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위를 원자력규제위로 개혁해야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2023. 4. 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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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 교수의 원전 정치경제학<11>

윤석열 정부 들어 수명연장을 추진 중인 고리2호기가 오는 8일 40년 운영허가 만료로 일단 2년 정도 가동을 중단한다. 고리2호기는 1983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해 오는 8일로 최초 운영허가가 끝난다. 문재인 정부 때 한수원이 계속운영 허가를 신청하지 않아 폐로 절차에 들어가기로 한 고리2호기를 윤석열 정부는 10년 더 수명 연장을 강행하고 있다.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서 열린 고리 2호기 수명연장과 핵폐기장화 반대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국제신문DB


산업부는 지난달 29일 노골적으로 가동 중단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 산업부는 이날 “운영허가 만료 이후 원전을 계속운전하기 위해서는 안전성 심사와 설비 개선 등 3, 4년에 걸친 절차가 필요한데, 고리2호기는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계속운전을 위한 절차 개시가 늦어져 일정 기간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운영허가 만료 전인 2019, 20년부터 수명연장을 준비했어야 만료와 동시에 중단 없이 계속운전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통상 계속운전에 필요한 최소기간은 3년6개월 내외로 알려져 있다. 한수원 자체 안전성·경제성 평가와 이사회 의결까지 약 6개월, 주기적안전성평가보고서(PSR) 제출과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RER) 주민공람 및 의견수렴에 6개월, 규제당국의 PSR 심사에 약 18개월, 운영변경허가 심사 및 승인과 설비개선에 약 1년이 각각 걸린다.

정부는 계속운전을 위한 심사·평가기간을 최대한 단축해 이르면 2025년 6월 원전을 재가동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정부는 가동중단기간 단축을 위해 사실상 총력전을 펴고 있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 시절인 지난해 4월부터 한수원이 안전성평가보고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고, 지역주민 반발에도 방사선환경영향평가 공청회 등을 열었다. 한수원은 이달 안에 원안위에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정부는 작년 말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을 개정해 계속운전 신청기간을 허가만료 10~5년으로 변경했다. 내달 고리2호기를 시작으로 내년 9월 고리3호기, 2025년 8월 고리4호기, 2026년 9월 한빛2호기, 같은해 11월 월성2호기, 2027년 12월 한울1호기와 월성3호기가 각각 운영허가가 끝난다. 이들 원전의 지체 없는 재가동을 위해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는 설명이다.

시민사회단체는 국민적 동의 없는 수명 연장을 성토하면서 졸속 인·허가가 될 공산이 크다고 우려를 내비쳤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원안위가 작년 말 업무보고 때 최신 기술 기준으로 안전 기준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아직 제대로 정립된 게 없다. 졸속 원전 수명 연장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최근 원전부지서 활성단층이 5, 6개 발견됐다. 수명연장 인허가 시 원전에 미치는 영향을 엄밀하게 보고 다시 설계해야 한다. 제대로 심사한다면 10년 더 걸릴 수도 있고, 아예 원전을 해체하고 다시 짓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투뉴스, 2023년 3월 29일).

원전 즉 핵발전에 관한 한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노후원전인 고리2호기 수명 연장 허가의 권한은 법적으로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갖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고리2호기의 안전성을 원안위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해 독립적으로 가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윤 정부는 원안위 결정과 관계없이 2025년 6월 재가동을 기정사실화해 언론에 홍보하고 있다. 점검기간도 정상적인 절차보다 1년 반이나 앞당겨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겠다는 방침이 읽힌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 강행은 원전사업자의 입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인 윤 정부의 안전 무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원안위를 그대로 두고 고리2호기를 비롯한 노후원전의 잇단 수명 연장을 허용해도 될까? 지금이라도 원안위를 원자력규제위원회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국회에서, 특히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부울경 지역 의원들이 원안위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윤 정부의 원전폭주정책을 막아내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주요한 입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원안위는 사실상 원자력규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돼 있다. 원안위는 저간에는 원자력규제기관이 아니라 원전안전에 면죄부를 주는 ‘원자력안전홍보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원안위는 이명박 정부 때 후쿠시마원전사고 직후에, 후쿠시마원전사고 이전 일본의 원안위를 베껴 만든 조직이다. 일본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인 2011년 10월 원안위가 장관급의 대통령 직속 상설 기구로 공식 출범했다. 급조되다보니 조직은 사무처 2국 8과, 82명의 규모였다. 초대 위원장부터 원전규제 전문가가 아닌 원자력산업회 부회장과 원전건설업체인 대기업 사외이사를 지낸 사람이 자리를 차지했다. 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위원장 추전의 위원 4명에다, 국회에서 여야 2명씩 추천을 받다보니 안전과 관련해 첨예한 사안에서는 여야 7:2 구조가 고착화됐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원안위는 차관급으로 격하됐고, 그것도 원자력진흥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국무총리 산하에 들어가 있어 독립성이 구조적으로 보장돼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공약으로 원안위를 다시 대통령 직속의 장관급 기구로 격상시키겠다고 했으나 하지 않았다.

