한 인건비마저 아끼려는 건설업체가 있다 보니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여러 안전관리자의 몫까지 해낼 수밖에 없다.

현장 일을 마쳤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늘 혼자이다 보니 좁은 사다리를 타고 바닥까지 무사히 내려와야 마음을 놓는다. 공중에선 가끔 숨도 못 쉴 만큼 바람이 분다. 어떨 땐 두 다리가 바람에 밀려 사다리에 잘 닿지 않아 한 칸 한 칸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30년 경력의 조종사 급여가 자동차 회사 16년 차 연봉의 절반 정도다. 사람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것치곤 너무 낮은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들은 늘 고용 불안에 떤다. 근무하던 현장이 끝나면 자리가 없어 최소 6개월에서 1년 반 정도 실업자가 된다.

이런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최근 월례비를 받았단 이유로 ‘건폭’으로 내몰린 상태다. 이들은 월례비를 공기 단축을 위해 건설업체들이 시키는 대로 악천후에도 무리한 작업을 하고, 휴식 없이 생리 현상을 참아가며 연장 근무한 성과급으로 본다. 건설업체들이 조종사들에게 과도한 작업을 요구해서 얻은 수익이 훨씬 많음에도 힘없는 노동자만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 매우 아쉽다. 정부는 이들의 인간다운 삶과 고용 안정에 제도적 빈틈은 없었는지 면밀히 살피는 것부터 해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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