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농구 영화, 내 피 끓게 했다”[SS인터뷰]

조은별 기자 2023. 4. 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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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 제공|미디어랩시소


[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지금으로부터 11년전인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 중·고교 농구대회. 6명의 선수만 출전해 전국 최약체팀으로 평가받은 부산중앙고 농구부는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며 8일간의 대회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전국 최강 용산고와 결승에서는 2명의 선수가 반칙으로 퇴장당해 단 3명이 경기를 꾸려나갔다.

‘슬램덩크’ 실사판 같은 에피소드를 전해들은 장항준 감독은 “피가 끓었다”고 했다. 지난 달 3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 감독은 “투자도 만만치 않고 캐스팅도 잘 안 될 것 같았지만 아무도 가보고 싶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리바운드’의 한장면. 제공|바른손이앤에이


◇투자 무산되고 천기범 음주 은퇴했지만 난관 이겨내, 김은희 작가도 독려

‘가지않은 길’을 가는데 스타 작가이기도 한 아내 김은희 작가와 딸의 독려가 큰 힘이 됐다. 장 감독은 “김은희 작가가 ‘오빠 이거 꼭 해야겠다’며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나섰다”고 말했다.

“나로서는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도 ‘아빠가 안 하더라도 누군가 꼭 영화화했으면 좋을 작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와 딸이 반대했다 해도 내 마음대로 했을 것이다. (웃음) 평소 타인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편이지만 판단은 내가 한다. 투자가 보장되더라도 피가 끓지 않으면 안 하는데 ‘리바운드’는 내 피를 끓게 했다.”

촬영 내내 난관이 적지 않았다. 장감독이 처음 대본을 받았던 2018년에 500여 명의 신인배우 오디션을 진행했지만 투자가 무산돼 제작이 올스톱됐다.

천신만고 끝에 재투자를 받아 촬영을 진행하던 지난해 1월, 부산 중앙고 신화의 실제 주인공 격인 천기범이 음주운전으로 코트를 떠났다. 현재 천기범은 일본 2부리그인 후쿠시마 파이어본즈에서 뛰고 있다.

“스태프들이 단체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그래도 나는 비교적 젊은 시절부터 영화계 일을 해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었다. 작품의 수장인 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꿈을 잃어버린 20대 청년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소외받은 6명 소년들의 이야기다. 한 사람의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의 초점을 강양현 코치(안재홍 분)와 선수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에 맞췄다. 안재홍, 정진운 외 대부분의 출연진이 신인이다 보니 배우 개개인의 스타성보다 실화가 지닌 진정성을 강조했다.

실제 선수들이 뛰었던 부산 중앙고 체육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체육관 문도 최신식으로 바뀌었지만 굳이 옛날 문을 찾아 개보수했다. 당시 부산중앙고와 경기한 용산고, 안양고 등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배규혁 선수 역의 정진운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당시 배선수가 신던 운동화를 수소문해 비싼 값을 치르고 공수했다. 막상 받은 운동화는 밑창이 너덜너덜했지만 접착제로 수선해 신고 뛰었다. 영화 시사 전 원본을 미리 감상한 하승진 선수는 “고증이 미쳤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영화 ‘리바운드’에서 강양현 코치 역을 연기한 배우 안재홍. 제공|바른손이앤에이



장항준 감독. 제공|미디어랩시소


◇선수들과 격의없는 강양현 코치, 권위 내려놓은 장감독과 닮은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당시 부산중앙고를 이끈 강양현 코치 역의 안재홍이다. 초짜였던 신임 강코치는 자신의 판단 실책을 선수들에게 겸허히 사과하고 팀을 위해 교장의 자택에 찾아가 몇날 며칠을 무릎 꿇고 사정한다.

장 감독은 “보통의 스포츠 영화라면 완성된 인격체의 감독이 오합지졸 선수들을 이끌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리바운드’의 강 코치는 선수생활에 실패한, 20대 초반의 공익근무요원이었다. 이 영화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계급장을 떼고 팀원들과 격의 없이 의견을 조율하는 강 코치의 모습은 장 감독과도 많이 닮았다. 실제 장 감독은 촬영장에서 감독과 주연배우 먼저 식사하는 풍토를 없애는 등 권위를 내려놓아 화제를 모았다.

장 감독은 “다들 한번쯤 겸허하게 사과하지 않나. 나는 사과를 많이 한 인생”이라며 “내 촬영장에서 ‘특혜’는 없다. 무조건 선착순”이라고 강조했다. 또 “안재홍의 연기를 보니 내 모습이 많이 투영됐다. 강양현이란 그릇에 장항준이란 음식을 넣고 안재홍이 먹은 셈”이라고 비유했다.

장감독에게 ‘리바운드’는 영화를 찍는 소중함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그는 “(첫 연출작인) 영화 ‘라이터를 켜라(2002)’ 개봉 무렵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SBS 드라마 ‘싸인’(2011)은 그 해 방송3사 미니시리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일이 너무 많아 즐기지 못했다. 지금은 즐기고 있다”며 웃었다.

“운동선수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슬럼프가 오면 선수 생명이 끝나곤 한다. 영화감독도 마찬가지다. 자기도 모르게 연출 생명을 마친다. 내 꿈은 60대까지 현장을 지키는 것이다. 예능에서도 사랑받고 있지만 살면서 가장 재미 있는 게 영화 촬영이다. 이제 장항준의 시대가 열리려나. 하하.”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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