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칼럼]국가 안보사령탑 경질, 그 기이한 사연
정용관 논설실장 2023. 4. 3. 03:04
블랙핑크 공연 美 제안 수차례 뭉갠 것도 이상하고
‘정책’ 아닌 ‘의전’ 문제로 줄줄이 사퇴도 非 정상
한일 회담 후폭풍 겹쳐 尹 지지율 30%로 하락
‘용산 시스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 계기로
‘정책’ 아닌 ‘의전’ 문제로 줄줄이 사퇴도 非 정상
한일 회담 후폭풍 겹쳐 尹 지지율 30%로 하락
‘용산 시스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 계기로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총사령탑인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경질 사건은 석연찮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 문화 행사 보고 누락이 트리거가 됐다는데, 그게 경질 사유가 되느냐는 반응이 적지 않다. “낙타가 쓰러지는 게 깃털 하나 때문이겠냐”는 말도 나오지만, 낙타를 짓눌러 온 등짐의 실체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 구구한 억측만 나온다.
국가안보실장은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장관급 직제다. 국방, 외교, 통일 문제를 두루 관장하는 대통령실의 투톱 중 하나다. 현 정부 들어 경제안보비서관이 신설돼 영역이 더 확대됐다. 그런데 ‘정책’ 문제도 아니고 일정 보고 문제로 11개월 만에, 그것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추진된 대통령 방미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물러났으니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여권과 외교가 등 얘기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미국 측의 ‘블랙핑크-레이디 가가’ 공연 제안 얘기를 처음 들은 건 3월 9일이다. 대선 1주년이던 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방문을 위해 이동하던 중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던 외교부 간부의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미국 측이 합동 공연을 제안했는데 왜 한 달 반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답도 주지 않느냐는 항의를 하더라”는 취지의 직보(直報)였다고 한다. 국가안보실에 경위를 파악한 대통령의 강한 질책이 있었고 김일범 의전비서관이 이튿날 사퇴한다.
여기서 그쳤으면 한미 회담 전 안보실장 교체라는 이례적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전비서관 경질 후 2주일도 더 지나 이문희 외교비서관도 교체된다. 행사 조율은 엄밀히 말해 의전비서관 소관이다. 외교비서관도 문화 행사 제안에 대한 답을 수차례 요청한 주미 대사관 전문을 열람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자기 고유 업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데도 연대 책임을 진 것이다. 이 비서관은 김 전 실장의 대학 직속 후배로 김 전 비서관과 함께 안보실 내 ‘김성한 라인’으로 분류된다. 시간차를 두고 김 전 실장의 핵심 비서관이 둘 다 교체된 셈이다.
뭔가 큰 사달이 났음을 직감한 동아일보 취재로 ‘김 실장 교체 검토’가 보도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대체 왜 블랙핑크 보고를 뭉갰을까 하는 점이다. 미국 측의 제안이 왔으나 블랙핑크 섭외가 쉽지 않은 데다 ‘부부동반’ 문화 행사보다는 ‘정상’ 간 외교 일정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질 바이든 여사가 제안했다고 하나 아이디어 수준으로 여겼을 수도 있고, 거액의 개런티 비용을 누가 정산할지 등 복잡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김 전 실장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 번도 블랙핑크 공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미국이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소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보고 누락은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일반 기업에서도 이 정도 사안이 벌어져 상대방이 불만을 보였다면 징계감이다. 다만 정상회담 콘셉트의 판단 문제였다면 조용히 깔끔하게 처리하고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다. 국가안보실장 책임문제로 일이 커졌으니 외교안보라인의 난맥상 문제로 논의가 옮겨간 것은 당연했다.
그중의 하나가 김 전 실장과 김태효 1차장의 알력설이다. MB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4년 동안 대외전략비서관과 대외전략기획관으로 지내며 실세로 자리매김됐던 김 차장은 같은 정부에서 1년 남짓 외교부 2차관을 지낸 김 실장과 업무 궁합이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김 전 실장이 보안을 이유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등 비밀주의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는 얘기도 적잖이 흘러다닌다. 블랙핑크 일만 해도 김 차장은 몰랐다는 것이다. 야당에선 김건희 여사 라인과 정통 외교 라인 간에 갈등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 근거는 없다. 의전비서관 직무대리를 김 여사와 친분 있는 선임행정관이 맡고 있으니 뒷말이 나올 만한 정황만 있을 뿐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한일 정상회담은 한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한일 회담 후폭풍을 잠재우기도 벅찬데 돌발 변수까지 벌어졌다. 잇단 악재에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30%로 떨어졌다. 곧 집권 1년. 사람이 문제인지, 시스템이 문제인지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도 좀 더 세련된 수습 방법은 없었는지 곰곰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이상 조마조마하고 싶지 않다.