원전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는 원안위의 전문성과 독립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왔다. 특히 원안위는 2020년 7월 원전 안전계통인 원전제어봉구동장치 하우징 용접부위 검사와 규제가 30여 년간 엉터리로 수행됐고, 특히 신고리3호기의 핵심 부품 검사오류 사실 은폐 의혹으로 원자력 민간감시기구협의회가 기자회견을 통해 원안위 위원 전원의 즉각 사퇴를 주장하고 나선 사실에서 원안위의 존재 이유 자체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울진21닷컴, 2020년 7월 14일).

그런데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원안위는 2012년 9월 원자력규제위원회로 탈바꿈했다. 1978년 일본의 원자력위원회에서 분리돼 출범한 그간의 일본 원안위의 행태가 바로 후쿠시마원전사고를 낳은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대형 쓰나미나 전원 상실 등에 대한 대책이 제기됐으나 이를 원안위가 번번히 묵살했고,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에도 수습 과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다음과 같은 점이 달라졌다.

첫째,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독립행정기관으로 거듭났다. 원안위 사무국 대신 환경성 외청으로 원자력규제청이 신설됐다. 원전 진흥 위주의 산업통산성 산하에서 벗어나 원자력규제청 직원은 원자력 진흥 업무로 다시 이동하지 않는 ‘복귀 금지 규칙’이 생겼고, 낙하산인사 금지도 명문화됐다.

둘째, 원자력규제위는 위원장 및 위원 4명 해서 모두 5명으로 구성되지만 이들 위원의 자격으로 원전진흥 경력자를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또한 이들 위원은 모두 상임위원으로 일본 국회인 참의원 중의원 양원의 동의를 얻어 총리가 임명한다. 물론 원자력 진흥 경력이 있으면 당연히 거부된다.

셋째, 지방엔 원자력규제사무소를 두고 원자력보안검사관 152명, 원자력방재전문관 30명을 배치하고, 지역원전안전연락조정관 5명도 파견했다. 지역에 주재관만 파견돼 있는 우리와 달리 인원이 많이 보강됐다.

넷째, 일본 원자력규제위의 경우 의사결정에 관한 회의는 인터넷 생중계를 하며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안위 회의록이나 보고서도 요약본만 공개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시민의 입장에선 원안위 위원이 무슨 결정을 했는지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원래 일본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미국의 원자력규제위가 출범한 지 3년 뒤에 생겼으나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와는 달리 ‘무늬만 규제위원회’로 운영되다 후쿠시마원전 대참사를 맞이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1975년 1월 출범한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는 메릴랜드주 록빌에 있고 위원회 산하에 4개 지방국이 있으며 소속 인원만 2012년 현재 약 3800명이다. NRC는 미국 정부의 독립기관 중 하나로, 미국 내 원자력안전에 관한 감독 업무, 즉 원자로의 안전과 보안, 원자로 설치·운전면허 인허가와 변경, 방사성물질의 안전과 보안 및 사용후핵연료 관리(저장 보안 재처리 폐기) 감독을 맡고 있다. NRC 위원은 미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며, 미 상원의 동의에 따라 5년 임기의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5명 중 1명은 대통령으로부터 위원장 및 위원회의 공적 대변인으로 임명된다.

그런데 이러한 NRC도 ‘우려하는 과학자 동맹(Union of Concerned Scientists)’과 같은 미국의 참여 과학자로부터는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규탄을 받고 있을 정도다. 1987년 ‘NRC와 산업계의 달콤한 관계’라는 제목의 미국 의회 보고서는 NRC가 ‘원자력산업계의 이해에 좌우되지 않는 규제 자세를 유지하거나 비판적이어야 할 분야에서 완전한 규제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NRC의 스태프가 운용면허 취득을 요구하고 있던 전력사업자에 대해서 중요한 기술적 원조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고, 그 뒤 미의회는 NRC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원자로 규제 강화를 340회 이상 포기 또는 선택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런 점에서 원자력안전 강화를 위해 지금의 우리나라 원안위를 원자력규제위원회로 개편해야 한다. 국회가 원자력 규제를 위한 입법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먼저 지금의 원안위를 원자력규제위로 최소한 부총리격의 독립행정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원자력재해 발생 시 업무 총괄을 해야 할 단체장이 차관급인 현행 조직은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원자력규제위의 위원 5~7명은 상임직으로 해야 한다. 이들은 원전진흥 경력자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된다. 이와 함께 원안위 사무국 대신 원자력규제청으로 환경부 산하에 두고 인원을 대폭 보강해 원전이 입지한 부산 울산 경주 영광 울주 등지의 지역청을 설치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원자력규제청 간부는 산업부의 원전 진흥 업무와 인사 교류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원자력규제위원회의 각종 정보를 충분히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후쿠시마원전사고라는 초대형 참사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았다. 일본의 원안위를 보고 만든 우리 원안위도, 이제 원자력규제위로 환골탈태해야 할 때이다. 국회는, 적어도 야당은 윤 정부의 원전폭주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원안위의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 바로 행동해야 할 때이다. 부울경을 비롯한 전국 원전 입지 지자체 시민들은 주권자로서 이러한 원전 안전과 규제와 관련한 입법 행동을 기준으로 내년 총선에서 지역 국회의원을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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