국가안보실장은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장관급 직제다. 국방, 외교, 통일 문제를 두루 관장하는 대통령실의 투톱 중 하나다. 현 정부 들어 경제안보비서관이 신설돼 영역이 더 확대됐다. 그런데 ‘정책’ 문제도 아니고 일정 보고 문제로 11개월 만에, 그것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추진된 대통령 방미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물러났으니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여권과 외교가 등 얘기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미국 측의 ‘블랙핑크-레이디 가가’ 공연 제안 얘기를 처음 들은 건 3월 9일이다. 대선 1주년이던 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방문을 위해 이동하던 중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던 외교부 간부의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미국 측이 합동 공연을 제안했는데 왜 한 달 반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답도 주지 않느냐는 항의를 하더라”는 취지의 직보(直報)였다고 한다. 국가안보실에 경위를 파악한 대통령의 강한 질책이 있었고 김일범 의전비서관이 이튿날 사퇴한다.
여기서 그쳤으면 한미 회담 전 안보실장 교체라는 이례적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전비서관 경질 후 2주일도 더 지나 이문희 외교비서관도 교체된다. 행사 조율은 엄밀히 말해 의전비서관 소관이다. 외교비서관도 문화 행사 제안에 대한 답을 수차례 요청한 주미 대사관 전문을 열람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자기 고유 업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데도 연대 책임을 진 것이다. 이 비서관은 김 전 실장의 대학 직속 후배로 김 전 비서관과 함께 안보실 내 ‘김성한 라인’으로 분류된다. 시간차를 두고 김 전 실장의 핵심 비서관이 둘 다 교체된 셈이다.
뭔가 큰 사달이 났음을 직감한 동아일보 취재로 ‘김 실장 교체 검토’가 보도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대체 왜 블랙핑크 보고를 뭉갰을까 하는 점이다. 미국 측의 제안이 왔으나 블랙핑크 섭외가 쉽지 않은 데다 ‘부부동반’ 문화 행사보다는 ‘정상’ 간 외교 일정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질 바이든 여사가 제안했다고 하나 아이디어 수준으로 여겼을 수도 있고, 거액의 개런티 비용을 누가 정산할지 등 복잡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김 전 실장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 번도 블랙핑크 공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미국이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소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보고 누락은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일반 기업에서도 이 정도 사안이 벌어져 상대방이 불만을 보였다면 징계감이다. 다만 정상회담 콘셉트의 판단 문제였다면 조용히 깔끔하게 처리하고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다. 국가안보실장 책임문제로 일이 커졌으니 외교안보라인의 난맥상 문제로 논의가 옮겨간 것은 당연했다.
그중의 하나가 김 전 실장과 김태효 1차장의 알력설이다. MB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4년 동안 대외전략비서관과 대외전략기획관으로 지내며 실세로 자리매김됐던 김 차장은 같은 정부에서 1년 남짓 외교부 2차관을 지낸 김 실장과 업무 궁합이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김 전 실장이 보안을 이유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등 비밀주의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는 얘기도 적잖이 흘러다닌다. 블랙핑크 일만 해도 김 차장은 몰랐다는 것이다. 야당에선 김건희 여사 라인과 정통 외교 라인 간에 갈등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 근거는 없다. 의전비서관 직무대리를 김 여사와 친분 있는 선임행정관이 맡고 있으니 뒷말이 나올 만한 정황만 있을 뿐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한일 정상회담은 한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한일 회담 후폭풍을 잠재우기도 벅찬데 돌발 변수까지 벌어졌다. 잇단 악재에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30%로 떨어졌다. 곧 집권 1년. 사람이 문제인지, 시스템이 문제인지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도 좀 더 세련된 수습 방법은 없었는지 곰곰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이상 조마조마하고 싶지 않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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